벨치카 함의 기록


챕터 1


1편  2편  3편  4편  5편  6편  7편  9편 10편


챕터 2


11편 12편 13편  14편  15편  16편  17편 18편  19편 20편 21편  22편 23편 24편  25편  26편  27편 28편  29편  30편


31편 32편 33편 34편 35편 36편 37편 38편 39편 40편 41편


 

"왜 떨어질까? 일어서는 법을 배울 수 있거든."



/

 


섹터 C 구역.

재경그룹 빌딩 외곽.

하노마크 고속정.

 


두 척의 고속정이 서서히 하강하며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을 지키고 있던 침식체들이 적을 감지하고 몰려들었지만 그들의 눈앞으로 차가운 서리의 도끼가 맹렬하게 회전하며 일제히 토막내버렸고, 시현과 다수의 무장 레기온들이 일제히 공수하며, 포인트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제독님. 슬슬 친구들이 오니까 조심하세요.]

 


하노마크의 보고 속에서, 로알은 수많은 침식체들의 무리 속에서, 자신이 상대했었던 '침식체' 의 기운이 빌딩내부에서 느껴졌다. 하노마크의 하이브에서는 감지가 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처음 그녀와 맞섰던 자신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곳에 있다는 걸. 그리고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도망치는 움직임조차 없다는 걸.



“그 전에 녀석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군.”

로알은 그 물음 속에서, 착륙한 포인트로 몰려드는 엄청난 수의 침식체들을 보며, 말했다. 자신과 시현 그리고 하노마크의 레기온들은 50기 밖에 안되었고, 빌딩 주변에 침식체들은 수천이 넘어갔고 거대 비스트들이 주인의 위협을 느낀 듯 각 구역을 사수하고 있었으니까. 

“시현. 그리고 하노마크. 지금 퇴각을 할 수 있으니, 퇴각해도 좋네.”

로알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시현은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자신의 나이프를 꺼냈고, 레기온들은 오히려 더 방어태세를 취하며, 그를 중심으로 진형을 갖추었다. 

 


[발할라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지는데요?]

 


하노마크의 결의로 찬 대답에 로알은 쿡 웃으며, 엄청난 수의 침식체 무리를 향해 한기로 가득찬 도끼를 투척하려고 했을 때, 상공에서 번쩍거리는 섬광과 함께 포격이 떨어졌고, 그 포격은 착륙포인트를 포위하려고 했던 다수의 침식체들을 향해 떨어지며, 폭발하기 시작했다. 로알이 고개를 들어올렸을 때, 벨치카함을 선두로 다수의 함대가 재경빌딩을 수비하는 엄청난 수의 침식체들과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벨치카함은 포인트에 수비 중인 로알을 확인하자마자 빠르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함대. 도착. 현재 침식체들과의 교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독님 괜찮으신가요?]

 


“엘리샤. 뭐하는 건가?”

 


[뭐하긴요! 지금 포인트를 확보한 지점에 지원을 하고 있잖아요! 노엘! 각 부대에게 전선을 형성시키고 상황을 보고 해줘! 대기 부대들은 전부 제독님이 마련한 포인트에서 집결하라고 하고!]


 

엘리샤의 대답 속에서, 옆으로 노엘이 자신의 빈자리를 대신해서 승무원들과 병력을 지휘하고 있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서 들려왔다. 


 

“더글라스 사가 내 지휘권을 박탈했을 텐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요?]


 

“그리고 난 이미 자네들에게 명령했네. 함대를 대기시키라고.....”


 

[제독님...... 진짜 참다 참다 말하는데요.]


 

그 대답과 함께 엘리샤는 심호흡을 하며, 손바닥을 폈고, 쓰고있던 헤드셋과 모자가 날아갈 정도로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갑작스러운 후려침에 로알은 놀란 시선으로 엘리샤를 바라보았다. 수신기 화면에서였지만, 자신의 뺨을 후려친 것 같은 찌릿함이 퍼져왔다.

 


[당신 진짜 그렇게 목숨 마구잡이로 던지지 말란말이야! 승무원 모두들 걱정하고 있다는 건 전혀 신경안쓰고 홀로 나가서 싸우고, 그걸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게 얼마나 화가나는지 알고나 있어! 혹시나 죽을까봐 조마조마하면서 지켜보는 오퍼레이터의 심정을 알고나 있냐고!]

 


엘리샤는 그렇게 소리친 이후로 그동안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자 함교내와 하강 대기중인 병력과 로알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칠 것 같았단 말이에요. 제독님이 혹시나 큰일을 당하셨을까봐........]

 


“참 오퍼레이터라는 직위가 있는데 그렇게 슬픈 모습을 보이면 내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잖나.”

로알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자신을 위해 위험지역까지 도착한 벨치카 함대에게는 철수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다만 지옥으로 들어간 날 도와주면....... 자네들은 이게 마지막이 될텐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에요? '수색임무' 를 진행하는 거에요. 수. 색. 임. 무.]

 


엘리샤는 웃기지 말라는 시선으로 니콜라스 부사장의 서명이 담겨진 수색요청 문서를 손가락으로 수신기에서 들릴 정도로 톡톡 가리키며 말했다.

“그 수색임무 중에 나같은 멍청이 제독도 포함되는 건가?”

로알의 장난기 섞인 대답에 엘리샤는 울먹이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부글부글 거린 채로 로알을 바라보며, 말했다.

 


[있다. 끝나고 봐요. 캐서린 씨도 제독님이 말 안듣고 난동을 피우면, 두들겨 패도 좋다고 했거든요? 아 캐서린 씨가 준 '도구' 를 시험 해봐야겠는데요?]


 

엘리샤가 웃으며, '캐서린의 사랑' 이라고 쓰인 가시박힌 철제 몽둥이를 꺼내자 함교 내부의 승무원들과 노엘은 공포에 질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상관폭행은 중범죄일텐데? 그보다 엘리샤. 아내 물건을 어떻게 가지고 왔나?”

