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채널

  네가 바라보는 세상이란 

  성냥갑처럼 조그맣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허전한 맘으로 걸어봐도

  네겐 아무 의미 없겠지

  날아오를 하늘이 있으니


  아득한 정신 속에서 아에사는 그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방은 온통 우유처럼 부연 흰 세계였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위에는 드넒은 하늘이 펼쳐져있고 흰 것들은 온통 구름이었다. 지평선도 희게 물들어 하늘과 땅의 경계가 모호했다. 사실 그녀 자체가 하늘에 있으니 그 표현도 어울리지 않았다. 아에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태양은 멀고 또 멀었다. 죽을 때까지 걸어가도 그곳까지 도착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손에 잡힐 듯이 가깝던 태양이 왜 이렇게 멀어졌을까... 아에사는 이번에는 고개를 떨구고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구겨지고 짓씹힌 치마조각들과 저택의 유모가 그토록 아름답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새하얗고 가느다란 몸뚱아리, 자기가 처음으로 여자가 되어간다고 느꼈던 주먹만한 예쁜 곡선을 그리는 가슴, 군살하나 없이 아기 같은 피부를 가진 온몸과 매끄러운 다리의 선... 모두 정액과 애액으로 뒤덮혀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손을 들어보았다. 손에서 끈적한 액체가 묻어났다. 누군가의 정액이었다. 사방이 구름이 아닌 정액들로 가득해 있었다. 어쩌면 그녀의 애액인지도 모른다. 어쩐지 놀랍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의식이 수면위로 부상하는 느낌과 함께, 그녀는 깨어났다.


  “괜찮나?”


  조라였다. 욕설이라도 뱉어주고 싶었지만 차마 목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오질 않았다. 조라는 그녀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새하얀 나신을 그 앞에 드러내고 있었다.


  “따라와. 씻어. 너도 그러고있으면 기분이 좋진 않을거 아냐.”


  아에사로서도 한시라도 바삐 씻고 싶었다. 그녀라고 자신의 알몸에 타인의 정액을 가득 묻히고 있기는 싫으니까. 하지만 도저히 일어날 힘이 없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 생각하는 것 조차도 그녀로선 고역이었다. 입안에서 정액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선원들을 상대했는지 모른다. 대략 열셋 정도 됐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중에 도리스와 조라는 없었다.

  조라는 가만있는 아에사를 보고 가볍게 이마를 찌뿌리곤 문을 열고 어디론가 나갔다. 그는 금방 다시 돌아와 물통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타월을 하나 내밀었다.


  “식수다.”


  바다 한가운데서 식수를 내놓다니... 아에사는 머릿속에서 조금씩 딱딱 맞춰지는 지성 속에서 그런 말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흐느적거리는 동작으로 타월에 물을 적셔 자신의 몸을 닦아가기 시작했다.


  “비누는 없어. 깨끗이 씻어.”


  조라가 짤막하게 말했다. 아에사는 팔에 한번 힘이 들어가자 힘이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았다. 몽롱한 정신도 어느 정도 가셨다. 최음제를 한 다섯 알 정도 먹은 건가? 체내에는 아직도 최음제의 기운이 남아있었다. 아에사는 타월로 팔부터 시작해서 몇 번이고 몸을 닦았다. 


  닦는다. 닦는다. 닦는다. 하지만 아무리 지워도 이 흰 것들은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어느 순간, 조라가 그녀의 손을 잡아챘다. 그녀의 흰 팔의 피부는 어느새 새빨갛게 변해있었다. 고운 그녀의 살결이 상한 것을 보고 조라가 인상을 찌뿌렸다. 아에사는 이상한 기분으로 자신의 팔을 바라봤다. 아직도 흰 것이 남아있는 것 같다.


  “타월 이리 내.”


  아에사가 어떻게 하기도 전에 조라는 이미 그녀의 타월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그 타월을 물에 적셔 그녀의 몸을 닦기 시작했다. 아에사는 저항없이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바닥이 온통 정액으로 뒤덮힌 백탁이었기에 조라는 그녀를 안아들고 식수통에 넣었다. 식수통은 밀수선의 특성상 물건을 숨겨야 할 때도 쓰이기 때문에 넒고 낮은 형태는 그녀의 작고 가는 몸에 딱 알맞았다.


