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채널

  조라는 아무 말 없이 다가와 이름도 밝히지 못하고 죽은 남자가 들고 있던 단검을 집어들었다. 그가 미노타 대거를 집어들자 모르덴티아는 몸에 기운이 다시 확 솟는 것을 느꼈다. 조라의 몸에는 마나가 상당히 풍부했다. 조라가 말했다.


  “고생하고 있더군.”

  “...닥쳐. 그보다 넌 뭐야? 어떻게 그렇게 살기를 잘 갈무리하고 죽일 수 있지? 사람 맞아? 위험에 대해서는 상당히 민감한 편인데. 전혀 느끼지도 못했어. 아마 살인할 대상을 제외하곤 누구에게도 살기를 흘리지 않았겠지?”


  조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미노타 대거가 진품임을 확인하고 가슴팍에 넣었다. 그리곤 칠흑빛의 검을 허공에 떨어뜨리자 검은 안개같은 것이 일어나 그 검을 집어삼켰다. 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조라가 말했다.


  “가자.”

  “뭐?”

  “아에사한테 돌아가야지. 너도 이런 놈보다는 아에사가 마음에 들지 않나? 혹시 그런 놈이 마음에 들더라도 미노타 대거는 돌려줄 수 없어. 나는 그녀에게 돌아가야 하니까.”

  “...이런 놈이 마음에 들 리가 있냐!”


  모르덴티아는 그렇게 소리 지르고선 먼저 건물 밖으로 나선 그를 급하게 뒤쫓아 갔다.







  “들게.”


  다프네와 아에사가 앉아있는 곳은 여관 1층의 주점이었다. 이름은 주점 겸 식당이었지만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주점 대 식당의 비율은 9 : 1이었다. 술 냄새가 가득 풍기고 고래고래 지르는 노랫소리, 웨이터를 희롱하는 주정뱅이 소리, 열넷쯤 되 보이는 웨이터가 엉덩이를 더듬는 손길을 찰싹 때리는 소리, 술병 깨지는 소리, 말다툼하는 소리, 지극히 주점적인 풍경이 비치는 곳이었다. 아에사는 분위기에 압도되서 감히 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천방지축으로 섬 곳곳을 치마 입은 채 돌아다녀봤었지만 이런 곳은 처음 보는 아에사는 이런데서 오래 있다간 뼛속까지 타락해버릴 것 같았다. 게다가 지금도 자신들에게 음흉한 시선을 던지는 이들이 상당히 되지 않는가. 아에사는 딱 10초만 떨다가 말했다.


  “왜, 왜 이런 곳에서 지내시나요?”


  아에사가 더듬거리며 묻자 다프네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내 노예... 아니, 내 일행이 이곳으로 정했다. 잠시 심부름을 보냈는데, 아직까지도 돌아오고 있지 않군.”

  “그 일행이라는 분은?”


  그러고보니 방에 침대가 두 개였던 것을 기억해냈다. 자신과 다프네가 앉아 있던 침대. 그럼 그 일행이라는 사람은 여자인걸까?


  “으음. 내가 노아 밖으로 처음 파견 임무를 나가는지라 속세에 익숙치 못했다. 그러다보니 당혹스러운 일들이 많았지. 게다가 물가는 어찌나 비싼지. 그러다가 이 항구에 도착해서 한 노예상인을 만났다. 신은 만인이 평등하다고 했기 때문에 인간을 물건 취급하는 그를 용서 할 수 없어서 신의 이름으로 그를 처단했지. 그때 소년을 만났다. 백발의 아름답게 생긴 소년인데, 불쌍하게도 노예였지. 내 생각에는 노예로 끝내기에는 아까워 보이는 아이였다. 다른 노예들은 모두 도망갔지만 그 애는 내 곁에 남아 나를 도와주기로 했다. 다행히 그 아이는 세상살이에 해박해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이름은 모나시.”