 


[훔친게 아니라 캐서린 씨에게 선물 받은 겁니다. 제독님~ 참고로 아무리 상관폭행이라고 상부에 보고해도, 괜찮다고 했어요. 캐서린 씨는 변호사라서, 잘만 판사 구슬리면 해결해주신다고 했거든요~]


 

“엘리샤. 침식체보다 무서워.”


 

[어머. 시현아? 방금 이상한 소리를 한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들은거 아니지?]

 


“아니야. 아무것도.”

 


시현이 벌벌떨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자 엘리샤는 광기로 가득찬 눈 웃음 속에서, 셋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 제독님 저희 함선 수색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얼른 후딱 갔다오세요. 알겠죠? 하노마크씨와 시현이도 제독님이 딴짓 못하게 잘 봐주고. 주변은 우리가 처리할게요~ 각 병력. 일제히 제 신호에 따라 당장 뛰쳐나가서 저 바퀴벌레 같은 침식체들 전부 쓸어버리세요~]


 

그 대답과 함께 벨치카 함선 밖으로 다수의 병력들이 하강하기 시작했고, 로알은 마지못해 웃으면서도 애써서 태연하게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제독. 고마워하고 있어.”

 


[제독님은 속마음을 얘기하는 걸 부끄러워하시는 소년의 마음을 지니신 남자니까~]

 


둘의 킥킥거리며, 놀리는 소녀들 같은 속삭임에 로알은 드러나버린 자신의 내면을 숨기듯 모자를 눌러쓴 채, 폐허가 된 재경빌딩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

 



재경빌딩의 최상층에서 정소희는 조용히 대규모의 벨치카와 더글라스 사 함대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 재경그룹의 전장을 바라보았다. 로알 제독이 확보한 포인트를 중심으로 이미 지상병력들이 자리잡으며, 이미 빌딩까지 서서히 압박하고 있었고, 전선은 이미 자신의 침식체들이 수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정소희는 호흡이 잠깐 숨이 막힘을 느끼고, 품 속에서 약을 꺼냈지만 약은 권장량의 절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그 남아있는 양을 흠입을 한 후 전장의 상황을 바라보았다. 


 

미라의 말대로, 그는 이곳에서 홀로 들어왔다. 자신이 죽을 수 있음에도 선봉이 되었고, 함대와 그의 부대들은 그를 따라서 구역을 빠르게 밀어내고 있었다. 아주 멀리 있지만, 차갑게 불어오는 최상층의 바람 속에서,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그 또한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듯 추격하고 있었다. 그의 차가운 한기로 뒤덮은 도끼와 섬광으로 뒤덮은 검의 빛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 찾아오고 있다. 


 

로알과 시현 그리고 30여기의 무장 레기온들이 빠르게 빌딩 내부에 진입했고, 빌딩을 중심으로 침식체들의 전선이 빠르게 밀려나고 있었다. 


 

[제독님. 현재 저희 함대가 침식체들을 전선 밖으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 위치에 고등급 침식파가 감지됩니다.]

 


“고맙네. 엘리샤. 각 추후의 지휘를 부탁하겠네. 나는 시현과 하노마크와 함께 녀석을 구하러 가지.”


 

[꼭 돌아오셔야 해요. 지금 이 함선은 제독님 꺼니까요.]


 

로알의 대답에, 엘리샤는 그의 얼굴을 톡톡 건드리듯 소리를 내며 자신을 똑바로 보라고 손짓하고 말하자 로알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로 진입한 사이로 하노마크의 드론이 빌딩 내 전력을 활성화시켰고, 짙은 침묵만이 감돌았던 재경빌딩의 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다. 


 

[전력을 확보했고, 현재 이용가능한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vip라 그런지 전시에서 동작되게 설정했나본데요?]


 

“최상층까지 이동가능 한가?”


 

[물론이죠. 대신 기습을 당할 수 있으니까. 조심하시고요.]


 

“걱정 마. 제독은 내가 지켜.”

시현은 그렇게 말하며 그의 곁에 찰싹 달라붙었고, 로알은 그런 시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하노마크의 드론이 안내하는 vip 구역으로 진입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로알과 시현 그리고 6기의 레기온들이 탑승했고, 엘리베이터는 최상층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 도착하고 소대는 빠르게 내부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각 소대원들이 최상층에 각 방을 수색하는 사이로 로알은 승강기 정면에 있는 자리잡은 거대한 두 개의 문 뒤로, 침식체의 기운을 느꼈다. 


 

로알이 천천히 걸어가며, 굳게 닫혀있는 두 개의 정문을 열었을 때, 폐허가 되어버린 채 차가운 숨조차 쉬기 힘든 세찬 바람 아래에서 검붉은 색의 침식으로 뒤덮은 정소희가 의자에 앉은 채 멀리서 패배로 치닫고 있는 전장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로알의 신발이 수백여조각으로 흩뿌려진 유리조각을 밟았을 때, 그녀는 그 소리를 들은 듯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는 침묵 속에서, 조용히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쿡 웃으며 닳아빠진 재경그룹의 오래된 의자에서 일어났다.

“당신..... 정말 질기네? 스스로 죽음을 앞당기면서까지 이곳에 오다니 말이야.”

“이미 전장에서 패배하기 직전인 네가 지껄일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장용영의 근위대장.”

 


'정소희.'

 


로알이 그녀를 향해 부른 이름은 벨치카를 포함한 더글라스 사의 모든 함선들에게 들려오고 있었다. 소희는 자신의 뒤틀린 침식의 손으로 검을 쥐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 이름...... 이미 알았다는 듯 얘기를 하네? 어떻게 내 정체를 알았지?”

“움직임. 검. 그리고 장용영의 근위대장의 상징인 각시탈. 짐작은 했었지만 이렇게 집적 만나게 될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네.”

