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참교육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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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순애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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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인간 시리즈

1편


발할라 팀의 다급한 보고에 오르카호가 발칵 뒤집혔다. 두번째 인간이 발견됐다고? 아직 살아있는 채로? 지휘부는 물론 사령관까지도 기겁해 먹던 점심도 팽개치고 수복실로 내달렸다. 


"닥터는 바로 응급시술 준비해! 다프네와 리제는 의료도구 준비하고!!"


"폐하, 발할라팀이 도착했습니다!!"


"바로 수복실로 데려와! 나도 함께 봐야겠어!!"


그토록 오랫동안 수색한 끝에 마침내 발견한 두번째 인간이었다. 사령관의 심장이 흥분과 기대로 두근도 아니고 벌컥 거렸다. 잠시 후 환자용 침대를 끌고 발할라 팀이 나타났다. 앞에 마주 선 사령관을 발견한 레오나의 옆으로 사령관도 함께 수복실로 향했다.


"레오나, 이 사람이 두번째 인간이야?!"


"맞아, 달링! 뇌파가 분명 인간이야!! 철충에 감염되지도 않았어!!"


사령관이 황급히 침대에 누운 채 이송되는 두번째 인간의 얼굴을 봤다. 자신과는 다른 타입의 남성이었다. 거칠고 사납고 전투로 단련된 듯한 투사의 얼굴이었다. 오랜 시간 방치되어 피골이 상접하고 마치 죽은 듯 창백해 보이는 피부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저...살아있는 거 맞지..?"


"살아있습니다, 사령관님. 굉장히 느리지만 분명 맥박이 뛰는 것을 제가 확인했습니다!"


레오나의 옆에 있던 발키리가 강하게 주장했다. 철두철미한 발키리의 확인이라면 신뢰가 갔지만, 눈앞에 보이는 이 시체같은 몰골이 정말 살아있다니. 정신없이 달리니 어느새 수복실에 도착했다. 사령관이 수복실을 힘차게 문을 열자 준비를 마친 닥터와 다프네, 리제 간호팀이 수술 대기 중에 있었다.


"오빠, 여기로 빨리!"


두번째 인간의 침대를 서둘러 닥터의 앞으로 배치시켰다. 닥터는 능숙한 솜씨로 두번째 인간의 외피를 시저스로 찢어 맨몸을 드러내게 했다. 그리고는 바로 센서를 왼쪽 가슴에 붙였다. 모두들 숨 죽인채 침대 옆에 배치된 심박 측정기를 응시했다. 형광빛의 녹색 줄이 쭉 이어지면서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들 보았다.


.........띠.....


분명 뛰었다. 부정할 여지 없는 순간이었다. 이 사람은 아직 살아있었다. 느리지만 분명 심박 측정기는 몇 번이고 자신에게 연결된 두번째 인간의 심장 박동을 표시했다. 사령관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정말이었어...정말 살아있었어...."


놀란 것은 사령관만이 아니었다. 레오나도 발키리도, 닥터도 모두들 두번째 인간의 생존 사실에 경악했다. 모두 충격에 빠져 있기도 잠시. 사령관이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다시 정신을 차리려 했다. 살아있는 것을 확인한 것은 분명 경사였다. 문제는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 어떻게 살아있는거지? 이렇게 시체꼴이 되고서도?!"


사령관의 의문에 닥터가 재빨리 두번째 인간의 몸을 검진하기 시작했다. 피골이 상접한 두번째 인간을 꼼꼼히 살피는 닥터. 청진기로 가슴을 대기도 하고, 전등으로 두번째 인간의 눈을 확인하기도 했다. 한참을 검진하던 닥터가 해답을 내놓았다.


"지금 검사해보니까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야. 첫째, 이 사람 휩노스 병에 걸렸어."


