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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강물






~천사의 상처(Angelic scar)~






  2일 후 배는 그야말로 나는 듯 한 속도로 항구에 들어가 안착했다.

  아에사는 믿을 수 없는 눈으로 항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이틀 동안 배가 어찌나 빠른 속도로 움직였던지 갑판에서는 바람 때문에 뭔가 잡고 서있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었다. 그 바람은 너무 빨리 움직여서 앞에서 불어닥치는 바람이 아니라 뒤에서 모르덴티아가 조절하는 풍압에 의한 것이었다.


  모르덴티아는 선실 위 배의 후미에 흔들 의자를 가져다 놓고 거기에 누워 태양광을 즐기며 바람을 불어넣었다. 돛대는 늘 찢어질듯 팽창해있었고 그 엄청난 바람속에서 모르덴티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있었다. 아에사가 갈때만 그녀의 주위로 풍압이 약해졌을 뿐, 다른 선원들은 접근도 못할 지경이었다.


  아에사는 선원들이 입는 커다란 반팔 셔츠를 입고있었다. 아에사가 바다에 뛰어들자 도리스가 홧김에 그녀의 옷가방을 가져와 바다에 던져버린 것이다. 그 바람에 아에사는 비싼 혼수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입을 옷가지도 없는 꼴이 되었다. 그래서 선원들의 옷을 구했는데 다들 바지가 너무 커서 가늘고 작은 아에사에게 도저히 맞는 옷이 없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아에사는 가장 큰 반팔 셔츠를 골라 입기로 했다. 바지는 맞는 것이 없었고 어정쩡하게 짧은 티셔츠를 입으면 팬티조차 없는 그녀의 치부가 보일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반팔셔츠는 그럭저럭 허벅지 위로 한 뼘 정도까지는 가려주었다. 그보다 더 나은 옷은 구할 수 없었기에 아에사는 만족했다. 그러나 목 부위 부분은 지나치게 넒어서 조금만 흔들리면 한쪽 어깨가 드러날 수 밖에 없었고 조금만 더 걸으면 한쪽 가슴이 보일 지경이었다. 그래서 아에사는 어쩔수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보냈다. 갑판은 바람이 지나치게 불어 이 옷을 입고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선원들은 그녀를 두려워해서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봤자 조라까지 여섯명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녀를 보면 선원들은 움찔하고 황급히 방안으로 들어갔다. 조라는 그녀를 굳이 피하지 않았다. 항상 그렇듯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 볼 뿐이었다. 아에사도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아에사, 이제 내려가야지. 그런데 피곤하지 않아?”


  그러고보니 모르덴티아가 있던 날부터 늦잠을 자고 몸이 좀 더 부스스했던 것을 깨달았다. 아에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했다.


  “흐음. 그럴 줄 알았지. 일렌이야 마법사였으니까 나를 일년 내내 소환해놔도 멀쩡했겠지만 너는 보통사람이니까. 내가 육체를 존속하는데는 계약자의 마나가 필요하거든. 그런데 너는 마나가 적으니까 체력을 앗아간거야. 이대로 계속 있으면 너는 점점 피곤해지고 결국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돼. 그러니까 버티기 힘들면 나한테 언제든지 얘기해.”


  모르덴티아는 그렇게 말하고선 배의 난간 위에 올라섰다. 그리곤 아에사를 향해 방긋 웃고는 뒤로 넘어지듯 바다로 뛰어들었다. 풍덩, 소리가 나는 대신 그녀의 몸은 바다에 닿기 전에 바람으로 화해 사라졌다. 그녀의 옷도 마찬가지였다. 바람 한줄기가 그녀의 뺨을 스쳤다. 아에사는 낮게 탄식했다.


  “꿈을 꾼 기분이야...”


