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채널

  -오오오오오오오-


  이명거품소리인지비명소리인지알수없는소리는귀를울리며멀어지고또가까워진다


  -오오오오오오오-


  멀어지고가까워진다가까워지고멀어진다멀어지고가까워진다가까워지고멀어진다


  -오오오오오오나?-


  어쩌면새의울음소리어쩌면늑대의울부짖음절벽가의파도소리오라버니의노래소리


  -정오오신오오나?-


  짠맛또역겨운맛미각에남은맛이라곤소금물과정액맛뿐백탁과푸름바다와같은청명


  -정신이 드나?-


  말소리가 들렸다. 아까부터 이명을 계속해서 울리던 ‘오오오’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소리는 언젠가 바다 속으로 다이빙을 했을 때 귓가를 울리던 거품소리 같았는데. 아에사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뜬 곳은 물 속 같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금발머리가 물속에 들어갔을 때처럼 아름답게 풀어헤쳐져 표류했기 때문이다. 또 그곳은 미노타 근처의 아름다운 해안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또 물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했다. 자신은 조금 전부터 어렵지 않게 숨을 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소년도 자신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곳이 물속이면서 동시에 물속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결정을 내렸지만 그녀는 어쩐지 그것이 타당하게 느껴졌다. 꿈을 꾸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꿈속에서는 얼마든지 이상하더라도 ‘그럴 수도 있지’하게 되지 않는가.


  -열쇠가 오는 건 오랜만이네. 너의 ‘흐름’을 불러줄까?-


  검은 머리의 소년이 말했다. 아에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 소년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흑발에 단정하게 빚은 머리. 3/7 가르마가 우스꽝스럽지만 그 소년에겐 그 이상 더 어울리는 머리를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고작 9살 남짓 해 보이는 꼬마 남자아이지만 코는 오똑하고 아름답게 생긴 미소년이었다. 그 꼬마아이는 이상한 목걸이와 양손목에 시계를 네 개나 차고 있었다. 그 눈은 약간 오만과 치기가 담겨있고 어린아이다운 순수함과 호기심도 있었다. 복장은 귀족가에서도 간혹 볼 수 있는 고급 천으로 만든 듯 한 고운 결의 검은색 양복이었다. 그리고 가슴팍에는 금색 뱃지로 YEREMIA라고 적혀있었다.


  -어쩌다가 들어온거야? 꼴이 말이 아니네-


  그 소년은 혀를 끌끌차며 말했다. 아에사는 그제야 자신의 옷을 볼 수 있었다. 아까와 같은 붉은 드레스에 좌우로 찢어진 치마는 적나라하게 그녀의 치부와 가슴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에사가 부끄러워하며 치마를 당겨 가슴을 가리자 꼬마 아이는 킥킥 웃었다. 아에사는 얼굴이 벌겋게 변해 말했다.


  “우, 웃지마. 여, 여긴 어디야?”

  -흐름(Stream)이야. 너의 그 칼이 너를 여기로 인도했어-


  아에사는 이상한 눈으로 소년을 바라봤다. 이 소년은 대체 뭘 하는 아이길래 물속에서 멀쩡히 말하고 움직일 수 있을까? 그러고보니 그 소년은 아까부터 ‘물 속’이라고 생각했던 곳을 아무렇지도 않게 ‘걷고’있었다. 허공을 거꾸로, 혹은 위로 걷는 모습은 거의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모습이었다.


  “흐름...?”

  -으응. 그러니까 메인보드 같은거지. 아아, 네 시대에서는 이런 거 말해도 모르나? 모든 움직임과 활동, 변화는 이곳을 통해 거쳐가서 처리돼. 그러니까 이곳은 하나의 아공간, 아니 아세계인거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아공간? 활동과 변화의 처리? 아니, 그것보다 나는 살아있는 건가? 맞아. 나는 바다에 떨어졌었어. 그런데 내가 어떻게 이런 데에 있는 거지?”

  -말했잖아. 네 칼이 여기로 인도했다고. 그래서 넌 살아있어. 으음, 그래. 네 칼에 묶여있는 흐름은 ‘바람’이구나. ‘바람’이면 태고바람 모르덴티아 에아 양이네. 불러줄까?-

  “‘불러줄까’라고 물어봐도 나는 그녀가 누군지 몰라. 내게 충분히 설명 해 줄 수 있는 사람이야?”


  소년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그 곱고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꼬기 시작했다. 그러곤 어느 순간 흠칫하고 서둘러 머리를 정리했다.