“그래...... 맞아. 그 이름. 하지만 난 그 이름을 버린 지 오래 되서 말이야. 당신네 사람들은 날 보고 '패잔병이라는 뜻의 '레멘트' 라고 부르지. 관리실패 속에서, 아무도 지키지 못하고 심지어는 가족조차도......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불명예의 뜻으로 말이야.”

정소희는 그렇게 말하며, 차가운 시선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로알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녀는 그 끔찍한 낙인과 같은 이름을 지울 수 없다는 것에 대해 화를 낸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웃기지 않아? 그껏..... 내 모든 것들 쏟아부으면서, 그 죽음의 늪에서 싸웠는데, 그 빌어먹을 것들이 뭐라고 나에게 그런 명예를 주는 걸까? 그때부터, 난 그런 쓰레기 같은 놈들이 죽길 바라면서, 필사적으로 버텨왔지. 심지어는 내 몸이 이렇게 변해버리는 순간까지 말이야. 우습게도...... 난 '그들처럼 되지 않았어.' 그리고 내가 지켜왔던 이곳 또한 온전하게 남았지. 비록 모두가 죽어버린 세계긴 하지만.”

재와 폐허. 그리고 남아있는 것은 자신을 따르는 뒤틀린 침식체들과 비스트들. 로알은 그런 그녀의 대답에서부터, 자신을 원망하며, 질투하는 감정이 느껴졌다. 



“당신의 이야기는 미라에게 많이 들었어. 동료가 위험하면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돌진하고...... 심지어는 이 지옥까지 뛰어든다고...”

“녀석은 어디에 있지?”

“내 뒤에 있어.”

그 대답과 함께 소희는 새까만 장막을 걷어냈을 때, 수복실 용액으로 가득 찬 채 눈을 감은 서미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미라의 모습을 보자마자 시현이 달려들려고 했지만 소희는 눈을 부릅뜨며 차가운 침식의 칼날을 바닥에 꽂았고 시현은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이면. 서미라의 목숨은 없어.”

정소희의 살기 섞인 경고에 로알은 시현에게 물러나라는 손짓을 보냈고, 시현은 이를 악물며, 하노마크의 레기온과 함께 상황을 지켜보았다. 워치의 기운이 느껴지는 걸 보면 서미라는 아직 살아 있었다. 수복기능은 활성화 되어있고, 상태는 괜찮아보였다. 그의 안도의 호흡도 잠시 소희는 입가에 씨익 웃으며, 버튼을 눌렀고, 우웅 소리와 함께 그녀를 뒤덮고 있던 캠슐에 서서히 검붉은 액체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저 안에 있는 침식의 파편들은 곧 미라의 몸에 스며들거야. 그리고..... 나처럼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끔찍한 복수귀가 되어버린 채 나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겠지.”

“그 말은 즉 미라를.”

 


'침식체로 만들겠다는 건가?'


 

로알의 대답에 소희는 그래. 라고 대답하며 입가에 미소를 드러내며, 두 팔을 벌렸을 때, 박힌 칼날을 중심으로 거대한 파동이 울려퍼졌고, 이내 시현과 레기온들조차 접근할 수 없는 거대한 보호막이 생성되었다.

“아무리 당신이 나의 군대를 없애버린다고 해도 새롭게 시작하면 그만이야. 그 아이도......알게 되겠지. 내가 가지고 있는 고통의 기억이 얼마나 끔찍하게 날 좀 먹었는지..... 그리고 당신을 죽이려고 하겠지.”

“그럼 방법은 하나겠군.”

 


'널 쓰러뜨리고, 녀석을 꺼낼 수밖에.'

 


그녀의 대답과 함께 로알은 침묵 속에서, 자신의 한기가 뒤덮은 도끼를 꺼냈고, 정소희는 붉은 선홍빛으로 뒤덮은 검을 드러내며, 로알을 주시했다. 찰나의 순간 로알의 한기로 뒤덮은 도끼가 맹렬하게 회전했고, 정소희는 그의 무기를 쳐내고, 섬광으로 뒤덮은 그를 향해 일격을 휘두르며, 격돌하기 시작했다.


 

/



 

재경 빌딩을 중심으로 무수한 포화가 빗발치는 전장 사이로 아리사는 빌딩을 지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검은색 장용영 카드가 쥐어져 있었고, 그녀의 손목에 있는 수신장치는 붉은빛으로 활성화 되어있었다.

 


[로알의 목소리를 통해 이미 들었지? 지금 이 섹터 구역을 장악하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말이야.]

 


그 이야기만으로도 두 번다시는 깨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끔찍한 악몽이 자신의 뇌리를 쑤시는 기분이었다. 그 지옥에서 기어코 기어올라와서 귀찮게 할 거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그의 경고나 다름없는 목소리에 아리사는 두 주먹을 움켜쥔 채 수신장치에 활성화 되어있는 중후한 남자의 목소리를 향해 말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두 번의 기회는 없네. 아리사. 이번에 확실하게 처리하도록.]


 

수신기의 연락이 끊었을 때, 아리사는 '재경그룹 격납구역' 에 도착했다. 굳게 잠겨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격납고 내부에서는 재경그룹이 무기테스트를 위해 준비한 것 같은 다수의 경장비 무장 기계들이 한가득히 진열되어 있었다. 아리사가 엘리베이터 문 밖으로 나가기 무섭게 격납구역 천장에 적외선 센서가 빠르게 아리사를 스캔 했고, 잠시 후 홀로그램이 활성화 되었다.


 

[재경그룹의 차세대 무기 센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장용영 298 대령님. 현재 병기들은 추후 작전을 위해 일제히 절전 모드 상태입니다.]


 

“각 구역의 병기들은 총 얼마지?”

 


[보병 타입 여단과 중장 타입 중대가 총 4500여기의 병력이 격납고에 대기중입니다.]


