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채널

  처음에는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 듣기보단 눈앞에서 기묘한 광경이 일그러져 나타났다. 코와 입, 귀로 파고들려는 검은 바다의 거친 물살은 물속에서도 날카롭게 그녀의 몸에 부딪혔다. 아에사는 자신이 이미 바다속 깊이 가라앉고 누구도 알 수 없는 멀디 먼 어디론가로 휩쓸려갔다고 생각했다.


  쿠르르륵


  입에서 거품이 솟아올랐다. 죽으면 안되지. 아직 오빠를 만나지도 못했는데. 그러곤 아에사는 힘껏 몸부림 쳐 물을 박찼다. 예레미아와 교합한 뒤 오히려 힘이 더 생긴 것 같았다. 아무리 헤엄쳐도 꼼짝도 못하고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 강력한 힘에 의해 그녀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푸하아!”


  그녀는 입에 들어온 소금물과 새롭게 느껴지는 바다의 짠내 섞인 공기를 반갑게 흡입했다. 그녀의 드레스는 찢겨져나가 새하얀 나신만이 밤바다 위에서 달빛에 은은하게 빛이 났다. 그 아름다운 나신을 보며 아에사는 자신이 단지 물 위에 떠 있는게 아니라 물과 기름처럼 완전히 유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앞에는 배 한척이 놓여있었다. 렐리치아 호... 그녀가 탔던 배지만 배의 이름은 처음으로 봤다. 바다 속과 달리 바깥은 공기가 조용하고 파도조차도 없었다. 어찌나 조용했는지 물결은 쟁반위에 가둬놓은 물 같았다. 배 위에서 횃불을 든 몇 명의 선원들이 자신을 보며 뭐라고 외쳐댔다. 그들의 입장으로선 그녀가 물에 빠진동안 시간이 멈춰져 있었으니 빠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공기가 멎고 그녀가 떠올랐으므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에사는 어쩐지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비척거리면서도 조심스럽게 ‘물을 딛고’ 일어섰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태초의 모습이 치부조차 가려지지 않은 채 아에사는 부끄러운 모습으로 설 수 있었다. 정액과 애액은 파도에 모두 씻겨나갔고 아름다운 금발머리도 보송보송하게 말라 그녀의 허리치까지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봉긋 솟은 가슴에서 젖꼭지를 따라 바닷물 한 방울이 이슬처럼 타고 흘러내렸다. 


  아에사는 조금 걸어보았다. 걸을 수 있었다.

  허공 위에 다리를 올려보았다. 걸을 수 있었다.


  아에사는 조금씩 걸음을 내딛어 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선원들은 당황스럽지만 그 아름다운 나신에 몽롱한 눈으로 멍청히 서있었다. 분명 순결하고 아름답기만 한 청초한 꽃같은데 그 알몸은 너무나 매혹적이고 야릇한 느낌을 품고 있다. 몇 번이고 범하고 싶다. 그 얼굴에 좆을 물리고 몇 번이고 싸버릴 때까지, 온몸이 정액으로 뒤덮힐 때까지 범하고 싶다.


  아에사가 갑판위로 올라서자 선원들이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아에사는 미노타 대거를 들고 있었다. 그때 도리스가 바지도 입지 않은 채 사람들을 헤치고 튀어나왔다. 그는 욕설을 퍼부으며 빠르게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그 순간 시간이 느려졌다.


  ‘죽여.’


  모르덴티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단검을 내지르고 그 역겨운 목을 따줘. 더러운 성기를 뜯어내고 그의 입에 물려줘.’


  소름이 오싹 끼치는 목소리였다. 아에사는 미노타 대거를 움직이려고 했지만 겁에 질려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무슨 배짱으로 여기에 올라섰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도리스는 거칠게 아에사의 유방을 쥐려고 했고 그 순간.





  퍽, 까드드득 컥, 투두두둑. 으적. 뚝. 뚝.





  도리스가 사라졌다.



  선원들도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그러나 어디서도 도리스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돌연히 어떤 선원이 외쳤다.


  “저기다!”


  손은 허공을 향해 있었다. 돛대에 한손을 박아넣고 서있는 검은 복장의 한 여인이 서있었다. 그녀의 입에는 도리스의 목이 물려있었다. 도리스의 목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철철 솟아 흘렀고 입에서는 거품이 솟았다. 그러고도 죽지 않았는지 꺽, 꺽 거리는 소리만 내고 있었다. 목만 흑의의 여인에게 물려있으므로 그가 아직 미치지 않았다면 고통은 엄청날 것이다. 도리스는 허우적 거리며 팔과 다리를 흔들었고 그 모습은 초보자 인형사가 엉뚱하게 뒤틀어 놓은 고장난 마리오넷 같았다. 도리스가 몸을 흔들수록 목은 점점 길게 뜯어지더니 어느 순간 여인이 물고 있는 부위만 빼고 몸이 갑판으로 떨어졌다.


  도리스는 바닥으로 떨어지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깨진 머리에서 피가 흘렀고 입과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그 눈동자는 끊임없이 흔들리며 경직된 신경은 손가락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무슨 신관이 오더라도 그를 살려내기는 불가능 할 것이다.


  모르덴티아 에아는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불쾌한 듯 입을 닦아내고 아에사를 향해 말했다.


