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채널

  여관에 도착해 침대를 내려놨을 때 엘프의 흰 장갑은 애액으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그녀를 업고 다닌 탓이다. 다프네는 업혀가는 도중에 몇 번이고 절정에 올랐고 덕분에 신음을 흘리는 하반신 노출의 여자나 백의의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엘프 여성이나 거리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엘프는 장갑을 벗어 닦아내고 아에사의 이마를 스다 듬었다. 여전히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지만 스팻의 요동이 진정되었는지 아에사는 조용히 숨을 쉬며 자고 있었다.


  엘프의 이름은 다프네 홀란이다. 한 달여 전 성결식을 갖고 진정한 이노센트 나이트가 된 팔라딘이었다. 성결식을 마친 이후, 첫 임무로서 외부 출장을 갖는 팔라딘들이 두 번째로 많이 맡는 임무인 ‘흐름 수색’을 하게 되었다. 로믈루스 후작의 영지인 노아 신성령은 다른 영지들의 가문이 역사에서 한번쯤 ‘흐름’을 소유 한 적 있는 점을 볼 때 로믈루스가의 시조가 단 한번의 흐름도 없이 영지를 갖게 된 것은 하나의 미스테리였다. 그러나 노아 신성령에는 흐름 만큼 강력한 존재가 있었다. ‘오라클 나이트’. 현재의 검끝이 아닌 미래의 움직임을 보고 적을 대적하는 기사들은 전투에서는 무적이었고 대상이 ‘인간인 한’그들은 패배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을 셋이나 보유하고 있는 노아 영지는 다른 가문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힘있는 가문이었다.


  그러나 제국 시민들에게 ‘흐름’을 가지는 것은 영지를 상징하는 하나의 증명과 같은 것이어서 로믈루스는 흐름에 대해서 콤플렉스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 콤플렉스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시조때부터 내려온 가문의 숙명이나 다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팔라딘들을 제국 곳곳으로 보내 흐름을 수색해 계약을 맺거나 영지로 ‘열쇠’를 가져오는 것에 많은 노력을 보였다. 다프네는 그런 팔라딘들 중 한명이었다.


  “으으응...”


  아에사가 신음을 흘리며 깨어나자 다프네는 일어나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 다프네의 손이 아에사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었다.


  “깨어났는가?”

  “여, 여기는?”


  다프네는 물을 한잔 건내주며 말했다.


  “내가 묵는 여관이네. 아, 내 이름은 다프네 홀란. 레이디께서는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아에사는 그녀의 말투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그녀의 태도에서 친절함을 읽어 더듬거리면서도 대답했다.


  “아, 아에사 드 미노타에요. 16살.”

  “아에사 양. 다행히 흉행을 당하기 전에 구해낼 수 있었네. 하지만 조금 더 빨리 왔다면 좋았을텐데, 미안하군.”

  “그, 그런 말씀을. 구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아에사는 엉거주춤 일어나 상반신을 세우고 다프네가 건내주는 물잔을 받아 홀짝거리며 마셨다. 다프네의 말투는 어쩐지 남성적이었다. 원래 그런건지 일부러 그런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딱딱한 말투 속에서도 경건함과 고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에사는 다프네의 얼굴을 보다가 어쩐지 부끄러운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날은 어느새 저물어서 밖은 노을과 함께 어둠이 어우러져 묘한 색을 띄고 있었다. 바다로 들어가버린 태양은 어느새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그 붉은 여운은 남아서 밤바다를 밝히고 그 사이에서 바다는 미노타 대거와 같은 푸른 빛으로...


  “아차!”


  아에사는 당황해서 황급히 티셔츠 안을 들춰보았다. 흘러내린 애액으로 젖은 새하얀 허벅지에는 검집과 함께 벨트가 매여있었지만 미노타 대거는 없었다. 







  한편 미노타 대거를 들고 갔던 건달은 자신 앞에 있는 아름다운 포니테일 머리를 한 흑발의 미녀를 두고 상당히 난감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뭐야, 설마 벌써 새로운 계약자냐? 아에사는 어디갔어?”

  “예, 예에? 무, 무슨말인지.”


  무슨 일인즉슨 아무 생각없이 미노타 대거로 벽에 낙서를 하다가 갑자기 공간이 멈춘 것이다. 공간을 여는 것은 마음을 비우고(아무 생각없이) 뭔가를 그으면 계약을 위한 접대실인 타임 스트림이 열리는 것이다. 미노타 가의 자손들이 대대로 바람의 정을 찾아 계약하려고 했지만 실패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아무 생각없을 정도로 멍청한 자손이 없었던 탓이다. 아에사의 경우는 패닉과 자포자기로 아무런 생각도 없었기에 바닷물이 쪼개지며 타임스트림이 열렸었다.


  아직 이름도 안 나온 건달(앞으로도 이름은 안 밝힐 생각이다)은 칼로 벽을 긁자마자 난데없이 왠 꼬맹이가 튀어나와 눈살을 찌뿌리더니(건방지게도)입을 벌리고 누군가를 불러냈다. 다른 자신의 패거리들은 시간이 정지 된 듯 웃고 떠드는 모습으로 딱 멈춰있었다. 그리고 흑발의 미녀가 튀어나와 자신에게 이렇게 지껄이는 것이다.