 

홀로그램의 보고와 함께, 아리사는 미소를 지으며 홀로그램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격납고에 남아있는 모든 병기들을 활성화시키고 목표구역을 재경빌딩으로 지정한다. 그 빌딩 내에있는 모든 적들을 섬멸시켜. 하나도 남김없어. 이 명령은 장용영 283대령의 권한으로 즉시 실행한다.”


 

[알겠습니다. 283 대령님. 해당 작전구역을 재경빌딩으로 지정. 현재 기동가능한 모든 병력들을 절전모드를 해제. 즉시 작전을 개시합니다.]

 


홀로그램의 음성도 잠시 거대한 격납고에서 절전이 되었던 모든 병기들이 일제히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하나 둘 기동하기 시작했다. 

“정소희. 이번엔 진짜 네 년의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줄게.”

아리사는 그 대답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고 전투기능이 활성화된 병력들은 격납고내 병기 승강기를 통해 빠르게 전장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


 

호흡이 가파르다. 지속이 될 수록, 정소희는 약하게 느껴졌던 자신의 숨막힘이 독처럼 자신의 온몸에 퍼지는 것을 느꼈다. 로알의 손에 쥔 한기의 도끼가 다시 회전했을 때, 정소희는 막혀오는 자신의 호흡을 가다듬은 채 힘겹게 후려쳤고, 도끼는 바닥에 나뒹굴며 바닥에 떨어졌다. 로알은 호흡조차 가다듬지 못할 정도로 그녀의 상태가 악화되고 있음을 느꼈고, 바로 파고들며 검을 휘둘렀다. 정소희는 자세도 못 참은 채 주춤거렸고, 가까스로 그의 일격을 막는 것으로 벅찬 듯 이내 중심이 무너지며 무릎을 꿇었다. 

 


약효가 부족한 걸까? 싶을 정도로, 그녀의 몸 안에 천식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무너지면서 로알을 에워쌌던 침식의 벽이 서서히 낮아졌고 이내 시현과 레기온 병기들이 보일정도로 약해지기 시작했다. 시현이 그 틈으로 미라가 갇혀있는 수복기에 다가가려고 했고, 소희는 이를 악물며 시현을 저지하기 위해 움직였지만, 그 움직임마저 로알에게 저지당하듯 발로 걷어차이며 벽에 처박혔다.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며 일어나려고 했을 때, 로알의 검은 이미 그녀를 향해 겨누어져 있었다.



“.......웃기지 마...아직....”

그 대답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숨이 막혀오듯 숨쉬는 것조차 괴로워했다. 하노마크의 레기온과 드론이 수복기의 시스템을 해킹하는 사이로 그녀는 검에 지면을 박은 채 일어나려고 했고, 로알은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필사적으로 버틸려고하는 그녀의 집념을 침묵 속에서 바라보았다. 


 

[시스템을 해킹하고 있으니까. 기다려. 곧 수복기 문이 열릴거야.]

 


하노마크의 대답에 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라가 끔찍한 고문 속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시현은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정문 뒤로 재경그룹의 문양을 두른 병기가 눈에 들어왔다. 병기는 적을 인식한 듯 적색 빛을 발화하고 있었고 류탄발사기를 장착한 돌격소총의 총구가 서서히 자신의 향해 겨누고 있었다. 

“위험해!”

 

시현의 대답과 함께, 자신의 나이프를 투척해 병기를 제압했지만, 조준점을 잃은 병기의 총구에서는 이미 류탄을 발사했고 최상층 내부는 순식간에 폭발과 함께 자욱한 연기로 뒤덮였다. 연기 속에서, 재경그룹의 병기들이 섬멸을 위해 천천히 움직였을 때, 연기 속에서 숨어있는 레기온들이 일제사격으로 제압했다. 

 


[다들 괜찮아?]

 


하노마크의 레기온이 그 연기 속에서, 콜록 거리는 시현의 음성을 찾아내 그녀를 찾았지만, 내부로 진입을 시도하는 재경그룹 병기들과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재경그룹 주변으로 다수의 적대적 병기들이 드론 시스템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병기들은 건물을 장악하고 있던 레기온들과 교전을 시작하며 닥치는 대로 제거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요? 지금 재경그룹 빌딩 주변으로 다수의 적기체들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뭔지 모르지만 이 빌딩 지하에 꽤나 묵혀둔 것들이 난리를 치는 것 같아. 재경그룹의 문양을 두른 녀석들이 닥치대로 죽이고 다니고 있어.]


 

[알겠습니다. 지금 지원병력을 차출해서 지원해드릴게요. 다들 괜찮으세요?]


 

[아직까진.]


 

하노마크는 그 대답 속에서, 자신의 드론으로 로알과 정소희가 있던 곳을 확인했다. 셋이 있었던 곳은 거대한 구멍이 생겼고, 그 밑으로 차가운 한기의 도끼날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 벽을 긁은 흔적이 새까맣게 뒤덮은 빌딩의 내부 깊숙히까지 어어졌다. 그 끝에서, 로알은 자신의 도끼를 쥔 채, 추락하려는 정소희를 붙잡고 있었다. 



“어지간히도 방해꾼들이 많군.”

그 대답 속에서, 로알은 그 앞으로 녹이 슨 철근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걸친 채 쓰러진 미라가 눈에 들어왔다. 손을 뻗고 싶었지만 자신의 팔로는 거리가 닿지 않았다. 로알이 주변을 둘러보며, 탈출할만한 곳을 찾으려고 했을 때, 헐떡 대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고 정소희는 천천히 눈을 떴다.

“괜찮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아랑곳하지 않은 듯 침식으로 오염된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그는 괴물일지도 모른 이런 자신의 뒤틀린 손을 놓치 않겠다는 듯 강하게 붙잡은 채 당기려고 했다. 



“왜.......날?”

“말을 하는 거 보니, 괜찮은 것 같군?”

“.....당신 미친 거 아니야? 지금 어떤 손을 잡았는지.... 알기나 하는 거야?”