휩노스 병. 정확히는 휩노스 증후군. 우주에서 발생한 전파가 인간의 중추신경을 망가뜨려 영원한 잠에 빠뜨리게 하는 악몽과도 같은 증상이었다. 철충에게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구 인류도 결국 이 휩노스 병을 이기지 못하고 전멸하고 말았다. 오리진더스트로 중추신경을 강화한 바이오로이드만이 그 병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아내 사령관에게 비슷한 조치가 취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우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되려 휩노스 병은 사람을 잠에 빠뜨려서는 끝내 죽게 만드는 병이었다. 이렇게 살아있을 수는 없다.


"또?"


"두 번째는 아무래도 그 지역의 기온과 이 사람이 있던 위치 덕분인 것 같아. 혹한의 날씨에 신체가 그대로 냉동되버렸고, 부패를 방지할 수 있는 밀폐된 지하에서 방치된 덕에 유사 냉동인간 비슷한 상태에 빠진 것 같아. 혹한 때문에 중추신경의 변화도 매우 느려져서 휩노스 병의 진행도 늦춰진 것 같고."


"그게 가능해?"


"나도 이론상으로만 확인했지,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게다가 이론상으로도 정말 극악의 확률이었고."


그 두가지 이유라면 어느정도 말은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것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거야. 아무리 그래도 최소 몇 십년이라고. 그 몇 십년 동안 링겔도 안 맞은 상태에서 가사상태로 수십년을 버틴다는 건 불가능해."


"맞는 말이야, 오빠.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은 상태로 가사상태에 빠질 수 있는 건 동굴영원(도롱뇽)이나 곰벌레 정도 밖에 없어."


모두가 여전히 의문에 쌓여 있을 때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사령관님. 제가 세번째 이유를 찾은 거 같습니다."


발키리의 발언에 모두가 그녀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발키리가 두번째 인간의 오른쪽 손목을 가리켰다. 손목 안 쪽에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동그란 원형 안에 검과 총이 대각선을 그리며 알파벳 V를 만들고 있었다. 문신보다는 왠지 상표에 더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문신을 확인한 레오나가 탄성을 내질렀다.


"이 사람...에인헤랴르였구나..."


"에인...뭐?"


"에인헤랴르, 달링. 과연 에인헤랴르라면 말이 돼."


"설명해줘, 레오나. 에인헤랴르라는게 뭐야?"


레오나가 입술에 침을 적시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까...달링도 남성형 바이오로이드가 없는 이유는 잘 알지?"


"어. 남성 호르몬이 오리진 더스트와 결합하면 비정상적인 폭력성을 유발했다고."


"맞아. 첫번째 전투형 바이오로이드 고블린이 그렇게 폐기됐지. 그래서 바이오로이드는 줄곧 여성형만 존재해."


"하지만 몇몇 인간들은 여전히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죠. 꼭두각시를 믿을 수 없다던가, 여성의 신체보다는 남성형 신체가 더 유용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서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습니다. AGS들을 이용한다던지, 아니면 어떻게든 인간의 장비를 더 발전시켜서 바이오로이드에게 대항한다던지."


"에인헤랴르도 그런 방법 중 하나였어. 오리진더스트로 인간의 신체를 강화시켜서 양성된 일종의 초인병사들이야. 성인 남성은 이미 오랫동안 남성 호르몬이 몸에 축적되어서 부작용이 심했기 때문에 주로 2차 성징이 오지 않은 아이들이 대상이었지. 성장할 때마다 오리진더스트로 신체를 강화해 나가고, 늘 가혹한 훈련으로 몸과 정신을 모두 전투병기로 만든거야."


"....그 아이들은...전부 어디서 데려왔고...?"


멋모르는 아이들이 그런 실험에 자발적으로 참여했을리가 없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레오나와 발키리 모두 입을 닫았다. 사령관의 턱에 핏줄이 솟았다. 어떻게 구 인류는 만행을 저지르는데 이렇게 천재적일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매번 새로운 방법으로 자신의 기분을 더럽게 만들다니. 처음에는 바이오로이드들을 꼭두각시로 부리고, 도구처럼 대하더니. 이제는 같은 인간도 도구처럼 개조해 써먹어? 그것도 자발적인 지원이 아니었다. 분명 갈 곳 없는 고아나 부랑아들을 거짓으로 속이고, 납치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보아하니 성공확률도 정말 극악에 달했을 것이다. 옆의 닥터가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늘 생각하는거지만....구 인류는 정말 멸망당해도 싼 새끼들이었어."


