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아래에 캐릭터 삽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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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키는 대로 산다는 건 힘든 일이다.
 왜냐?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것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전부 돈이 부족하다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따라서 돈은 세상의 전부다. 알파이자, 오메가다.
 혹자는 말하겠지.
 ‘돈이 많아도 불행한 사람은 있다’고.
 그렇다면 나도 당당하게 말해주겠다.
 개소리 집어쳐!
 돈이 많으면 절대로 불행할 수 없다. 돈이 많은데도 불행하다고? 그건 그냥 돈이 부족한 거야. 다른 이유를 붙여봤자 근본적으로는 돈이 부족한 게 맞아.
 돈이 있으면 여유가 생기고,
 돈이 있으면 사람이 생기며,
 돈이 있으면 ‘인생’이 생긴다.
 즉, 돈이 없으면 인생도 없다.
 
 “그래서 내가 인생이 없지…….”

 씨발.
 내 인생 어디 갔냐고.
 통장 잔고가 9원이다. 아직 이번 달은 보름이 넘게 남아 있는데 생활비 통장에는 말 그대로 10원짜리 한 장 없다. 라면은 고사하고 라면땅도 못 사먹어.
 4평짜리 방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를 탈탈 털어보아도 나오는 거라고는 100원짜리 3개 뿐, 여전히 라면땅조차 넘볼 수가 없다. 냉장고는 텅 비었고, 찬장에는 곰팡이가 잔뜩 펴서 먹을 수 없는 식빵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이게 인생이냐?
 이게 인생이야?
 아니, 아니지.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인생’은 아니다. 다들 중학교 과정에서 배운 것처럼, 인간의 삶이란 의식주가 모두 해결되어야 비로소 인생이다. 의와 주가 해결됐다고 다 인생은 아니란 말이야.
 게다가 월세도 석 달이나 밀려서 이번 달도 못 낸다면 곧 ‘주’까지 박탈당하고 말 것이다.

 “도대체 나더러 어쩌라는 건지…… 하, 진짜 죽고 싶네.”

 눈앞이 캄캄하다.
 큰 소리로 울고 싶어도 원룸 벽이 얇아서 그럴 수도 없으니 그냥 한숨만 나온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인 걸까.
 부모에게 버려졌을 때?
 심장에 치명적인 병이 발병했을 때?
 아니면, 그냥 내가 태어났을 때?
 몰라, 모른다고.
 어찌 됐건 대부분의 이유가 내게서 돈을 앗아가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나는 지금껏 한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찢어지게 가난해서 꼬질꼬질한 운동화가 진짜로 찢어졌지.
 심장병 때문에 어지간한 일은 하지도 못하고, 고아원을 독립하면서 받은 돈도 사실상 원룸의 보증금과 병원비로 남김없이 써버려서 이제는 진짜 먹고 죽을 돈도 한 푼 남지 않았다. 당연히 약값도 없으니, 한 달 안에 굶어 죽든가 그전에 심장발작으로 죽든가 남은 건 베드엔딩 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병은 갈수록 악화되기만 하는데 약은커녕 당장 먹을 끼니거리도 없고,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다. 설상가상이라고 대학교 합격 통지 문자가 날아오니까 도저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돈이 없어서 갈수도 없는 대학교 합격 통지가 말이야.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하.
 잘못됐어. 뭔가 잘못됐어도 한참 잘못됐어.
 그래도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한 번 정도는 행복한 기억이 있어도 되잖아. 그럴 수 있는 거잖아? 악착같이 살았는데, 진짜 악착같이 살았는데.
 나는 ‘인생’이 없다.
 그래 씨발 나는 인생이 없어.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난 안 죽을 거야.
 자살하면 그만인 인생을 살아온 기억은 없다. 당초에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무슨 자살이야? 이대로 죽으면 그건 가축보다 못한 삶이다. 적어도 걔네는 먹고 죽기라도 하잖아.
 그러니 일어났다.
 누워만 있어서는 해결되는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내 삶이 ‘인생’이 될 때까지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편의점 아르바이트 면접 날, 보여주마. 내가 누구인지 세상에 보여주고 말겠어. 기다려라, 인생아!
 
