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준비 됐어?”


“으응... 이제 1퍼..남...아ㅅ..ㅇ..@&*<#..”


노이즈 섞인 대답을 끝으로 그녀는 더이상 말을 잇지 않는다.

방금까지 생기가 돌던 눈동자는 마치 죽은 사람마냥 흐리멍텅해졌고, 각막처럼 보이는 얇은 아크릴 막이 형광등 빛을 반사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녀의 가슴에 귀를 대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찰칵거리는 인공심장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리는 것을 확인한 후,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손끝으로 쓸어내리며 애무를 시작한다.


“...”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다. 자극이 좀 약한가? 예전에는 살짝 만지기만 해도 부르르 떨었는데 이제는 이정도론 어림도 없나보다.

나는 그대로 반대쪽 손가락을 그녀의 소중한 곳에 집어넣었다.


의식이 없어도 몸은 솔직하다. 구멍 전체가 이미 찐득한 애액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으며, 나름 정리한다고 노력했지만 미처 밀지 못한 털이 애액과 어우러져 마치 얇은 촉수마냥 내 손가락을 휘어감고 있다.


여전히 입을 헤 벌리고 아무 미동도 없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묘한 배덕감이 느껴진다. 약물에 취한 듯 풀려버린 표정이 나를 더더욱 흥분시킨다.


“으읏...”


사타구니가 뜨겁다. 무력해진 그녀를 잔뜩 범할 생각에 끓어오르는 성욕을 주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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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퍽퍽퍽-


얼마나 해댔을까? 주변에는 내 욕망서린 아기씨들로 가득 찬 고무쪼가리들이 몇 개나 널브러져 있고 그녀의 배와 얼굴도 내가 싸지른 정액으로 범벅져 있다.


계속된 사정으로 지칠대로 지친 나는 그대로 그녀 옆에 풀썩 드러누워 아까와 같은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전히 움직임은 없다. 정말로 느끼고 있긴 한걸까?


그녀가 이런 플레이를 요구해온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어릴 적 사고로 신체 상당부분을 기계로 대체한 그녀에겐 주기적인 충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연인이 된 후 처음 나눈 관계 도중 사고가 생겼다.

몸을 맞대는 것에만 정신을 쏟아 제때 충전을 하지 못한 그녀는 그대로 방전되어버렸지만, 나는 쾌락에 취해 그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행위를 이어갔다.


뒤늦게 그녀가 정신을 잃었음을 알고 옷도 입지 않은 채 구급차를 부르고 울고불며 난리를 쳤던 적이 있다.

  

다행히 가장 중요한 폐와 심장은 전원공급이 끊기더라도 비상용 배터리로 작동되기 때문에 생명에 큰 지장은 없었지만, 자칫하면 위험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 나에겐 큰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일이 있은 후였다.

그녀는 상습적으로 충전을 하지 않은 채 나와 섹스를 했고, 절정에 이를때마다 방전되어 나를 애타게 만들었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깜빡 잊었다거나 바빠서 못했다는 등 이것저것 변명을 둘러대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도저히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머저리가 아니고서야 자기 목숨이 걸린 문제를 까먹는다는게 말이 되는 소린가?


결국 그녀를 끝까지 몰아세운 결과, 처음 방전되던 그 날 새로운 취향에 눈을 떴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듣게되었다.


인공 신체가 작동을 중지하면 뇌는 남아있는 본래의 신체기관만을 인지한다.

그녀의 경우 가슴 아래부터 사타구니까지는 원래 몸이라 배를 만지는 촉감과 삽입으로 인한 자극은 이상없이 느껴진다고 한다.


처음으로 방전이 된 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소리도 없는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 몸을 헤집고 범하는 것에 처음에는 공포에 떨었지만, 

나중에는 더더욱 쾌감을 느끼며 셀 수 없이 가버렸다고 한다.


오히려 모든 감각이 그곳에만 집중되기 때문에 평상시 섹스보다 더욱 강렬하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에 나는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혼나는 와중에도 그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자꾸 손을 아래로 가져가려 하고 있었던 건 덤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아웅다웅한 결과, 얼떨결에 여자친구의 M 성향을 각성시켜버린 나는 많은 고민 끝에 그녀의 성벽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뒤로도 우리는 가끔씩 이런 플레이를 한다. 


처음에는 마치 시체와 성행위를 하는 느낌에 거부감과 공허함마저 들었지만, 지금은 나 또한 익숙해졌는지 오히려 평소 섹스보다 더 자극적이다.


이제 슬슬 충전 시켜줘야지. 깨어났을 때 그녀의 반응을 보는 것도 나름 재밌다.


나는 머리맡에 올려놓은 어댑터와 케이블을 그녀의 목덜미에 연결했다. 곧이어 부팅을 알리는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동공에 생기가 돌아온다.


“하으흐으으응♡ 아하하항~ ♡”


매번 깨어날 때마다 이렇게 귀여운 신음소리를 낸다.

반응을 보니 나름 만족했나보네.


“그렇게 좋아?”


“웅~ 근데 다음에는 배 더 만져줘♡ 바로 들어오면 못따라간다구.”


그새 출력했는지 눈동자 한가운데에 분홍색 하트무늬가 박힌 채 나를 보며 미소짓는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아무렴 어때? 좋으면 좋은거지.


“자아~ 그럼...”


갑자기 그녀가 일어나더니 기지개를 펴고 갑자기 나를 향해 몸을 날린다. 그녀의 양 팔이 내 손목을 단단하게 붙잡아 침대에 고정시킨다.


지칠대로 지친 내 힘으론 그녀의 완력을 당해낼 수 없거니와 애초에 기계신체는 평범한 사람이 감당할만한 성능이 아니다.


“야... 너 또 뭔...”


“헤헤, 그동안 나만 즐겼으니 이제 내가 기분좋게 해줄께♡”


큰일이다. 얘 또 이상한 프로그램 받아와서 그대로 써먹을 생각이다. 안돼, 살려...


“우리남편 뿅가죽는 착정 프로세스 ver 3.0 가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