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채널

  그들은 성큼성큼 다가왔다. 심상찮은 분위기를 눈치 챈 몇몇 사내들은 밖으로 나갔고 그들보다 그녀들에게 관심이 많은 몇몇은 남아서 그녀들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보기 좋은 떡은 남이 먹어도 맛있다고하지 않던가? 비좁은 주점 안은 금세 대머리의 일당들로 길목 곳곳이 막혀 다프네와 아에사를 둘러쌌다. 머리에 Wish To Sun이라는 문신이 새겨진 대머리가 말했다.


  “하, 역시. 듣던데로 여기 있었군. 조금 미심쩍었는데.”

  “짐승주제에 인간을 사고파는 것들이냐? 이런, 미안하군. 나는 짐승과 대화하는 법을 모르는데.”

  “맘대로 짖어라, 암캐. 팔아 넘기기 전에 몇 번이고 당하고서 남성만 보면 주인님이라고 부르게 만들어 줄 테니까.”


  그는 크흐흐 웃으며 그에게 성큼 내딛었다. 그 순간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백색의 실크로 짠 장갑을 낀 다프네의 손이 검 손잡이에 닿았다. 검집도 손잡이도 모두 흰 옥이나 상아로 만들어져 드레스에 가려지는 바람에 어느 누구도 찾지 못했던 검이었다. 대머리도 그제야 그 검을 발견하고 멈춰섰다. 하지만 주위 부하들의 시선이 신경쓰인 탓인지 대범하게 발을 내밀었다. 다른 놈들도 그녀를 향해 다가섰다.


  그러나 쾅하는 굉음에 움찔 하고 물러났다. 흡사 무슨 대포라도 맞은 듯 낡은 건물 전체가 살짝 흔들려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바로 옆에 있던 아에사는 굉음에 귀가 찌릿찌릿해져 머리를 감싸쥐고 말았다.


  그녀의 드레스와 똑같은 백색의 날이 건물 기둥 정 중앙에 박혀있었다. 검이 예리한 탓도 있겠지만 그녀의 발도동작이 워낙 전광석화와 같아서 저렇게 깊게 박혀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의도했던 것은 아닌 듯 그녀조차도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실제로 약간의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오른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걸 본 대머리가 질려버리긴 했지만 애써 웃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향해 다가섰다.


  “칼이 벽에 박혀버렸군?”


  다프네가 급히 칼을 뽑아내려 했지만 깊이 박혀버린 검은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실전경험은 거의 없고 살인을 해본적도 없는 미숙한 검사였던 탓에 지형지물을 인식못한 것이다. 누군가 그런 다프네의 오른손을 뒤에서 잡아챘다.


  “윽...!”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다른 남자들이 달려들었다. 아에사는 멀뚱히 앉아있다가 한 남자에게 붙잡혔다. 대머리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호오, 일행인가? 꽤 이쁜데?”


  다프네는 붙잡혀 팔을 뒤로 꺾인 채 테이블 위에 엎어져 있었다. 대머리가 아에사의 턱을 쥐고 이리저리 흔들자 다프네의 분노한 얼굴이 굉장한 살기를 뿜어냈다. 아까의 성녀 같은 모습은 온데 간데도 없어서 대머리는 그녀가 마치 보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씹어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놔랏! 이 사악에 물든 놈들!”


  다프네는 몸을 한순간 거칠게 비틀더니 뒤에서 자신을 누르던 사내를 튕겨냈다. 사내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지만 곧 다른 놈이 그녀의 등위를 덥쳤다. 다프네는 고통 찬 신음을 흘리며 무너졌다. 그러나 그런 상태에 있으면서도 한쪽 발(놀랍게도 그녀는 하이힐을 신고있었다)로 계속해서 남자의 발등을 찍었다. 칼이 없으면 물어서라도 죽이겠다는 그 놀라운 투지에 대머리는 조금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젠장. 존나 거친 년이군. 길들이는데 애 좀 먹겠는데?”


