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채널

이곳저곳에서 야짤을 구경하다가 예전에 친하던 친구랑 가볍게 술을 마시다가 고백할 게 있다면서 고해성사식으로 들었던 썰임. 야설란에 쓰는 이유는 MSG를 뿌릴거라서(좀 많이) 그냥 소설로 읽어줬으면함




친구의 이름(익명)은 김장민이고, 여동생의 이름(김지혜)라 적겠음







내게 있어 아버지라는 사람은 공포 그 자체였다. 여럿을 적부터 아버지가 일에서 돌아오실 시간이 되면 여동생이랑 같이 장롱이나 베란다에 숨어서 주무실 때까지 기다릴 정도로 우리에게 있어 아버지는 공포의 대상이자 악마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말 그대로 기분파. 기분이 좋으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줄 듯 대해주지만, 어떠한 이유든 간에 기분이 조금이라도 안 좋아지면 갖가지 말도 안 되는 수많은 이유와 명분을 갖다 붙이며 어머니를 폭행하고 우리에게 살벌할 정도의 욕을 내뱉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난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모두 공포의 대상이자 두려움을 만들어내는 악마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세상을 이해하고 한두 명 정도의 친구를 사귀고 나니, 그제야 나는 내 아버지가 너무나도 비정상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에게 있어, 어머니는 천사이자 구원자였다. 항상 우리를 보호해주며 날아드는 욕과 폭력의 화살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시는 방패... 이게 어느 정도였느냐면 남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다닐 때에 우리는 스마트폰은커녕 폴더폰조차 가지려 하지 않았다. 통신수단이 생기는 순간부터 아버지가 언제나 전화로 우리를 괴롭힐지 알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는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닐 수밖에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 그리고 예상대로, 아버지라는 인간은 항상 나와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며 지금까지 수백 번을 반복해서 들었던 설교와 알지도 못하는 친구의 자식들을 예로 들며 우리와 비교하기를 매일 반복했다. 이렇게 되니 나도 물론이지만, 여동생 또한 우울증에 빠져서 자살 충동에 시달렸었다.







지금부터 내가 적을 이야기...아니, 고해성사는 저지르지 말았어야 할 패륜이자 죽을 때까지 지고 가야 할 죄악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버지란 인간에게 갖가지 욕을 받아먹는 날이었다.



"야 이 제기랄 새끼야! 이딴 식으로밖에 못해?!"


"...죄송합니다."


그리고 머리 위로 날아드는 괴물의 거대하고 투박한 손바닥.



"으읔..."


"영어로 매일 일기를 쓰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거냐? 고작 해봤자 200자야 200자!"


그리고 시작되는 수많은 사람과의 비교...


"준석이 알지? 그놈이 이번에 전교에서 10등을 했어 10등! 그리고 민기는 수학대회에서 대상을 타고! 그런데 너는 대체 뭐하는 놈인 거야! 네 아빠 창피하게 만들고 싶어서 그런 거냐?!"


"아니에요.."


"아니기는 씨발!"


그리고 불붙는 담뱃불....


"하다못해 네 여동생보다는 잘해야 될 거 아니야! 이딴 게 오빠라고.."


재일 고통스러운 것... 그것은 바로 나보다 4살은 어린 여동생과의 비교였다.


"......"


"병신새끼가..."


집안의 분위기는 말 그대로 살벌했다. 그렇게 30분 동안의 욕과 설교를 듣고 난 뒤에 드디어 괴물이 잠자리에 들었다.


"....."


"오빠,..괜찮아..?"


지혜는 어려서부터 너무나도 착하고 순수했다. 작은 것에 기뻐하고 언제나 감사를 표현할 줄 아는 아이..하지만 그런 아이도 아버지란 괴물이 일으키는 지진과 불길에 점차 지쳐갔다. 그리고 이제는 내 눈치를 볼 정도로 나를 어려워하고 있었다.


"가서 일기나 계속 써..."


"오빠.."


"후우...난 괜찮으니까 일기나 쓰고 빨리 자."


이러면 안 되는데... 지혜한테 짜증을 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이 분노.... 남들과 비교당하는 거? 솔직히 힘들지만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여동생과 비교된다는 것은.... 매주 최소 3번의 비교를 당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가슴이 찢어지는 거 같다. 동생보다 못한 놈.... 그것이 괴물이 내게 붙여준 또 다른 이름이다.


"하아....."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마침 머리도 아파서 독한 해열제를 먹으니, 비교적 쉽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덮고 있던 이불이 땀에 젖어서 잠에서 깬 순간, 누군가가 방문을 천천히 열었다.


'하...시발..'


괴물도 아버지라면 아버지라고... 어쩌다 한 번씩 이런 식으로 들어와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을 때가 종종 있었다. 내가 미안하다는 등.... 친구들이 자식새끼들 자랑하는 게 너무 부러웠다는 등.... 조금만 잘해주면 좋겠다는 등.... 괴물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결국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난 침대 위에서 최소 10분 동안 그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달이 차오른다~ 가자....'


나는 듣는 것조차 거북할 정도로 시답지 않는 변명을 최대한 무시하기 위해 평소 좋아했던 노래를 마음속으로 불렀다. 그런데...


"으음..."