 ###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죽지 못한다.
 무엇 하나 마땅한 이유가 없음에도 소녀는 넌덜머리나는 삶을 이어가야만 했다.
 저주였다.
 소녀에게 내려진 힘은, 저주와 다르지 않았다.
 더럽고 좁아터진 골목길에 뉘인 몸을 일으켰다. 넘어지며 쓰레기통과 부딪치고, 오물을 뒤집어써서 악취가 코를 찔러도 소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둑해진 밤하늘에 휘영청 떠오른 초승달이 소녀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런 소녀에게 ‘인형’은 걱정스럽게 고했다.

 “목적지는 아직 멀어. 조금 더 쉬었다 가야 해.”

 소녀의 작은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크다.
 가녀린 어깨 위에 작디작은 토끼 인형은 목도리처럼 두른 붉은 스카프에 묻어난 오물을 털어내고, 주인의 발그레한 뺨을 어루만졌다.
 봉제 인형의 폭신한 손바닥이 오물로 범벅된 뺨을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한나.”

 깨진 유리 조각 너머로 비치는 에메랄드빛 눈동자에는 생기가 없다. 얼룩져 더러워진 백색의 금발은 윤기를 잃었고, 언제나처럼 찰랑거리지도 않았다. 옷은 군데군데 헤져서 넝마처럼도 보였다.
 어디를 어떻게 보아도 이제 막 20살이 된 꽃다운 소녀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신경 쓰지 않으니까.
 소녀는──, 「한나 사무엘 하트」는 무엇에도 관심 갖지 않으니까. 처참하게 망가진 자신의 모습도, 자신의 이름을 애타게 불러 주는 목소리도 그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묵묵히 걸었다.
 생기 없이 죽은 눈동자로 어딘지 모를 초점을 맞추고, 비틀비틀 내디뎠다.
 그러다가 넘어지고, 다시금 일어나서 걸었다.
 그렇게 걷고 또 걷다가 결국은 주저앉았다. 가녀린 몸뚱이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며칠이나 굶은 탓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못했다.
 죽을 것이다.
 보통이라면.
 그래, 보통이라면.
 왼쪽 손등에 아로 새겨진 저주스러운 문양 탓에 소녀는 죽지 않는다. 죽을 수 없었다. 이제 그만 망할 인생을 끝내고 싶어도 끝낼 수가 없었다. 수 천 번을, 수 만 번을 기도해도 저주스러운 인생은 결코 마지막을 맞이하지 못했다.
 그러니 걷는다.
 생기 없이 죽은 눈동자로 어딘지 모를 초점을 맞추고, 비틀비틀 내디딘다.
 그러다가 넘어지고, 몇 번이고 일어서서 걷는다.

 “붉은 달이 떠오를 거야…….”

 이제 곧 한국이었다.

 ─○●○─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한다.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무슨 수수께끼가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는 설명이 안 된다.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단 말이다.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하냐?’
 적당히 하란 말이다, 적당히.
 도대체 왜 다들 나를 못살게 굴지 못해서 안달인데 왜! 엘리베이터가 멈춰서 갇혔다고? 그것도 편의점 아르바이트 면접 보는 날?
 그래, 뭐 좋다 이거야.
 냄새 나는 하수구에 발이 빠져서 넘어지고, 찢어져서 너덜거리는 운동화 밑창이 끝끝내 전부 뜯어졌어도 다 좋다고.