  그러면서 그는 다프네의 엉덩이를 슬며시 더듬었다. 실크의 부드러운 감각위로 그녀의 탐스러운 엉덩이가 물컹거리면서 만져졌다. 엉덩이를 계속 더듬던 대머리는 손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꽉 쥐었다. 그러나 다프네는 고통의 신음대신 이빨을 으득으득 가는 소리를 내서 다프네보다 오히려 대머리를 무섭게 만들었다.


  성기사인 그녀에게 ‘적’은 무찔러야 할 대상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이외의 판단은 교리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적은 동정의 대상도 연민의 대상도 이해의 대상도 아니다. 찌르고 베고 막아내서 승리하는 대상인 것이다. 연민과 동정은 신관들의 몫이다. 성기사는 교리를 지키고 이단을 파괴한다!


  “하아아압-!”


  다프네는 기성을 지르며 온몸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대머리는 당황해서 그녀를 누르고 있는 사내를 바라봤지만 사내는 그녀에게서 밀어내는 힘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으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테이블이 부서졌다. 다프네는 테이블이 부서져 무너지는 순간 몸을 비틀어 사내를 의자에 처박았다. 동시에 자유가 된 한손으로 부서진 의자다리를 붙잡고 그 아슬아슬한 자세에서 곡예 넘기를 하듯이 몸을 퉁기며 벌떡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몸이 가벼운 엘프만이 할 수 있는 동작이었다. 대머리는 아무런 행동도 못하고 천장에 뛰어오른 웨딩드레스를 바라봤다.


  ‘눈... 아니, 달 같다.’


  그가 처음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공중에서 동작을 비틀어 머리를 아래쪽으로 향한 다프네의 드레스는 부풀어 둥그런 형상을 만들었다. 그리곤 대머리의 Wish to sun이라는 문신에 주저하지 않고 의자 다리를 박아 넣었다. 생각보다 뭉뚝해서 꿰뚫린다던가 하지는 않았지만 대머리는 그대로 기절해 쓰러져버렸다. 다프네는 사뿐한 동작으로 벽에 꽂힌 자신의 검 위로 올라섰다. 모두들 그 광경을 넋을 잃고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그 홀연하고 환상적인 광경 한가운데, 모두는 굳은 채 공중에 마치 신화속의 천사처럼 고고히 서있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드레스는 나풀거리며 흔들렸고 눈을 가늘게 뜬 다프네의 눈동자는 깊고 푸른 빛의 호수처럼 빛이 났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주점 밖이었다. 


  “홀란 님!” 


  그 소리는 멍하니 정신이 빠져있던 모두를 단번에 깨웠다. 다프네는 흠칫 바깥 창문을 보자 한 백발의 소년이 창턱에 손을 짚고 서있었다. 소년은 재빨리 창턱을 짚고 넘어왔고 남자들은 도저히 다프네를 공격할 엄두가 나지 않자 재빨리 입구쪽으로 물러서려고 했다. 그 순간 아에사의 비명이 들렸다.


  “아에사!”

  “꼬, 꼼짝마! 가까이 오면 목을 비틀어버리겠어!”


  다프네는 인상을 찡그리고 남자에게 가는 목을 붙잡혀있는 아에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에사도 오래 붙잡혀 있지는 않았다. 아에사가 발버둥을 치자 갑자기 남자의 손목에서 피가 배어나온 것이다.


  “어?”


  남자가 맥빠진 소리를 냈다. 배어나오는 피의 양은 걷잡을 수 없이 많아졌다. 그리고 손목이 주르륵 미끄러지듯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남자는 굉장히 이상한 것을 본다는 눈으로 어이없이 떨어진 자신의 손을 보았다. 의식 역시 오래가지 않았다. 미간에서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남자는 아에사에게서 떨어져 비척비척 뒷걸음질을 쳤다. 아에사가 덜덜 떨며 뒤를 돌아보자 거기엔 쓰러진 남자와 함께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조라 윈드넬이 서 있었다. 남은 남자들은 황급히 대머리를 이끌고 달아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조라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존댓말을 썼다. 아에사는 동요하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봤다. 증오해야 마땅한 존재다. 그러나 항구에서 헤어지고나선 그에 대한 감정은 빨리 잊어버렸다. 그가 자신에게 크게 한 짓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분노가 아닌 이성은 그를 증오해야한다고 가르쳐주었다.


