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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








주여 가엾이 여기소서(Kyrie eleison)






  그것은 단호한 단죄. 폭풍 속 한순간 번뜩임과도 같은 강력하고 섬광의 참죄.


  먹고 자고 사랑하고 증오하며 살아있는 죄, 사형.


  아이를 안은 여자가 쓰러진다. 새카만 어둠이 그들을 찢는다. 아직은 검은 밤, 어둠속에서 움직이는 어둠이란 이미 어둠이라는 의미의 가치를 잃었다. 그들은 그냥 보이지 않는다. 목이 없는 아이, 등이 뒤로 휜 할아버지, 하반신이 없는 여자와 상반신이 없는 남자, 심장은 정지해야 할 대상이고 여기서는 살아있는 것들이 너무 빨리 움직이는 자들이다, 죽음을 향해.


  몇 십년, 혹은 몇 백년을 고고히 서있던 죄, 붕괴.


  메사 항구의 남쪽을 지키는 제국군 총 해군 본부를 몇 백년 동안 지켜보며 서있던 에밀. K. 페어의 동상이 화려하게 무너진다. 머리는 떨어지기도 전에 검은 그림자들에 의해 형체도 없이 갈라진다. 반짝이는 등대는 빛을 잃은지 오래, 건물의 비명에 의해 인간들의 비명은 묻힌다. 고고한 건축물과 화려한 양식들 대신 항구는 먼지와 먼지들뿐.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메사 항구에 어서오세요를 일그러뜨린다.


  파괴하고 또 파괴하라.


  “개자시이이익!”


  누군가 기합소리, 아니. 비명소리를 지르며 내게 달려든다. 눈썹도 없고 한쪽 눈도 없는 흉측한 모습이다. 손가락은 두 개나 잘려나갔는데 굴하지 않고 내게 칼을 치켜들고 달려들었다. 그는 피가 된다. 피 먼지. 나는 오늘 처음으로 피 먼지라는 것을 봤다. 피가 먼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고통, 상처.


  고통이 오고서야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피먼지가 달려들때 동시에 누군가가 달려든 모양이다. 그는 제법 멀쩡한 모습으로 그럴듯한 콧수염까지 기르고 있었다. 방금 동료의 모습을 보고도 오직 나만을 바라보며 증오에 불탄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대단히 용맹스러워 보였다. 그가 맘에 들었다. 이전에 꽉 막힌 기사들처럼 1:1을 고집하지도 않고 등을 찌른 걸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이런 자 밑에 있다면 다른 자들도 괜찮겠지.


  나는 여전히 옆구리에 꽂혀있는 칼을 바라봤다. 그가 비명을 지르듯 기합을 외치며 더 세게 꽂아넣었다. 칼이 내 몸을 관통하고 배꼽쪽으로 튀어나왔지만 이번에는 고통이 없었다. 나는 입을 벌렸다. 쩌저적, 턱이 부서질 듯한 소리가 나며 입주위 근육이 땡겨왔다.  


  그의 목을 물었다. 푸드득 거리며 몸을 떨지만 이미 그의 목은 내 입안에 완전히 들어와있다. 나는 뱀처럼 그의 목을 문채 그대로 씹어 삼켰다. 그는 내 이빨모양 그대로 목과 몸이 떨어져 나갔다. 그 모습이 왠지 우스워서 나는 하하 하고 웃어버렸다. 입에서 침대신 피가 자꾸 흘렀다. 흘러내리는 피는 떨어지는 대신 내 모공으로 빨려들어갔다.


  묘한 기분.


  외침소리. 이름 같다. 어떤 젊은 남자가 달려와 목이 잘린 그 콧수염의 머리를 붙잡고 감싸 안았다. 그는 두려움에 덜덜 떨면서도 나를 지독한 증오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 나는 진득하게 묻어 날 것 같았다.


  “누군가가, 모든 인간이, 설사 신이 너를-!”


  그가 뭐라고 외쳤지만 나는 들을 수 없었다.


  “모든 존재가 너를 용서하더라도, 나는-! 나느으으은-!!”


  어둠이 그를 집어삼켰다.


  “절대로 너를 용서하지 않을것이다-!”


  용서하지 않으면 어쩔건데. 그 순간 나는 구원받지 못할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하하하...”


  도시에 불타는 곳은 없다. 깔끔하고 깨끗하게 모두 어둠속에 잠겨있다.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없다면 그저 모두가 잠든 밤이라고 생각할 조용한 풍경. 바닷가에는 수백척의 배들이 서로 함포를 쏘아대고 있지만 이미 수천척의 배들이 바다 안에 가라앉아있다. 왠지 웃기는 기분이 들어 나는 무너지는 도시를 걸으며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의인이 지혜를 생각할 것이니라

그리고 그의 혀가

심판을 내릴 것이니.


유혹에 저항하는 자

은총을 입으니

시련 받은 만큼

생명의 관을 

받을 것이다


주여.”


  무너지고 죽는다.


“당신의 신성한 불로 자비를 베푸소서.”


  어딘가에 등잔같은 것이 깨진 듯 불길이 치솟는다. 밤 속에서 불이 밝는다. 불은 기름을

  타고 삽시간에 도시 곳곳으로 번져나간다. 아까보다, 조금 더 화려하다.


“오, 이 얼마나 성스러운가.”


  아이를 업고 피신하던 아버지가 불길을 뚫고 지나간다. 얼굴은 온통 화상이다. 사방에서 

  돌조각이 떨어지고 불길이 위협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달려간다. 어느 정도에 이르러 

  아이를 살펴본다. 아이는 이미 죽었다.


“얼마나 고요한가.”


  이제 도시에서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포성소리도 멎는다. 간혹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만이 은은히 도시 안을 울린다. 별조차 숨을 죽인 두려운 폭력이 실현된다.


“얼마나 자비로운가.”


  가까스로 도시 밖을 빠져나온 생존자들이 불타는 도시를 안타깝게 혹은 두렵게 바라보고

  있다. 잃어버린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린다. 슬픔에 찬 그들 뒤로 어둠이 치

  솟는다. 그리고 파도친다.


“얼마나 위안스러운가.”


  아이를 안은 채 죽은 어머니의 품사이로 아직 살아있는 아이가 움직이며 옹알이를 한다. 

  아직 태어난지 얼마 안된 아이같다. 그들 위로 커다란 돌조각이 떨어진다.



“오, 순결의 백합이여.”


  파괴하고 또 파괴하라. 그리고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