 “신분증이 없으시면 면접은 좀 곤란하네요. 복장도 좀 지저분하시고……, 고민 좀 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이제는 웃음도 안 나온다.
 소매치기라니, 훔쳐 간 놈도 적잖이 당황했겠지. 지갑을 열어 봤는데 땡전 한 푼도 없고 신분증만 덩그러니 있으니까 아마 지금쯤 나처럼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저녁거리를 받았다.
 상냥하신 편의점 점장님이 내 몰골을 보고서는 뭔가 아니다 싶었는지 폐기를 한가득 담아서 내준 덕분에 아껴서 먹는다면 내일 점심까지는 어떻게든 배를 채울 수 있게 됐다.
 전화위복,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신분증이야 다시 발급받으면 되는 것이고, 지갑은 천 원짜리 싸구려라서 딱히 아깝지 않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나름 괜찮은 것 같기도하고? 이건 너무 긍정적인가.
 적어도 오늘 하루는 걱정 없이 배부르게 잘 수 있을 테니까 됐다. 고민거리가 많아봤자 심장병만 빠르게 악화 될 뿐이다.

 “끄으으──으으, 피곤해.”

 아무도 없는 한산한 놀이터 벤치에 대충 앉아서 기지개를 켰다. 뻐근한 날갯죽지를 좌우로 움직이자 뼈가 부러지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가 나서 스스로도 좀 깜짝 놀랐다.
 아무래도 평소에 운동을 좀 해야겠어. 그래 봤자 걷기 운동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하지만.

 “이게 얼마 만에 먹어보는 삼각김밥이냐.”

 일주일을 넘게 퍽퍽한 버터쿠키와 누네띠네를 먹으면서 간신히 연명했다. 인터넷에서 싸게 판매하는 대용량 인간사료 과자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굶어 죽었겠지.
 그런 나에게 삼각김밥이다.
 살기 위해서 억지로 씹어 삼켰던 과자가 아니라, 쌀로 만들어진 삼각김밥.
 산해진미가 필요한가?
 그렇다면 몇날 며칠을 눅눅하고 퍽퍽한 버터쿠키만 먹다가 삼각김밥을 먹으면 된다. 산해진미가 생각보다 멀지 않은 장소에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오랜만에 인간다운 식사를 마치고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공원 식수대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받은 삼각김밥은 모두 8개였고, 지금 2개를 먹었으니 부족한 부분은 물로 채워야 아껴 먹을 수 있다.
 공원의 식수대는 돈을 받지 않으니까 배터지게 먹어도 괜찮아.

 “꺼억.”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잔뜩 낀 구름 사이로 넘실거리는 석양이 눈꺼풀을 간질였다. 매서운 겨울의 찬 바람이 이마를 툭 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순식간에 오한이 들었다.
 겨울……, 겨울이라.
 나는 이번 겨울을 넘길 수 있을까.
 병원비도 없고, 약값도 없다.
 원룸에서는 당장 쫓겨나게 생겼으며, 운 좋게 얻은 먹거리도 내일이면 전부 떨어진다. 그리고 겨울은 길지. 무척이나 길고, 시리도록 춥다.
 살고 싶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살고 싶었다. 남들처럼 행복하게, 대학교도 다니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그렇게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참으로 기구한 인생이었다.
 아무것도 갖지 못했고, 가질 수도 없었다. 무엇 하나 허락되지 않은 삶이었다. 그래서 말마따나 ‘인생’도 아니었고.
 지망하던 대학교를 붙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제 와서는 잘 모르겠다. 돈이 없어서 갈수도 없거니와 병 때문에 그때까지 살아 있지도 못할 것이다.
 
 “참, 거지 같은 인생이었네.”

 그래, 거지발싸개 같은 인생이었다.

 “꽤 괜찮았지.”

 부모가 없었다.
 불치병이 있었다.
 ‘인생’을 살지 못했다.
 그래서, 뭐.
 상관없잖아?
 꽤 괜찮았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대학교는 못 가지만 나름대로 공부도 잘했고, 고아원에서는 칭찬도 많이 들었지. 독립하고 나서는 스스로 집도 구했다.
 나쁘지 않았어.
 나쁘지 않았어.
 
 “나쁘지……, 않았어.”

 나쁘지 않았을 텐데.

 “씨발…….”