  확실히 모든 것이 꿈같았다. 몇 번이고 추행을 당하고 순결까지 잃었는데 갑자기 구원자를 얻고 순식간에 항구로 도착했다. 모든 것이 환상이고 거짓말 같았다. 당장이라도 유모가 와서 ‘아가씨, 일어나세요.’ 라고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은 그녀가 꿈이 아님을 각성시켰다. 아에사는 옷매무새를 대충 여미고 배를 내려가기로 했다. 선원들은 이미 내려 보이지 않았다. 최음제 같은 건 전부 바다에 던져버려서 옮길 짐따윈 없었다. 이걸로 페니키아 상단은 적게나마 타격을 입겠지. 페니키아 상단은 미노타 상단이 몰?韆玖庸?그 자리를 치고 들어온 상단이었다. 밀무역과 과도한 장삿속으로 큰 악명을 얻고 있는 상단인데, 그 상단에서 자신을 노예로 만들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아에사가 부두에 걸어놓은 나무 판자를 걸어 내려고 할 때, 그녀는 판자 옆에 서있는 조라가 보였다. 조라는 조용히 아에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에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지나갔다. 조라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고맙다.”


  아에사는 그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몸을 휙 돌려 그의 뺨을 치고 말았다. 조라는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에사는 이빨을 짓씹는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당신에게 고마움이라는 게 있다면,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해. 하다못해 감정이 있다면 눈앞에서 사라져서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마.”


  조라는 씁쓸한 표정으로 몸을 돌려 항구로 향했다. 그는 금방 항구의 인파에 파묻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에사는 홀로 떨어진 감각과 함께 묘한 슬픔을 느꼈다. 어디로 가야할까.


  쿠 클랙스 항구는 미노타 항구와 가장 밀접한 항구로서 미노타가의 전성기때에는 가장 큰 지부를 갖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전 화재로 불탔을 때 이미 여력이 없어 나가떨어진 미노타가는 지부를 다시 세울 힘도 없었다. 그래서 쿠 클랙스 항구는 페니키아 상단의 손에 들어갔고 미노타가는 무역을 할 때마다 페니키아 상단에 중개료를 내는 지경이었다.


  아에사는 우선 항구에서 기다리고 있을거라던 미노타 상단의 사람들을 찾기로 했다. 마차를 끌고 나와 있을거라고 했으니 항구를 둘러보면 금방 찾을 것이다. 그녀는 발걸음을 옮겨 애써 쾌활한 태도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 태도를 수정했다. 옷이 너무 크고 헐렁해서 조금만 쾌활하게 움직이면 옷이 금방 흘러내려 가슴이 보인다. 조금만 펄럭거리며 팬티조차 입지 않은 치부가 쉽게 보인다. 그래서 아에사는 조심스럽게 조신조신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 태도를 수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고 바글거려서 조신조신 느리게 걸으면 금방 부딪혀 비틀비틀 넘어질뻔 하거나 옷이 당겨진다. 아에사는 몇 번이나 가슴을 보일 뻔 하고(실제로 몇 명은 봤을지도 모른다)서야 아에사는 최대한 사람을 피해가려고 했다. 


  아아, 그러나 어디에나 초딩의 만행은 있기 마련인 걸까. 아에사의 처지를 눈치 챈 짖궂은 꼬마 아이들이 달려와 아에사의 티셔츠를 활짝 들췄다. 앞쪽에만 신경쓰고 있던 아에사는 갑자기 활짝 들춰지는 티셔츠에 당황했다. 들춰진 티셔츠는 허리에 걸려 눈부신 엉덩이를 대로 한가운데서 드러냈다. 아에사가 당황해서 티셔츠를 끌어당겨 정돈하려 했지만 이미 수 많은 사람들이 보고 난 뒤였다.


  “노팬티래요~ 노팬티래요~”


  꼬마 남자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아에사 주위를 돌며 떠들었다. 아이들은 곧 이어 아에사의 티셔츠를 다시 까 뒤집으려고 해 아에사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급히 피하려고 했지만 잡아당기고 뒤집는 통에 가슴이 몇 번씩 노출되고 치부마저 보였다. 아에사는 겨우 골목길로 피해 들어갔다. 그러나 그녀를 따라 들어오는 그림자들까지 눈치 채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