  조라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팔과 가슴, 겨드랑이 곳곳을 정성스럽게 닦았다. 그의 행동에 사심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에사는 조금씩 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최음제가 남아있었던 탓이다. 다섯알이나 먹은 최음제는 그녀의 몸속 깊숙이 박혀 그녀의 마음을 계속 흔들었다.


  “아... 아읏...”


  조라가 유두 쪽을 닦을 때는 아에사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조라는 무시하고 넘어갔다. 조라가 닦는 곳은 조금씩 내려가 배꼽과 허리를 지나 은밀한 곳까지 이르렀다. 그곳이 어느 때보다 민감해져있던 아에사는 자신도 모르게 묘한 신음을 흘렸다. 쾌락에 찬 신음이었다. 하지만 조라는 아무 말도 않고 허벅지를 닦아 들어갔다. 


  “하윽... 하앗...”


  미소녀의 신음 속에서 조라는 결국 엉덩이와 허벅지, 종아리까지 모두 닦고 나서 손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충분히 몸이 달궈져있던 아에사는 자신도 모르게 조라의 손을 붙잡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이해 할 수 없었다. 아에사는 그의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은밀한 곳으로 인도했다. 조라는 타월로 그곳을 다시 닦기 시작했다. 조금남아 있던 애액이 씻겨나갔다.


  “아앗, 으응... 흐읏!”


  아에사의 쾌감 찬 신음을 들으며 조라는 그곳을 정성들여 닦고 또 닦았다. 결국 아에사는 금방 한번 더 애액을 싸고 말았다. 힘이 빠져 축 늘어져 있는 아에사를 두고 조라는 몸을 일으켰다. 애액을 통해 최음제의 기운이 대부분 빠져나온 아에사는 이제 어느정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입어.”


  조라는 옷걸이에 걸린 옷을 침대에 던지며 말했다. 붉은 색의 파티용 드레스였다. 너무 크고 가슴이 푹 파여 선정적인데다 아에사는 좋아하는 색이 아니라서 그다지 좋아하는 드레스는 아니었다. 아에사는 초점 잃은 눈동자로 조라를 바라봤다. 밖은 밤인듯 달빛에 의지해만 그를 볼 수 있었다. 조라의 눈에는 자신만이 담겨있을 뿐 어떤 다른 뜻도 읽지 못했다.


  아에사는 풀린 다리로 천천히 일어났다. 통증은 없었다. 역시 그곳까지 유린당하지는 않아서 그런 듯 했다. 하지만 수없이 싼 애액 탓에 힘이 없었다. 아에사는 벽을 짚고 걸어가 천천히 붉은 색 드레스를 입었다. 바닥의 정액과 애액들이 드레스 밑 부분과 발바닥에 흥건히 묻어났지만 무시했다. 속옷도 가터벨트도 브래지어도 코르셋도 없었다. 다만 붉은 드레스만이 어둠속에서 은은히 빛났다.


  “...파티용 드레스군요.”


  아에사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무슨 파티를 말하는 것인지는 조라도 잘 알고 있을것이다. 밖에선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도리스가 크게 떠는 소리가 들렸다. 조라는 파티준비를 해온 것이다. 그것도 메인 디쉬(main dish주 요리)준비를.


  조라가 손을 내밀었다. 귀족가에서나 배울 수 있는 신사가 레이디에게 정중히 안내를 청할 때 하는 동작이었다. 완벽한 동작에 문득 아에사는 조라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사실 엊그제가 아니었으면 이름도 모르던 경비병이 아닌가. 그렇게 오래 저택에서 일한 사람은 아닌 듯 했다.


  아에사는 조라의 손을 무시하고 스스로 백탁 위를 걸어갔다.


  문을 열고, 복도를 지나, 다시 문을 열었다. 밖은 화려한 횃불들과 함께 술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다들 킬킬거리며 아에사의 가슴을 훔쳐보았다. 드레스는 너무 크고 가슴이 푹 파여있어서 가슴이 작은 아에사로서는 움직일 때마다 유두가 보일 지경이었다. 도리스가 술통에 앉아 아에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서오게, 나의 신부. 큭큭, 아니. 우리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