  무뚝뚝하고 간략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에사는 그 이야기에서 그녀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노아 출신이다(광신도들의 영지로 유명하다). 보기보다 어리숙하다(물가가 비싸다는 것은 틀림없이 바가지 쓴 것이다) 노예상인을 공격했다(노예 매매가 불법인 이상, 뭔가 안 좋은 세력에게 쫓기고 있을 확률이 농후하다). 소년의 이름은 모나시. 성은 없는 듯 싶다.


  “저... 그 애는 몇 살이에요?”

  “음. 아에사 양과 같은 나이다. 16살.”


  ...그녀는 이런 쪽에 상당히 둔감한 것 같았다. 하긴 팔라딘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기숙사에서만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지낸다고 했으니까.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같이 지내면서 아무런 일도 없었던 건가? 하지만 다프네는 성기사고 당연히 그런 일을 용납지 못할 것이다. 아마 그 소년이 착하다던가 한 거겠지. 확실히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한 것도 대륙에 오면서부터가 아닌가. 아에사는 그 소년이 착하다고 판단했다.


  아에사는 조금 미지근해진 생선 수프를 한 숟가락 떠먹었다. 항구의 선원들을 상대로 하는 저급 음식점답게 더럽게 맛이 없었지만 배고픈 뱃속이 식욕을 돋구었다.


  저녁은 완연히 깊어 식사를 하는 사람은 아에사들 뿐, 나머지는 대부분 남자들로 술을 마시고 있거나했다. 당연히 그들의 시선은 두 미녀에게 쏠릴 수 밖에 없었다. 아에사는 꽤 큰  섬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소녀로 꼽힐 정도로 빛나는 외모를 가진 미소녀인데다 티셔츠 한 장만 걸치고 있었고 다프네는 엘프 특유의 요염한 색을 띈 얼굴에 그야말로 어디를 가든 밤길에 비단옷도 아닌 흰 웨딩 드레스를 입고 가니 단박에 눈에 뜨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거친 암벽위에 돋아난 꽃처럼 남자만 우글거리는 곳에 여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자연히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아에사의 붉은 장밋빛의 입술로 스프가 한 스푼 들어가면 남자들의 침도 꿀꺽 넘어갔다. 아무리 맛없는 이 집의 스프라지만 그녀가 먹던 스프라면 냄비째로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요염하게 드러낸 허벅지와 다리는 티셔츠 한 장으로 가려진 그 안쪽을 비밀스럽게 유혹하는 것 같았다. 다프네는 식사를 하지 않고 우유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그 작고 귀여운 입술에 우유가 묻자 마치 그녀의 애액이 묻은 것 같은 상상을 하며 깨끗이 핥아주고 싶었다.


  다프네라도 갑자기 주점 안이 이정도로 정숙해지면 눈치채지 않을래야 않을수도 없다. 그녀가 시선을 돌려 내부를 향하자 그들은 황급히 눈을 피했다. 어떤 알 수 없는 고결함이 그들의 고개를 강제로 돌려버린 것 같았다. 음란한 상상을 하던 자신들이 겉잡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때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며 한 무리의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시끄럽게 웃으며 농을 하던 그 사내들은 조용한 주점의 분위기에 굳어버렸다. 그러곤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다시 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들어와서 한 대머리가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


  “뭐야, 거기 맞잖아! 술집이랬으면서 분위기가 왜이래!”


  대머리가 술집에 대해 갖는 고정관념은 크게 통탄할 지경이었으나 그가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항구의 술집들 대부분은 이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으니까(파리 날리는 곳이 아니라면). 그는 들어서서 주점 내부를 둘러보았다. 웨이터 소녀가 황급히 달려와 자리를 안내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그녀를 신경쓰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원하던 것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저기다!”


  대머리가 아에사들을 가리키며 외쳤다. 아에사는 잔뜩 긴장해있다가 갑자기 그가 자신을 가리키면서 소리치자 깜짝 놀라 수프를 엎을 뻔 했다. 허벅지를 더듬어봤지만 미노타 대거는 역시 없었다. 밥을 먹고 찾으러 가기로 했었던 것이다. 당황한 눈으로 다프네를 바라봤을때 다프네는 이미 일어서 굳은 눈길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