그녀는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로알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 손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었다. 로알을 지탱하고 있는 도끼의 주변에 콘크리트가 가뭄에 메마른 땅처럼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놔. 이대로 가면 당신도 떨어져 죽게 돼.”

“죽음은 나에게 영광일 뿐일세. 정소희.”

“죽음? 그 죽음의 문턱을 기어오르지 못한 주제에....... 그 고통을 당신이 알고나 있는 거야?!”

소희는 그의 역겹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지긋지긋하다는 듯 소리쳤다. 호흡조차 가다듬지 못할 정도로 괴로운 순간들이 자신의 머릿 속에서 꿈틀거렸고, 당장이라도 토해버리고 싶다는 듯 자신의 심장을 광기에 뛰게 만들고 있었다.



“난 아버지와 모두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어. 하지만 아무도 날 인정해주지 않고 오히려 내가 죽길 바라고 있었지. 근위대장이 되었는데도 내가 죽길 바라듯 지나치는 그 시선들이 나에게는 죽음이나 다름이 없었어. 그런 고통을 당신이 알고나 있는 거야!?”

“이미 알고 있네.”

그 물음도 잠시 로알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소매에 숨겼던 시계를 보여주었다. 그의 워치는 이미 '경각' 에 다다르고 있었고, 서서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 찾아온 거야? 당신 죽을 수 있다고. 침식체가 될 수도 있다고! 도대체 왜 이곳을 찾아온 거야!”

“어차피 죽을 멍청이인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이미 시한부나 다름 없는 상황이지만, 자넨 달라. 정소희. 저 녀석이 널 살렸을 때부터, 넌 이미 나랑은 다른 존재가 되었어. 모처럼 녀석이 너에게 기회를 주었는데,”


 

'그걸 버릴 생각인가?'

 


그 대답 속에서, 서서히 힘이 빠지려는 자신의 팔에 다시 힘을 쥐며,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런다고 바뀌는 건 없어. 나에겐..... 이미....”

그 대답도 잠시 미라를 지탱하고 있던 철근이 콰직 소리와 함께 부서지며 미라를 끝도 없는 지하로 떨어지려고 했고, 소희는 자신의 눈 앞으로 떨어지려는 미라를 붙잡았다.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팔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퍼졌왔고 소희는 끅 소리를 내며 추락하려는 미라의 팔을 붙잡았다.

 


아직은 버틸 수 있지만 이대로라면, 모두가 떨어지게 될 것이다. 자신도 이 남자도 그리고 자신이 붙잡고 있는 미라도. 로알의 도끼를 지탱하던 콘크리트는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소희는 심호흡 속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필사적이었다. 미라의 말대로 자신의 죽음이 눈 앞에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괴물이라고 해도 자신을 붙잡으려고 했다. 소희는 그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나 같은 운명을 맞이하면 안 돼.”

“정소희!?”

그의 대답도 잠시 소희는 자신의 남은 힘을 쓰며, 로알을 향해 미라를 던짐과 동시에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던 그의 손을 놓았다. 로알이 의식을 잃은 미라를 붙잡는 순간 도끼를 지탱하던 콘크리트는 산산히 부서졌고 로알은 빠른 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끝도 없는 새까만 어둠으로 떨어지는 그 사이로 로알은 자신의 도끼를 벽에 꽂으며, 추락을 가까스로 멈추었다. 미라를 힘겹게 들어올리며 품에 안았을 때, 정소희는 이미 끝도 없는 어둠의 구덩이에 삼켜버리듯 추락한 뒤였다. 침묵으로 뒤덮었던 빌딩 내부는 지독한 총성이 울려퍼지고 있었고 로알은 자신을 향해 빠르게 하강하며 내려오는 하노마크의 레기온 2기를 바라보았다.



“미라를 부탁하네. 빌딩 내에 있는 병력들은 내가 지정한 위치로 즉시 퇴각하게.”

 


[제독님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지금 빌딩내부는 재경그룹 병기놈들이 난동을 피우고 있어서 제 친구들이 재 결성을 위해서 시간이 걸려요.]

 


하노마크의 물음에, 로알은 그녀가 추락했던 곳을 한참동안 바라보며 말했다.

“금방 돌아오겠네.”

 

하노마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라를 데리고 빌딩내 비상구역을 통해 퇴각했다. 로알은 침묵 속에서, 끝도 없이 펼쳐진 빌딩의 지하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 정도의 추락이라면, 대부분은 죽었거나 혹은 포기하면서 나갈 수도 있지만, 그 생각은 로알에게는 의미없는 추측으로 회피하려는 겁쟁이 같은 생각일 뿐이었다. 로알은 자신의 섬광의 검을 꺼낸 후 가볍게 도약하며 그녀가 떨어졌던 어둠을 돌파하듯 하강하기 시작했다.

 


/

 


“가끔 네가 부러워. 나와는 다르게 넌 밝고 많은 아이들과 사람들 심지어는 너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잖아?”

나와는 다르게, 그 애는 그랬다. 자신과는 다른 존재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난 그걸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난 어두웠어. 그들이 날 원하는 건 그저 아첨뿐이었으니까. 겉으로는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지. 그들은 내가 무너지길 바라며, 지켜볼 뿐이지. 그 수많은 시선들은 내게 낙인 같았어.”

그 눈들. 당장이라도 찢어비틀어버리고 싶었다. 자신이 무너지며, 처참하게 뒤틀려 죽기를 바라는 끔찍한 부라림과 음흉함과 탐욕으로 뒤섞인 시선들.

“차라리...... 내가 이 워치를 가지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까? 내가 이걸 가지지 않았다면, 난..... 평범해질 수 있었을지도 몰라.”

 


'그렇게 하기에는 선배는 강하시잖아요.'


 

“내가? 이 약을 먹지 않으면..... 숨조차 못쉬는 이런 내가?”