'...?!!'


입술에서 느껴지는 촉촉함...그리고 향긋한 샴푸향.... 나는 이 향기를 알고 있다.


'지혜야..! 너 지금 뭐하는...?!'


지혜와 내게 키스...라기보다는 입술로 뽀뽀하는 것이었다.


'뭐야 이게...대체 이게 뭔데!'


너무 당황해서 반응하는 것조차 늦어버렸을 정도로 정신이 어지럽고 머리가 백지마냥 새하얘졌다.


"하아...하아..."


야릿한 지혜의 숨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이대로 일어나면 지금도 서먹한 지혜와의 관계가 더 서먹해질 거야. 잠꼬대라도 해서...'


"내가 미안해 오빠,..."


'.......'


"정말...정말 내가 미안해..."


지혜는 숨을 죽이며 울기 시작했다. 자신이 미안하다고... 자꾸 비교당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이다. 지혜는 있지도 않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음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좋은 오빠가 되려고 노력했는데... 이런 식으로 지혜의 사과를 들으니...


'시발......'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대체 왜 나가 사과하는 건데..! 대체 왜! 너도 지금 내어줄 듯 잘났다고 인정하는 거냐?! 내가 그렇게 못난 놈이야?! 동생한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사과를 받을 정도로?!'


그간 지혜에게 최대한 잘해주고, 가깝게 지내려 했던 이유. 그것은 바로 현재의 이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지혜에게 사과 따위를 듣고 싶지 않다. 내가 너무 처량해지니까...내가 너무 한심해지니까... 적어도 나 자신을 혐오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혜는 내 노력과 마음가짐을 깡그리 박살 냈다.


'망했다...'


지혜에게 사과를 듣는 순간, 나는 본능에 따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혐오하게 되었다는 것을......










그날 이후, 나와 지혜의 사이는 멀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지혜를 무시하게 되었다.


"오..오빠. 아이스크림 사왔..."


"나 다이어트해야되서 안 먹을 거야."


"...알았어..."


지혜는 힘없이 사온 아이스크림을 혼자서 먹었다.


"오빠... 1박 2 일하는..."


"공부해야 해."


"......"


지혜는 눈물을 삼키며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오빠 먹고 싶은 거 있..?"


"밖에서 빵 먹고 와서 별로 배 안 고파."


그날 지혜는 저녁을 걸렀다. 그렇게 1주일 정도 지나니, 괴물 또한 나와 지혜 사이의 기류를 읽었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방안으로 들어가 잠자리에 들었다. 농담하지 않겠다. 평생 살면서 오늘처럼 조용했던 밤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나도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병신아... 너 대체 왜 그래...'


지혜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야 이 병신아. 이제는 하다 하다 네 여동생을 혐오하는 거야? 너 제정신이냐?'


내 마음이 절규하듯 내게 외쳤다. 하지만 머리를 지배한 분노는 도저히 가라앉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정말 난 병신인가?"


나는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지혜가 들어왔다.


"오빠..나 부탁이 있어."


"부..부탁?"


지혜는 기본적으로 내게 부탁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부탁이라니....


"나랑 같이 산책 좀 가줄 수 있어?"


"...알았어."


지혜의 부탁에,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던 분노가 한순간 시베리아의 동토처럼 차가워졌다.











아파트의 뒤편에 있는 공원.... 지혜는 어린아이크기의 곰 인형을 들고 나와 함께 밤거리를 걸었다.


"...."


"...."


늦가을의 차가운 바람보다 더욱 차가운 이 분위기. 지혜가 정말 오랜만에 산책하고 싶다고 내게 부탁한 이상, 이 분위기를 타파하는 것은 나의 의무다.


"그래서... 오늘 학교는 어땠어? 괴롭히거나 그런 애들은 없고?"


"전부 잘해줘. 선생님께서도 정말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주셨어."


"다행이네..."


"....오빠."


"응?"


"나..이것좀 잡아줄 수 있어?"


지혜는 곰 인형의 한쪽 팔을 내게 건넸다.


"인형을 잡으라고?"


"아니....인형읠 팔을 좀 잡아줘."


나는 곰 인형의 팔을 잡고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적으로 흔들이는 팔...


"이게 너무 하고 싶었어."


"뭐가?"


"이거... 손잡고 그네. 엄마랑 오빠가 자주 해줬잖아."


"..그랬지."


나는 어렸을 때부터 키가 160에 몸무게도 60kg이 넘는 돼지에 키도 반에서 가장 컸기에, 고작 3살 차이인 여동생에게 팔 그네를 태워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너무 커서 못하니까..이렇게라도 하고 싶었어."


".....지혜야."


"응?"


"오빠가 미안해..."


"왜?"


"지혜한테 심술부리고 짜증 내서."


"아니야...내가 미안해."


"미안해하지 마 지혜야. 그냥 넌 니 일을 한 거잖아. 그러니까 될 수 있으면 이런 걸로 오빠한테 사과 같은 건 안 해줬으면 해."


"...알았어."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니, 금세 지혜와 내 입가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그리고 우리는 곰인형을 마치 5살의 어린아이와 놀아주듯, 그네를 태우며 폐허처럼 무너진 기억 속 너머의 잊고 있었던 추억을 꽃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