"동감해, 달링."


"심지어는 혹시나 반항의 여지를 없애려고 지속적인 세뇌와 기억조작까지도 벌어졌다고 해, 오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에인헤랴르의 강함은 꽤 성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기록상으로는 저희 발할라와도 전선을 형성해 뒤쳐지지 않을 활약과 전투력을 선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을 개조시키는데 걸리는 비용과 시간이 효율이 맞지 않다고 결국 사장된 것으로 압니다. 이 사람은 아마 마지막 에인헤랴르 중 하나였을 겁니다."


"그래....그런데 그러면 오리진더스트가 중추신경을 감싸서 휩노스 증후군에 면역이어야 했을텐데, 이 사람은 어쩌다가 걸린거지?"


"내가 보기에는 휩노스 증후군을 이겨낼 만큼의 오리진 더스트를 주입받지 않아서 인 것 같아. 주로 이런 초인병사들은 비용을 아끼려고 몸 전체보다 근육이나 뼈에 부분적으로 오리진더스트를 강화하거든."


이것으로 모든 의문이 해소되었다. 휩노스 증후군에 걸린 오리진 더스트로 개조된 강화병사가 혹한의 동토에서 냉동인간이 된 채 가사상태에 빠져 여지껏 버텨오고 있었다. 


"그래서 오빠?"


"응?"


"어떻게 할까? 이 사람....살려도 될까?"


모두가 사령관의 결정을 기다렸다. 사령관은 고뇌에 빠졌다. 과연 이 사람을 다시 소생시키는 것이 옳을까? 과거 구 인류의 명령을 따랐던 초인병사를? 자신은 이 자가 어떤 자인지 모른다. 선한 사람이었다면 좋겠지만, 어쩌면 그 옛날 바이오로이드들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던 선민의식으로 오만하고 역겨운 인간상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직 살아 숨쉬는 동족을 죽게 놔둘 수 도 없었다. 


도저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레오나가 사령관의 옆에 다가왔다.


"사령관...아마....이 사람은 살려도 괜찮을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해?"


레오나와 발키리가 주저하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실은....이 사람을 발견한 곳에....다른 이가 한 명 더 있었어...."


"그게 누군데?"


"안드바리였습니다."


안드바리. 사령관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오르카호의 보급 창고를 맡고 있는 작은 소녀. 매번 알비스와 LRL이 몰래 들어와 참치와 초코바를 훔쳐 먹으려는 걸 저지하고, 그게 실패하면 세상 떠나가라 엉엉 우는, 그러다 사령관이 떡볶이를 선물해주면 금방 풀어져서 환하게 웃어주는 귀여운 아이였다.


"저희가 받은 신호도.....그 안드바리가 보낸 신호였습니다."


"그 안드바리는....?"


"......"


레오나와 발키리 둘 모두 대답하지 못했다. 사령관 또한 탄식하며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그제야 둘이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게 끔 설계된 바이오로이드. 그런 바이오로이드가 휩노스 병에 걸린 인간을 구하기 위해 그 어두운 방공호에서 홀로 버티면서 숨이 끊어지기 전에 구조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이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한다면 사령관도 더 이상 망설일 것이 없었다.


"좋아. 결정했어. 레오나, 발할라 팀을 데리고 다시 그 공장으로 향해줘. 그곳의 시신들을 모두 수습해서 오르카호에서 합동 장례식을 치뤄주자."


"고마워, 달링."


"닥터. 현 시간부로 수복실의 모든 권한을 맡길게. 어떻게든 이 사람을 살려내."


"맡겨줘 오빠!"


사령관의 지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닥터가 위생 마스크를 코까지 끌어 당겼다. 다프네와 리제도 위생장갑을 끼고 준비에 들어갔다.


"그럼 오빠, 언니들 미안하지만 나가줘. 수술에 집중해야하니까."


"최선을 다해줘, 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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