정소희는 그렇게 말하며 호흡이 가파라지자 자신의 품 속에서, 베타2 약을 흡입을 했다. 호흡이 차차 나아지고 나서야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호흡을 할 수 있었다. 잠시동안은. 자신은 그 뒤로 붙게 될 아주 일시적인 시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 화가 났다.



“그런 넌 왜 날 선배라고 부르는 거야? 난 널.... 후배라고 인정하지도 않는데......”

그녀의 물음에, 미라는 음... 소리를 내며, 망설여하는 시선이었다. 소희는 답답한 시선으로 당장 대답하라고 눈치를 주었고, 미라는 헤헤 웃으며 얼굴을 붉힌 채 대답했다.



“처음 제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 길을 해맸던 적이 었었어요. 첫 입학했을 때부터, 얼마나 해매버렸는지...... 전부터 길치였거든요. 그러던 중에 얼떨결에 대련장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검술을 단련하는 선배를 보게 되었어요.”

미라는 그 대답 속에서, 홀로 기합을 내며, 목도를 휘두르며 대련 연습을 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과는 다르게 그녀는 방과후임에도 불과하고 그녀는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움직임을 보면서 미라는 하염없이 그녀의 움직임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 때문인거야? 내가 훈련한 거 때문에?”

“네.”

“바보 아니야? 그건 카운터들에게 기본적인 거잖아.”

“제가 그 이후로 매일 그곳을 확인했는데, 선배만 계속해서 훈련하셨는데요. 시간에 상관없이 말이죠.”

그 말은 즉 자신이 훈련했던 걸 계속해서 지켜보았다는 걸까? 소희는 문득 자신이 휴식을 위해 자리에 앉아있다가 놓인 음료수가 떠올랐다. 


 

“그때 매일 시원한 음료수가 놓여있던 것도.... 네가....”

“글쎄요? 제가 깜박한 거라서 잘 모르겠는데요?”

“거짓말 할 거야?”

소희는 잔뜩 짜증섞인 시선으로 쭈욱 째려보자 미라는 자백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는 진정시켰다. 방과후가 되면서 아카데미 내부에서는 시끌벅적한 소리가 줄어들고 있었다. 소희가 자리에 일어났을 때, 미라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신기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뭐해. 안 따라올 거야?”

“네?”

“따라 오라고.”

그녀의 대답에 미라는 당황한 시선으로, 그녀를 따라 대련장으로 따라갔다. 대련장 중앙 무대에 서자 미라는 신기하듯 자신을 중심으로 둘러쌓인 관람석을 바라보았다. 소희는 아카데미 교복을 입은 사이로 여분의 목도를 미라에게 던졌고, 미라는 놀란듯 떨어뜨릴 뻔한 목도를 쥐었다. 소희는 쿡 웃으며, 미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증명할 수 있어?”

“네?”

“네가 정말로 내 '후배' 인지 말이야.”

미라의 물음에도 소희는 곧바로 할거라는 듯 검을 들었다. 미라는 당황하면서도, 그런 그녀의 요청에 응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잡았다. 미라가 흡하면서 휘두르기 무섭게 소희는 가볍게 받아치며 미라의 몸통을 정확하게 목도에 대었다.



“너무 동작이 커. 다시.”

“아....네...”

“힘으로 휘두르지 마. 침식체가 다수로 덤비면 지쳐 쓰러진다고!”

소희는 미라의 허술한 자세를 바로잡듯 쳤고, 미라는 아픈 듯 심호흡을 하면서도, 그녀의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 답답하고 짜증이 올라왔지만 자신은 그녀를 내쫓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미라는 하나하나 천천히 바로잡으며, 다시 자세를 잡으려고 했고 그 움직임은 자신의 눈에 보일 정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대련장에서 서서히 해가지며 어둑어둑해졌을 때, 아직 체력적으로 멀쩡한 소희와는 다르게 미라는 서있는 것조차 버거운듯 지친 모습이었다. 소희는 자신의 베타 약을 흡입하는 사이로, 소희는 미라에게 다가갔다. 

“최악이야.”

소희의 냉혹한 대답에 미라는 시무룩해진 듯 고개를 숙였다. 소희는 그 사이로 목도를 쥔 나머지 군데군데 멍이 든 그녀의 손을 보고, 한숨을 내뱉으며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나름 근성이 있어.”

“그럼 저......”

“아직 우쭐하지 마. 이제 시작이니까. 내가 그때 너에게 한 말 기억하고 있어?”

“네. 기억하고 있어요.”

 


'부드럽고 강하게'


 

미라는 집적 행동을 보여주면서 고개를 끄덕였을 때, 소희는 처음으로 자신을 향해 웃는 바보 같은 미소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건 자신에게 없는 미소였다. 그 시선 속에서, 소희는 생각도 하기 싫은 끔찍한 기억을 느꼈다. 



“내일 봐요. 선배.”

“.....어.”

그 대답 이후로, 그녀로부터 멀어지려고 했을 때 문득 자신의 몸은 서서히 기울어져 있었다. 떨어지는 자신의 손은 언제부턴가 서서히 까맣게 침식의 형태로 변하고 있었다. 그 뒤로, 미라는 홀로 대련장에 서있었다. 혹시나 돌아올까? 자신과 대련했던 목도를 쥔 채 서성이며 기다렸다. 


 

'선배. 선배 덕분에 저..... 벨치카 함의 소대원이 되었어요. 선배가 아니었으면 저. 이 자리에 못 있었을 거에요. 다들 좋은 분들이세요. 함장님은 특히나 저희를 많이 아껴주세요.'


 

미라의 대답에 소희는 입을 열며 그녀를 부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소희의 눈동자가 다시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자신의 왼쪽 눈이 찢겨나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선배. 근위대장이 되셨다고 들었어요. 매일 뉴스에서 나오시고, 부대를 지휘하시는 모습을 보시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편으로는 힘들어하시는 게 보이는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괜찮다고 하시지만 사실 걱정이 돼요.'