  -아아, 정말. 오랜만에 손님이라 머리정돈하고 달려온건데 습관 고치기는 어렵네. 에아 양이 충분히 설명해줄 수 있겠느냐고? 글쎄, 나도 잘 몰라. 그녀는 나보다 훨씬 어리니까. 하지만 그녀는 너의 흐름이니까 충분히 도움이 될 거야-


  소년은 그렇게 말하고선 눈을 감고 뭔가를 허공에 중얼거렸다. 아에사는 거꾸로 서있는 소년을 보며 그 소년의 입에서 황금색 안개가 퍼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안개는 곧 문의 형상을 만들었다. 문을 형상을 띄자 소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문을 만들었으니까 신호가 갈거야. 조금 기다리면 도착할...-


  그 순간 황금색 문에서 어떤 여성이 뛰어 들어왔다. 그 여성은 허둥지둥대며 들어오고선 아에사는 쳐다보지도 않고 소년을 향해 뛰어들어 그를 껴안고 외쳤다.


  “예레미아! 맙소사, 포라디움이 미쳤나봐. 내가 지나가고 있는데 화산을 폭발시켰어. 나를 죽이려고 한 게 분명해! 저건 ‘흐름’을 파괴하는 행위 아냐? ‘문’이 안 열려있었으면 나는 꼼짝도 못하고 타 죽었을 거야. 징계해야해!”

  -...테니 차라도 한잔 마시겠냐고 하려고 했는데. 음음, 아에사. 이 아가씨가 모르덴티아 에아 양이야-


  그녀는 풍만한 글래머(아에사는 조금 부러움을 느꼈다)였다. 그리고 고운 이목구비에 부드럽게 빛나는 흑발을 포니테일로 묶어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몸매는 꽉 균형이 잘 짜여 뭇 남성들을 매혹 할 만한 실루엣을 가지고 있었고 깊은 S자 곡선을 그리는 그녀의 몸매와 함께 더불어 어울리는 이상하게 생긴 꽉 끼는 청색 바지와 조금 작아보이는 타이트한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러면서 하얀 살결과 가는 팔목이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 성숙해보이는 몸매와 얼굴과는 달리 그녀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녀가 예레미아라고 부른 소년의 몸을 붙잡고 있었다.


  -진정해. 모르덴티아. 포라디움은 너의 생전을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흐름이잖아. 그는 네가 기억을 되찾길 바라고 그러는거야-

  “그런 방식으로 되찾는 기억 따위는 하나도 안 고마워! 죽을 뻔 했다고!”

  -어차피 바람은 어디든지 갈 수 있잖아. 위험한건 불길이지 용암이 아냐. 용암은 공기를 별로 안태운다고. 아, 아에사. 보다시피 다 크긴 했는데 불을 좀 무서워해. 생전의 기억이 몸에 남아서-


  아에사는 입을 헤 벌리고 황당한 표정으로 두 남녀를 바라보았다.



  잠시 뒤 모르덴티아가 진정하자 예레미아는 차를 내왔다. 어쩐지 차는 거꾸로 있는데도 흘러내리지 않았고 그 흘러내리지 않는 차를 모르덴티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고 우아하게 받쳐든 채 마셨다. 하지만 아에사는 이 차가 정말 입에 들어 올 수 있을지 궁금했다. 모르덴티아는 예레미아와 달리 다행히 아에사와 똑같은 방향에 발을 두고 앉아(허공에!)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거꾸로 서있느 예레미아 때문에 보통 어지러운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


  아에사는 모르덴티아를 보고 말했다.


  “이분이 저희 시조분과 계약을 맺은 ‘태고의 바람’이라고 불리던 바람의 정령인가요?”

  “응, 아냐 아냐. 나는 정령이 아니고 흐름이야. 뭐 정령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지만 올바른 명칭은 흐름이지. 정령은 다수를 지칭하지만 흐름은 하나뿐이거든. 그리고 모든 정령은 결국 하나인데 그 하나가 바로 흐름이야.”

  “에에, 그러니까 정령이 다수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흐름’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이다?”

  “맞아. 솔직히 불과 불이 싸우면 뭐가 되겠어? 더 큰 불밖에 안되지. 그래서 세상에는 정령이 아닌 흐름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활동과 세계의 근간이 되는 존재가 일곱있어. 사실 점점 늘어날 것 같은 추세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흐름’도 늘어나거든.”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세계는 분자와 원자 원소 에테르 반물질 광자 등등 엄청나게 많은 흐름들이 있거든. 나한테는 이렇게 단순한 세계가 제일 편해-


  예레미아가 덧붙이자 아에사는 점점 이해 못 할 기분에 빠져들었다. 이들은 뭔가 세계를 초월하는 존재들 같았다. 모르덴티아가 한번 더 덧붙였다.


  “아, 이곳의 흐름은 불, 물, 바람, 땅, 시간, 마나, 정신이야. 나는 그 중 바람의 축을 담당하지. 그리고 모든 흐름들이 회합 할 때는 보통세계에서는 할 수가 없어서 모두 이곳으로 모여들어.”

  “그럼 여기는...?”

  -타임 스트림(Time stream)이라고 불리는 곳이야. 모든 것의 근원은 시간이거든. 시간에서 태어나고 시간에서 사라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