 죽기 싫어.
 행복하고 싶어.
 시큰거리는 심장이 원망스럽다. 적어도 병만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발버둥이라도 쳐봤을 텐데 정말, 정말 너무한 인생이다.

 “어머, 우니?”

 “………?”

 창피하네.

 “가엾게 여기서 왜 혼자 울고 있니.”

 나보다는 누나처럼 보였다.

 “안, 울었어요. 훌쩍.”

 검은 단발머리에 연한 스키니진,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은 예쁜 사람이었다. 아마도 근처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인 것 같았다.

 “그래, 안 울었구나. 그래서 왜 그러고 있었니?”

 “……그보다 초면에 반말하시는 건 기분이 좀 나쁜데요.”

 “딱 봐도 내가 훨씬 누나인데?”

 잘못 먹고 못 커서 내가 좀 어려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초면에 대뜸 반말을 들을 만큼 앳되지는 않았는데, 자존심이 좀 상하는 발언이다.

 “누나한테 말해 보렴. 누나는 무려 ‘심리학과’란다.”

 핸드백에서 주섬주섬 학생증을 꺼내더니 자랑스럽게 내민 그녀는 근처 대학교의 4학년이었다. 심리학과인 것도 맞고.
 아무래도 울고……, 아니. 울지 않았어. 울지 않았다.
 여하튼 내가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 오지랖이 발동한 모양이다.
 음, 심리학과라.

 “대충 상담해주는 사람이라는 거죠?”

 “대충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지. 사연 있는 사람들 얘기 들어 주는 누나란다.”

 “그렇군요.”

 뭐, 공짜라면 괜찮겠지.
 나는 목구멍을 넘어온 깊은 한숨을 토해내고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별 건 아니예요. 그냥 좀, 힘들어서요. 긍정적으로 살았고, 열심히 살았는데 아무런 보답이 없어서……, 나만 너무 불행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음음, 그래서?”

 “나만 불행한 것도 아닐 거고, 태어나자마자 죽는 사람도 있으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복에 겹다는 사실도…… 뭐, 충분히 인정하고……, 그러니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도 다 알아요. 아는데, 이게 참 뭐랄까, 차라리 개가 나보다 낫다고 해야 하나…….”

 속앓이를 남한테 풀어놓으려니 영 말주변이 서지 않는다.
 한 마디로 함축시키면 좋겠는데, 음.
 음.
 좋아, 이 정도면 되겠지.

 “그냥 사는 게 개 같아서요.”

 “풋, 그래. 사는 게 개 같구나.”

 “네, 그거 말고는 적당한 표현이 없어요.”

 심장병이니, 고아니 하는 말까지 꺼내기에는 적당한 자리가 아니었다. 지나가다 만난 사람한테 그런 얘기를 넙죽 해 줄 만큼 순진하지도 않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다는 사실쯤은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돌아오는 대답 따위야 ‘너만 그런 게 아니다’, ‘네 인생은 아름답다’ 정도의 하등 도움도 되지 않는 위로겠지만, 다른 사람한테 신세 한탄이라도 할 수 있다는 그 별거 아닌 사실이 나름대로 꽤 위안이 되는 것이다.
 나는 신세 한탄을 할 사람도 주변에 없으니까.
 혼잣말로 아무리 신세 한탄을 해 봐야 기분만 더 우울해질 뿐이다.
 덕분에 조금은 나아졌어.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는 누나를 보며 돌아올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면 내가 좀 도와줄까?”

 “……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내게로 한 발자국 다가왔다.

 “사는 게 개 같다면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을 거 같아.”

 성큼성큼 다가온 그녀와 나의 거리는 이제 반발자국도 되지 않았다. 어느새 숨결이 느껴질 거리까지 가까워진 나는 고개를 살짝 내려서 나보다 약간 작은 누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뭔가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돌리려고 하자 누나는 아까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러면 죽으면 되잖아?』

 겨울의 냉기보다 차갑고, 사무치게 시린 목소리였다.

 『내가 도와줄게.』



 밀려드는 아픔보다 빠르게, 상실감이 온몸을 덮쳐왔다.