  “내 눈앞에서 사라져달라고 했었는데.”


  아에사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그 감정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무언가를 만났을 때 생기는 억울함이나 실망감따위로 젖어있었다. 조라는 품속에서 미노타 대거를 꺼내들었다.


  “돌려드리려고... 왔습니다.”


  아에사는 그의 손에서 미노타 대거를 받아들었다. 한참 파란 검신을 들여다보던 아에사는 셔츠 어깨부분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가.”

  “......”

  “미노타 대거는 고마웠어. 이제 너에 대한 증오도 고마움도 모두 잊을게. 사라져. 두 번 다시 만나는 일이 없도록 하자. 이제 너와 나의 인생은 평행을 이루고 만나는 일이 없는거야.”

  “......따라가고 싶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어째서? 페니키아 상단에서 돈도 받을테고, 당신 검술실력이면 기사자리도 노림직 해. 모르덴티아의 공격을 막은 건 아무나 못하는 걸 테니까. 어째서 날 따라오겠다는 거지?”


  조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에사는 등을 돌려 미노타 대거를 두 손에 쥐고 다프네에게 다가갔다.


   “올라가요.” 


  다프네는 조라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2층의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발의 소년은 그녀의 손을 잡고 따라나섰다. 그때 조라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말했다.


  “허락을 기다리겠습니다.”


  아에사는 무엇에 대한 허락인지 묻지 않았다. 조라는 그렇게 말하고선 돌연 주머니에서 칠흑빛의 검을 꺼내들었다. 마술과 같은 광경이었다. 그리고선 검을 길게 치켜세우더니 왼손에 그 장검을 세게 박아넣었다. 콰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살과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주점 안을 요란하게 울렸다.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허락하신다면 이 검을 뽑고,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허락하실 때까지 뽑지 않겠습니다. 저를 무엇으로 데려가셔도 좋습니다. 노예든, 짐꾼이든 개의치 않겠습니다.”


  아에사는 돌아보지 않았다. 다프네는 그녀에게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아에사는 계단 위로 올라가버렸다. 다프네는 알 수 없다는 눈으로 그녀와 그를 바라보다가 아에사를 따라서 올라갔다. 뚜벅, 뚜벅.


  조라는 그들이 올라가버렸지만 여전히 검을 뽑지 않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둔다면 과다 출혈로 죽거나 살이 괴사할 것이다. 검사로서 한 손을 잃는다는 것은 치명적이고 따라서 그는 아에사를 따라가는 것에 목숨을 걸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모르덴티아는 조용히 조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선 칠흑빛 검신에 새겨진 백색의 문자를 읽었다.


  한 쪽 면에는 〈Return to nothing〉이라고 적혀있었고 한쪽 면에는 〈歸虛(귀허, 허무로 돌아가다)〉라고 적혀있었다. 모르덴티아는 나지막하게 탄식했다.


  “귀허 검... 예레미아에게 들어봤지. 너, 역사를 바꾼 자의 잔재로군?”

  “......”

  “흐응. 죽을 걱정은 할 필요 없겠군. 이제야 어떻게 나를 찾았는지 알았어. 계시록의 기사님이라면 흐름에도 익숙하실테지.”

  “닥쳐. 그와 나는 다른 인물이다.”

  “그래. 뒷수습하느라 정신없는 인물이지. 계시록의 기사는 먹고, 그 잔재는 똥을 치운다.”


  모르덴티아는 이죽거리며 조라를 놀렸다. 조라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확실히 그는 죽을 걱정까지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살아있는 필멸자인 이상 고통은 존재했고 그 고통은 뇌를 태울 듯이 머릿속을 아릿하게 만들었다. 피는 금방괴어 바닥을 적셨고 모르덴티아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바람으로 화해 사라졌다.


  폭풍과 같이 몰아치던 주점은 금새 고요로 뒤덮였다. 북쪽의 북쪽, 극북의 소리를 삼켜버리는 평원처럼, 흡사 침묵의 사원처럼 소리가 비어버린 주점에는 무릎을 꿇은 조라와 칠흑색 검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