 

통각으로 자신의 손을 가렸던 그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을 때, 자신의 눈은 침식의 뒤덮여져있었다. 자신의 머리칼은 그 오염의 독이 퍼지듯 선홍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뒤틀린 적안의 눈이 다시 바라보았을 때, 미라는 무릎을 꿇은 채 수많은 사람들의 자리 한 가운데 있었다.


 

'........선배. 정말 죽은 건가요? 대답해주세요. 말했잖아요.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그러니까 일어나요. 선배..... 제발... 대답해주세요. 선배.....'


 

그 목소리와 슬픔과 절망에 젖어버린 미라의 목소리에 소희는 미라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자신의 눈 앞에 있던 미라는 빠르게 멀어졌고 그녀의 몸은 널부러진 수많은 철근과 콘크리트로 뒤덮은 잔해의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온몸을 찢는 듯한 통각이 퍼졌을 때, 자신의 몸은 널부린 철근에 몸이 꿰뚫린 채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래. 자신은 추락하고 있었다. 그들로부터, 자신을 선배라고 대했던 자로부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까지 떨어졌었지. 소희는 자신의 머릿 속에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 기억에 의존할 정도로 나약한 자신에 큭큭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정말로 죽음이라는 걸 받아들일 작정이었던 거야?


 

“그래..... 나에겐 사치야. 그런 선배라는 건....... 그렇지 않아?”

그녀의 물음에 치명상을 입은 몸은 경련을 일으키며 검붉은 피를 바닥에 흩뿌리듯 쏟아지고 있었다. 소희는 무릎을 꿇으며, 심호흡을 했고 침식으로 오염된 자신의 팔을 몸에 박힌 철근을 쥔 채 힘을 쥐며 뽑아내기 시작했다. 철근이 서서히 몸에서 뽑히자 그녀는 이내 비명을 질렀고, 그 비명은 자신밖에 남아있지 않은 독방 같은 지하에서 울려퍼졌다. 소희는 자신의 몸을 꿰뚫었던 철근을 내던지고, 어디인지 모르는 깊은 지하를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 앞으로 그녀의 눈 앞에서는 침식체들의 시체와 자신이 지휘했던 병사들. 그리고 수많은 정씨 가문의 일원들의 시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수많은 시체들의 파도 속에서, 자신의 시야를 가리는 라이트가 들어왔을 때 재경그룹의 병기들이 적을 인식하듯 레이저 사이트를 조준했고 그녀는 눈을 부릅뜨며 검을 쥔 채 병기를 베어내기 시작했다. 


 

자신을 향해 돌진하며 공격하는 병기들을 베어내는 사이로 입가에 터질 것 같은 붉은색 피를 머금은 채, 나아갔을 때 눈 앞으로 섬광이 자신의 어깨를 꿰뚫었고 자신의 몸을 뒤덮던 침식의 육체는 처참하게 부서지며, 바닥에 흩뿌려졌다. 



“바닥에 처박혀 죽은 줄 알았는데 아직도 살아있네? 몰락한 그룹의 근위대장님?”

그 대답 속에서, 익숙한 권총을 쥔 카운터가 눈에 들어왔을 때, 소희는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었던 살기를 느낀 듯 그 권총의 주인을 노려보았다. 아리사는 그 앞으로 정소희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권총을 겨누려고 했고 정소희는 상처를 감싼 채 내달리며 그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기억이 나..... 내 부하들과 이곳을 지옥으로 보낸 거.......”

“그때 완전히 골로 간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 꾸역꾸역 목숨이나 연장이나 하고 있었을 줄이야. 너는 몰라도 네가 지키지 못한 것들이 눈을 부릅뜨며 깨어날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닥쳐!”

그 대답 속에서, 정소희는 아리사를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자신의 몸에 통각이 집중을 흐트러졌고,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호흡이 가파라지기 시작했다. 케헥케헥 입가에 피를 토하며, 비틀거리는 사이로 아리사는 자신의 권총으로 그녀의 복부를 가격했다. 


 

컥 소리와 함께 그녀가 배를 움켜쥔 사이로, 아리사는 그녀의 얼굴을 후려쳤고, 소희는 검을 떨어뜨린 채 벽에 부딪히며 쓰러졌다. 아리사가 총을 겨누며 그녀의 머리를 쏘려고 하자 소희는 자신의 침식으로 뒤틀린 클로를 휘둘렀고,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팔을 찢어버린 그녀의 상처를 가격했다. 바닥에 쓰러지기 무섭게 아리사는 그런 정소희의 움직임을 철저히 짓눌렀다.



“내 '목마' 와 함께 수장된 그 떨거지들과 같이 갔으면 얼마나 좋았겠어? 안 그래!”

아리사는 그렇게 대답하며, 일어나려고 하는 그녀의 다리를 사격했고, 그녀는 숨조차 쉬지 못할 정도의 통각 속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아리사는 눈을 부릅뜨며, 다시는 저항하지 못하게 짓밟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침식체 년이 왜 자꾸 기어처 나와서 날 귀찮게 하는 거야! 차라리 거기서 영원히 침식체가 되어서 뒤틀리는게 더 낫지 않아? 그래야 나도 네 년 머리통 갈겨서 보내고 편하잖아? 안그래!?”

그 목소리 속에서, 소희의 눈동자에서는 새하얗게 카운터 아카데미 교복을 입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는 그녀의 움직임 속에서 아리사는 철저히 짓밟아버리듯 그녀의 몸에 총을 쐈고, 그녀의 감각은 서서히 마비되듯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의 몸 밖으로 참혹한 피가 새어나오며 번져갔다. 


“이제 진짜로 네 년의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야겠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말이야.”

아리사의 권총이 그녀의 머리를 겨눈 채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을 때, 차가운 서리도끼가 그녀의 감각을 얼어버리듯 스쳤다. 그녀가 돌아봤을 때, 그 앞으로 로알 제독이 서있었고 그의 뒤로 처참하게 망가진 재경그룹의 수많은 전투병기 잔해들이 가득했다. 