  “너! 설마 우리 아에사한테서 그걸 뺏은거냐?”

  “그, 그러면 어쩔건데. 아에사가 누군지는 알 바 아니지만 너, 넌 뭐야?”


  모르덴티아는 눈살을 찌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미노타 대거를 가지고 자신을 불러낸 이상 그는 계약자이다. 계약자는 문서를 작성하고 도장찍고 사인하고 하는것이 아니라 단지 열쇠를 ‘가지고 만’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흐름은 자신의 진명을 알려줄 의무가 있었다. 사실 의무라기 보단 이름을 알려줘야 그가 자신을 불러 낼 수 있고 인간의 느낌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뭐, 모든 것은 흐름의 인도대로 되겠지. 내 이름은 모르덴티아 에아다. 넌 뭐야?”

  “모, 모르덴티아 에아? 이상한 이름이군. 내 이름은 알 바 없어! 어서 나를 돌려 보내줘!”


  모르덴티아는 눈살을 찌뿌리곤 예레미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예레미아는 그를 차가운 눈으로 보다가 손가락을 딱 튕겼다. 세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우우하는 소리와 함께 세상의 소음이 다시 돌아왔다. 건달들은 멀쩡히 방금 따먹을 뻔 했던 여자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흑발의 여자에게 당황했다. 물론 계약을 맺은 당사자인 건달은 놀라지 않았다.


  “뭐, 뭐야. 저 년은. 갑자기 나타났어.”


  건달들이 허둥지둥 뒤로 물러났다. 검은 긴팔 옷을 입은 그녀에게서는 위험한 공기가 풍기는 데다 몸의 굴곡이 거의 드러나지 않아 매력도 그다지 못 느꼈기 때문이다. 계약을 맺은 건달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동료들이 있자 어쩐지 안심이 됐다.


  “그러고보니 아까 계약이니 어쩌니 했었지. 너 혹시 정령이나 뭐 그런거냐?”

  “설명하기 귀찮군. 비슷해.”

  “흐흐. 그럼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거군? 좋아. 이리와서 내 좆에 봉사해.”


   모르덴티아의 인상이 대번에 찡그려졌다. 흐름에게 그런 일을 할 의무 따위는 없었다. 열쇠와 흐름은 대등한 관계로 열쇠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이 세계에 현신 할 수 있게 되는 그런 상호적 관계였다. 그런데 저놈은 그런 걸 무시하고 상대방을 농락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르덴티아로서는 계약자를 멋대로 바꿀 권한이 없었다. 게다가 열쇠의 의지를 배신하면 인과율에 따라 모종의 징계가 내려졌다. 편법을 통해 현신하는 길을 만든 대가였다. 크게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이 남자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열쇠의 소유주라면 의지를 거슬러서 좋을 것은 없을 것이다.


  모르덴티아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고 그의 바지를 내렸다. 시큼한 냄새와 함께 역겨운 그의 성기가 드러났다. 거칠게 발기한 남성은 모르덴티아의 입술을 건드리며 다가섰다. 모르덴티아는 천천히 혀를 내밀어 그의 남성을 입안에 물었다. 그리고 머리를 앞뒤로 천천히 왕복하기 시작했다.


  건달은 킬킬거리며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채고 거칠게 앞뒤로 흔들었다. 모르덴티아의 입에서 침이 흘렀다. 건달들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다가갔다. 모르덴티아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육노예로 보였다. 한 건달이 그녀의 뒤에 다가와 상의를 가슴 위까지 끌어올렸다. 모르덴티아는 움찔하며 옷을 내리려고 했지만 가만있으라며 더 세게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힘없이 손을 그의 허벅지에 짚었다. 


  그때 그녀의 바지를 벗기려던 한 건달이 풀썩 쓰러졌다. 


  “어라?”


  모르덴티아의 펠라치오를 받던 건달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의 의문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또 하나가 쓰러졌다. 상처는 없었다. 단지 자신이 쓰러지는 이유를 알 수 없어 의아함에 빠진 얼굴들일 뿐이었다. 또 하나가 쓰러졌다. 건달은 자신만 남게되자 갑작스런 공포에 몸이 덜덜 떨렸다. 의식이 멎었다.


  한창 그의 남성을 빨던 모르덴티아는 그가 갑자기 뒤로 풀썩 쓰러지자 비척거리며 앞으로 쓰러질 뻔 했다. 입에는 조금 분비된 정액이 남아있어 거칠게 침을 뱉었다. 역겨운 기분이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둘러보았다. 남자들은 상처가 하나도 안 보이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금방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했다. 남자의 심장과 이마에서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이 비틀거렸다. 열쇠를 가지고 있어야 할 계약자가 죽어 그의 몸에 나온 혼-마나-가 빠져나가 육신을 지탱시키기 힘든 것이다. 그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흑발의 청년 하나가 검을 든 채 서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