  “간단하잖아?”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행동하는 그녀를 보며 아에사는 무섭고 또 부러웠다. 


  겁에 질린 선원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공포가 도주를 포기하고 달려든 것이다. 아에사조차도 그녀에게서는 도망 갈 수 없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방금 아에사를 스쳐간 속도라면, 세상의 어떤 존재도 그녀의 손아귀를 벗어 날 수 없겠지.


  달려든 선원은 너무도 쉽게 살해당했다. 모르덴티아가 간단하게 뻗은 손은 선원의 목덜미를 파고들었고 피와 함께 그녀의 손이 튀어나왔다. 모르덴티아는 그 상태 그대로 달려가 그 뒤에 있던 선원의 머리를 잡았다. 그리고선 갑판의 난간에 단박에 박아버렸다. 순식간에 두명이 절명해버렸다.

  다른 선원들은 이제 대항과 도주 모두 쓸모없다는 것을 알았다. 모르덴티아는 손에 묻은 피를 ?짝거리며 핥았고 그 눈은 어떻게 사냥할까가 아닌 단지 누구를 사냥할까하고 보는 눈이었다.


  그녀가 다시 바람처럼 움직였다. 바짝 굳어있던 그는 심장을 관통당했다. 심장이 사라졌음에도 비명을 지르던 그 남자는 모르덴티아가 달려오던 속도 탓에 그대로 밀려 배 밖으로 떨어졌다. 손은 다시 뱀처럼 움직여 수많은 곡선으로 누군가의 목을 찢었다. 모르덴티아는 우아한 동작으로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유지해 단번에 절명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여덞명 째를 살해하던 순간 피와 죽음에 충격에 빠져있던 아에사는 정신을 차리고 ‘그만’하고 소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쩡하는 이명과 함께 폭풍 같은 모르덴티아의 동작이 뚝 멎었다.


  조라의 검과 모르덴티아의 손이 엇갈려 나가 있었다. 조라의 검은 모르덴티아의 힘을 이기기 어려웠는지 부러져 반토막만 남아있었다. 조라는 모르덴티아가 공격해 들어오는 순간 오른쪽으로 몸을 강하게 틀며 검으로 진로를 엇나가게 한 것이다. 모르덴티아는 황당한 표정으로 떨어지려고 했지만 조라는 검을 그녀의 팔에 떨어뜨리지 않은 채 붙어서 따라왔다. 검면쪽이라 베이지는 않았다.


  “...제법이네.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내 공격을 막는 건 농담이 아니라 진짜진짜로 처음인거 같은데. 게다가 사후대응방법도 좋군?”


  모르덴티아가 황당한 표정으로 조라를 보고 말했다. 조라는 아무런 표정도 띄우지 않고 검을 계속 팔에 붙인 채 말했다.


  “그렇게 빠르고 위력적인 공격을 하려면 속도를 실은 직선공격밖에 못하지. 기껏해야 자신을 지지점 삼고 휘두르는 호선공격 일테고. 그럼 약점만 피해서 몸을 비틀면 되지. 그리고 가까이 붙어서는 제대로 위력을 못 내겠지? 붙어있으면 가속하지 못할 테니까.”

  “흐응. 맞긴 해. 하지만 한 가지는 틀렸군. 나는 이정도 거리에서도 너를 죽일 수 있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선 바람같은 속도로 발을 내질러 조라를 걷어찼다. 조라의 몸이 허공에 붕뜨나 싶더니 갑판위로 주욱 미끄러졌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벌떡 일어나 부러진 검으로 자세를 잡았다. 모르덴티아는 기차다는 표정으로 다시 그를 찌를 자세를 취했다. 아에사는 다급히 외쳤다.


  “그만!”


  모르덴티아가 몸을 움찔하며 멈췄다. 그리고 냉막한 눈으로 조라를 노려보았다.


  “그, 그만해요. 이제 그만해도 되요.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말아요.”

  “정말 그래도 되겠어, 아에사? 이놈들은 너를 겁탈했다고. 나는 고통을 주지 못하고 죽인게 너무너무 미안할 지경이었는데.”


  모르덴티아가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아에사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복수는 충분해요. 이들에게도 충분한 교훈이 됐을거에요. 그리고 배가 항구까지 도착하려면 선원이 필요하니까...”

  “흐음. 배가 도착하는데는 나 혼자서도 충분한데. 뭐, 아에사가 만족했다면.”


  아에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추운 밤바다의 바람에 식은 자신의 알몸을 추스르며 팔을 껴안고 선실로 들어갔다. 갑판위에서 제데로 서있는 사람은 조라와 모르덴티아, 아에사 뿐이었다. 갑판에 가득히 흐르는 피가 아에사의 발과 다리에 튀었다. 그녀는 수많은 더러움과 배신, 능욕을 버티고 일어선 오탁의 공주였다.


  조라는 모르덴티아가 들어가자 힘겨운 표정으로 칼을 떨어뜨렸다. 팔에서 경련이 일듯 부들부들 떨리자 조라는 씁쓸한 표정으로 그 손을 바라보다가 다시 칼을 들어올렸다. 그때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리스였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입에서 게거품이 빠지는 소리가 계속 나왔다. 조라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부러진 칼을 그의 머리에 박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