 “아……?”

 팔이 없다.
 ───팔이, 없다.
 두 번이나 자각하지 않고서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지금껏 한 번도 소중하게 여겨 본 적 없는 오른쪽 팔이, 당연하게 있어야 할 나의 신체가 어깻죽지 아래로는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눌러썼던 모자와 함께 아무것도 아닌 쓰레기처럼 공원의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움직여 본다.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여 본다.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여 본다.
 없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아아아……, 아아악! 으아아아악!”

 부족하다.
 목청이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고, 흘러내린 피의 웅덩이에서 철벅 철벅 굴러도 모자라다. 고통을 표현할 수단이 부족해.
 실신할 듯 실신하지 않는다. 정신이라도 잃었다면, 차라리 그랬다면.
 단전부터 솟구치는 격통에 핏덩이를 토해내고 충혈된 두 눈에서 눈물을 쏟아 내도, 순응할 수 없는 격렬한 통증이 가라앉지 않는다.

 “뭐, 뭐야……. 뭔데 이거…….”

 울먹이면서도 간신히 정신을 다잡았다.
 때때로 인간의 정신은 초월적인 강함을 갖게 되는 때가 있다고 한다. 특히나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이라면 더더욱.
 갑작스러운 고통과 함께 밀려온 것은 죽음의 공포가 아니라, 삶에 대한 집착이었다. 더러운 바닥을 구르면서도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허억.”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와 시선을 맞추자 몸속 깊은 곳부터 차갑게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고통에 찬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괴물.”

 그것은 괴물이었다.
 예쁘장한 여자의 인두껍을 뒤집어쓴 무시무시한 ‘무언가’였다. 모습은 여전히 ‘누나’였으나 느낄 수 있었다.
 사람에게 호의적인 괴물은 절대로 아닐 것이다.


 『너는 개보다는 나은 삶이 될 거란다.』
 
 사람에게 호의적이라면, 떨어진 팔을 주워서 먹고 있진 않을 테니까.

 『개는 맛이 정말 없거든.』

 ###

 달려라.
 움직이지 않더라도 움직여라, 멈출 것 같아도 멈추지 마라.
 운동을 멈추는 순간 목숨이 끊어진다.
 생존 욕구에 삼켜진 인간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 이외에 어떤 사고회로도 존재하지 않았다. 스스로도 놀라우리만큼 오로지 ‘생존’이라는 두 글자만이 뇌리에 강렬하게 떠올라 행동을 강제했다.
 죽지 않는다.
 죽지 않는다.
 죽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친 듯이 뛰었다.
 철철 흘러내리는 피의 폭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서 뛰었다.
 여기서 조금만 뛰어가면 번화한 학원가가 있었다. 그곳에는 경찰도 있을 것이고, 아무튼 분명 안전할 것이다.
 
 “커헉, 커흑…….”

 심장을 쥐어짜는 아픔이 느껴졌다.
 발작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될 것 같다. 아마 발작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나겠지.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
 과다출혈로 죽든가, 심장발작이 일어나서 죽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놀리는 듯 천천히 따라오는 저 괴물한테 산 채로 잡아먹히든가.
 아무리 병 때문에 곧 죽을 운명이라도 이런 식으로 죽을 마음은 티끌만큼도 없다.
 쓰레기통을 차서 넘어뜨리고, 갑자기 튀어나온 고양이에 욕지거리를 날리면서도 나는 비틀거리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태어나서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무엇 하나 내 뜻대로 되는 일은 없었다. 발작이, 일어났다.
 쿵─!
 쿵─!
 쾅─!
 심장의 박동이 불규칙하게 바뀌고, 간헐적으로 멈추고 크게 뛰기를 반복하며 내 발목을 붙잡았다. 비상용으로 챙겨 온 약은 지갑과 함께 도둑맞은 탓에 나는 그저 쓰러졌다.
 피가 부족했고,
 약이 부족했고,
 돈이 부족했다.
 돈만 있었다면.
 나한테 돈만 있었다면.
 오늘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몸은 이제 움직이지 않았다.
 쓰러지면서 긴장이 풀려 버린 탓에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들었다. 피가 부족해서 앞도 잘 보이지 않았고, 발작적으로 뛰는 심장 때문에 제정신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벌써 포기하는 거니? 근성은 꽤 있었는데.』

