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속으로 들어간 부차라티는 지퍼로 앞길을 열며 계속해서 콜로세움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세코는 부차라티의 행동에 당황을 넘어 분노하고 있었다.


“부차라티. 제법… 이동이 빠른데… 우물쭈물 안 해. 이미 이… 근처엔 없어… 숨 쉬러 머리도 안 내놔. 어느 방향으로 갔지…? 망할 ‘지퍼 자식’… 내… 내 특기를… 따라 하고 있어! 하지만 어설픈 흉내는 결국엔 말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제 손으로 제 목을 조르는 꼴이다 이거야!! 콜로세움까지 가게 놔둘 줄 알고!”


세코는 다이빙 선수처럼 멋지게 뛰어올라 땅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부차라티는 마치 수도관의 물이 흐르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뒤이어 부차라티가 밟은 땅이 물러지기 시작하자 부차라티는 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지면이 부드러워지고 있어… 역시… 추적해 왔군… 하지만 이 ‘소리’는? 헤매지 않고 일직선으로 내 쪽으로 접근해오는 이 소리는…! ‘소리’는 단단한 땅 속보다 액화된 곳에서 더 잘 반향해 전달된다고 하지… 놈이 땅 속을 헤엄칠 때 내가 이동하며 내는 소리도 놈에게 들린다는 건가!”


부차라티가 움직이는 소리는 땅 속을 헤엄치는 세코에게 아주 잘 들리고 있었다.


“에상한 것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었군… 하지만 더 이상 달아날 수 없어… 안다고. 거리까지 다 알 수 있어… 약 20m 왼쪽 앞에 놈이 있다!”


그때, 소리의 방향이 바뀌었다.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앞으로 10m! 앞으로 7m! 5m! ‘목을 조르는’ 게 아니야… 무덤이지… 제 손으로 판 제 무덤이다… 부차라티… 사방이 흙으로 둘러싸여 가지고오오오 내 주먹을 막을 수 있을까아아아! 앞으로 2m! 따라잡았다! 받아라 부차라…!”


그러나, 그것은 부차라티가 아니라 일부가 절단되어 물이 세고 있던 수도관이었다.


“수도관… 잘라서 소리로 현혹시킨다… 이딴 짓은 말이야아아아아!”


세코는 주먹으로 수도관을 쳐 서로 엉겨 붙게 만들었다. 수도관의 소리가 잦아들자 세코는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이런 수작은… 말이야… 네녀석이 궁지에 몰려서 이러는 거라는 증거지. 네녀석은 인정한 거야. 네 능력으로는 내 ‘오아시스’에 따라잡히면 패배한다는 걸 말이야. 어딘지 몰라도 20m 이내에 있다는 건 다 알 수 있거든!”


세코는 상체를 땅 위로 드러냈다. 어느새 콜로세움은 도로 하나를 두고 있었다.


“움직이는 소리를 내서 들키지 않으려고… 꼼짝 않고 가만있는 거지? 아니면 무슨 ‘계책’으으을~ 짜는 중인가? 잔머리 하난 잘 굴리니 말이야. 하지만… 더 이상.”


세코는 갑자기 물러진 흙들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꾀를 부릴 여유 따위이이이이이! 여유 따위 안 주겠다…”


세코는 입에 한가득 머금은 흙들을 공중에 모조리 뿜었다. 땅 속, 소리를 내지 않고 멈춰 있던 부차라티는 어디선가 무언가 발사되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한 두 번이 아니라 수십 번은 연속해서 울렸다.


“아까와는 다른 소리다. 뭐지… 이 소리는…? 모든 방향에서 들려와.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때, 날카로운 돌이 부차라티의 목을 꿰뚫었다. 경악한 부차라티가 비명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을 때, 그것과 비슷한 크기의 날카로운 창 수십개가 부차라티에게 날아들었다. 그것들은 모두 지상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지면 돌바닥은 말이야아아아 내 ‘오아시스’와의 접촉으로 흐물흐물해진다… 하지만 내 몸에서 일단 떨어지면 말이야아아아… 다시 굳는다고!”


날카로운 돌 창들은 부차라티의 몸을 계속해서 꿰뚫었다. 부차라티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려던 것을 손으로 간신히 막았다. 세코는 부차라티가 숨었을 부분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부차라티이이. 가능성은 어쩌면 있을지도 몰라아아아! 꼼짝않고 가만있을 수 있다면 말이야아아아 그럼 버틸 수 있을지도오오오.”


부차라티는 이제 한계였다.


“틀렸어… 더 이상 땅 속에 있는 건 불가능해… 하지만… 그렇다 해서 땅 위로 달릴 수도 없어.”


부차라티가 고전하고 있을 때, 콜로세움의 남자가 황금색 쇠똥구리로 장식된 ‘화살’을 들고 중얼거렸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만약 ‘그 친구’가 이곳에 오지 않는다면… 이곳 콜로세움에서 ‘접선을 하기로 한 것’을… 적의 추종자에게 들키고 만 것인가…”


남자가 무릎 위에 올린 노트북에는 부차라티를 비롯해 그의 팀원들의 신상정보가 담긴 화면이 떠 있었다. 남자는 휠체어를 몰아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기둥 뒤로 움직였다. 남자의 귀에 달린 반쪽이 난 하트 모양 귀걸이가 흔들거렸다.


“’화살’은 파괴해야 해… ‘희망’은… 이 ‘화살’과 만나게 될 ‘그들’이야… ‘시간의 지배’가 가능한 ‘킹 크림슨’을 넘어설 수 있는 건 이 ‘화살’의 ‘진정한 파워’를 아는 자뿐… 그게 가능한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야…”


남자의 오른쪽 눈 전체를 뒤덮는 고글이 오른팔에 찬 팔찌에서 반사된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지켜온 화살을 볼 때 마다 더 이상 볼 수 없는 동료들을 떠올리곤 했다.


“13년 전 이집트에서 그 투쟁 후 손에 넣은 이 ‘화살’이 초래할 ‘공포’는 ‘그들’이 오지 않으면 끝나지 않아!”


남자의 이름은 ‘장 피에르 폴나레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