 


“아...... 제독님.”

“아리사. 왜 자네가 여기에 있는 건가?”

“마침 침식체를 제거하고 있었어요. 그 놈들의 리더죠.... 그냥 가셨어도 제거하려고 했는데....”

그녀의 애써 웃으며, 두 팔을 피고 그를 진정시켰지만 꺼내는 대답에도 로알은 성큼성큼 걸어가 그녀의 얼굴을 후려쳤다. 갑작스러운 후려침에 그녀는 당황한 시선으로 로알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는 차가운 한기의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장 이곳에서 탈출하라고 지시했을 텐데?”

“하지만.... 제독님. 전 지금.... 이 쓰레기 같은 침식체들의 리더를 잡았어요. 그런데 왜 절......”

“마지막 경고일세.”

그 대답과 그의 눈에서 푸른빛이 발화되었고, 아리사는 자신의 뒤에 꽂혀있던 그의 도끼가 당장이라도 자신의 뒤통수를 쪼개버릴 듯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리사는 마른 침을 삼킨 채, 입가에 피가 터진 자신의 얼굴을 닦으며, 건물 밖으로 탈출했다. 그녀가 완전히 나가고 난 후 로알은 호흡이 멎어가는 정소희에게 시선을 옮겼다. 



“하노마크. 상황은?”

 

[함선과 병력들은 요청한 지점으로 후퇴했습니다. 이제 남은 인원은 이제 제독님 밖에 없습니다.]

 

하노마크는 그렇게 대답하는 사이로, 걱정하지 말라는 듯 윙크를 보냈고, 로알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신을 끊었다. 건물내에서 들려오는 짙은 위협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 속에서, 로알은 자신의 품속에서 베타2 흡입제 꺼내 그녀의 입가에 대었다. 약이 투여되자마자 호흡이 멎어갔던 그녀의 호흡이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그녀의 몸은 그 이상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미라는.......?”

“다들 대피했네.”

소희는 그의 대답과 함께 망연자실한 듯한 웃었다. 처참하게 망가진 몸. 아무리 침식체가 되었다고 해도 자신의 몸은 그대로였고, 결국 다시 영원한 지하의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투명한 빛과 차가운 서리의 도끼를 지닌 자가 침묵 속에서, 자신의 최후를 기다리듯 서있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게 있네. 정소희.”

 


'왜 그 애를 침식체로 만들지 않았지?'

 


만약 정말로 만들 수 있었다면, 내가 오기 전부터라도 그 아이를 침식체로 만들 수 있을 걸세. 모두가 그 아이의 생사에 대한 희망을 버린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자넨 그 아이를 침식체로 만들지 않았어. 내가 구했을 때, 그 애의 몸은 응급처치가 되어있었고.”

내가? 그랬다고? 그 물음에 정소희는 그런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가도 이상하게 자신의 심장에서는 뭔가를 찾았다는 것에 대한 누군가를 구했다는 것에 대한 안도의 기분이 퍼져왔다.



“그 애는 나와 다르니까. 나보다 더 뛰어났고...... 더 빛을 발휘했어. 철저한 원망 속에서 산 나와는 다르게...... 내가 침식의 그림자에 파먹힌다고 해도 곁에 남아서 끝까지 있어주고 싸웠어. 난 도움도 안되고 쓸모없는 짐짝인데도....... 그렇게 피투성이가 되어버렸는데도 있어준 그 애를......

 


'내가 어떻게 죽일 수 있겠어?'

 



정소희의 물음에 로알은 그런 미라의 바보스러운 모습이 떠오른 듯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대답 사이로 그녀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처량한 듯 웃기 시작했다. 한참을 웃던 그 가면은 슬픔이라는 공기에 닿자마자 바스락거리며, 부서졌고 이내 슬픔의 가면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 아버지의 말이 맞았어. 난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야. 전쟁에서 패배한 자들이니까. 침식체로부터 가족을 지키지도 못했고 심지어는 그룹의 일원들조차 죽게 내버려두었지. 그대로 죽었다면..... 그대로 사라졌다면 편했을 텐데..... 난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살아남았지.......  결국 다시 이곳에 떨어질거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대답 속에서 로알은 몸을 숙이며, 축 늘어진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감각. 그 온기에 천천히 그를 바라보았을 때, 그는 그녀의 손을 놓치 않겠다는 듯 꼭 쥐고 있었다.



“죽음을 받아드리는 건 나 같은 멍청한 놈이나 하는 걸세. 정소희.”

“무슨 소리야?  난...... 침식체인데....... 동정을 하는 거야?”

“만약 정말로 자네가 침식체라면,”

 


'왜 그 애를 그리워 하는 거지?'

 


그 애를 원망했다고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라는 건 알고 있네. 자네 곁에는 제대로 된 녀석들이 없었을 뿐이지. 처음에는 몰랐지만 미라가 자넬 어떻게 대했는지 알 것 같네.”

그의 대답에 그의 손을 잡았던 그녀의 눈 앞으로, 그가 아닌 미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모습이 들어오자마자 그녀의 붉은빛 눈동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천천히 손을 뻗었다. 자신을 향해 뻗는 그녀의 눈에서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보고 싶어...... 그 애를 다시 한번만...... 보게 해줘.”

 


그녀의 흐느낌 속에서 슬프게 울기 시작했고, 로알은 눈을 감았다. 그 화면을 주시하는 하노마크는 안타까운 한숨을 토해내며,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대답 이후로 그녀는 힘이 빠진 채로, 바닥에 쓰러졌고 그녀의 남아있던 몸은 서서히 침식액으로 뒤덮기 시작했다. 그녀가 침식체로 변하기 전 로알은 자신의 검을 들었다. 그리고 강렬한 섬광이 드론 화면에 가득히 퍼져왔고, 그 섬광은 이내 무너지는 재경그룹의 지하의 어둠을 집어삼켜버리듯 감쌌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