 삶의 마지막에는 후회밖에 없다고 들었다.
 그건 순 거짓말이야.
 어디가 남는 게 후회밖에 없다는 거냐? 후회 따위를 떠올릴 틈이 없는데.
 살고 싶어.
 진짜 살고 싶다.
 누가 살려 줘.

 “으으윽…….”

 괴물은 쓰러져 있던 내 뒷덜미를 덥석 집어 들었다. 온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차가운 손이 뒷덜미에 닿자마자 나는 의식이 아찔해져서 기절할 뻔했다.
 내가 기절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괴물이 날 들어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오른발에 매달려 있었다.
 괴물이 나를 데려가지 못하도록, 나의 오른쪽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는 중이었다.

 『어라, 넌 뭐니?』

 “우선 놓고 얘기하는 게 어때? 이러다가 얘 다리도 하나 찢어지겠어.”

 온몸에 감각이 없으니 아프지 않아서 비명만 지르지 않았을 뿐이지, 실제로도 무릎 고관절이 이상한 각도로 꺾어지고 있었다.
 나는 매달린 작은 ‘그것’을 눈동자를 굴려 필사적으로 확인했다.

 “……인형?”

 빨간 스카프를 목에 두른 손바닥 크기의 새하얀 토끼 인형이었다. 작디작은 인형이 나의 너덜너덜한 바짓단을 꽉 붙잡고서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고작 한 손으로 나를 두고 괴물과 줄다리기를 하는 인형을 보면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우선 셋까지 세고서 같이 놓아주자. 귀여운 내가 누군지는 그때 알려줄 테니까?”

 『귀엽기도 해라.』

 “자, 그럼 하나둘───.”

 셋까지는 세지 못했다.
 내 목덜미를 쥐지 않은 반대편 손이 기괴하게 늘어나더니 아스팔트 도로가 부서질 정도의 위력으로 토끼 인형을 후려쳤다.
 주변의 전봇대가 몇 개나 쓰러졌고, 아스팔트 도로 곳곳에는 쩍쩍 금이 갔다.
 사람이 맞았다면 틀림없이 걸레짝이 되었을 것이다.

 “다행으로 생각해. 귀여운 앨리스의 주인님이 옆에 있었다면 넌 바로 죽었을 거야.”

 『어머나?』

 인형은 멀쩡했다.
 그 사실에 놀랐는지 괴물은 붙잡고 있던 나를 놓치고 말았다. 동시에───, 불가사의한 인형이 나를 낚아채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낚아챘다고 해도 그냥 내 발목을 붙잡고, 자동차 정도의 속도로 달리는 거지만.

 “끄윽…… 윽?!”


 죽는다.
 이건, 죽는다.
 이미 발목부터 골반까지 죄다 이상한 각도로 꺾여서 몸 전체가 나풀나풀 거리고 있었다. 쇼크사하지 않는 이유는 과다출혈 때문에 감각이 이상하게 마비된 덕분이겠지.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불행한 자식은 곧 죽을 거 같습니다.
 인형을 처음 봤을 때는 뭔가 기묘한 일이 생겨서 살았나 싶었는데, 심장발작도 심상치 않고 피도 왕창 모자라서 이건 살지 못할 거 같아요.
 그리고 괴물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쫓아오고 있네요.

 ‘적어도 다음 생에는 부자로 태어났으면’

 그게 내가 의식을 잃기 전에 떠올린 마지막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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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만난 삽화가 선임과 설정이랑 스토리 다짜놓고


엎어진 계획입니다...


컴 정리하다보니 나와서 생각나는데로 끄적여봤읍니다.



"한나 사무엘 하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