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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사이드 IF - 에피소드 I: 만약 관리자가 그때 떠나기로 결정했었다면

(https://arca.live/b/counterside/55899420)

 카운터:사이드 IF - 에피소드 II: 공익 등장

(https://arca.live/b/counterside/55915019)

 카운터:사이드 IF - 에피소드 III: 스포)리타와 대시는 육익한테 구출받음

(https://arca.live/b/counterside/55929667)

 카운터:사이드 IF - 에피소드 IV: 용과 뱀의 윤무곡

(https://arca.live/b/counterside/55949571)

 카운터:사이드 IF - 에피소드 V: 리뎀션 오브 더 킹

Part I Part II Part III Part IV Part V Part VI Part VII Part VIII Part IX

 카운터:사이드 IF - 에피소드 VI: 뉴건담 카린과 겟타팀

Part I Part II Part III Part IV Part V

 카운터:사이드 IF - 에피소드 VII: 경력사원

Part I Part II Part III Part IV Part V Part VI Part VII

 카운터:사이드 IF - 에피소드 VIII: 악마성 로자리아

Part I Part II Part III Part IV Part V Part VI

 카운터:사이드 IF - 에피소드 IX: 어둠 속의 왈츠

Part I Part II Part III Part IV Part V Part VI Part VII Part VIII

 카운터:사이드 IF - 에피소드 X: 테라사이드

Part I Part II Part III Part VI Part V

 카운터:사이드 IF - 에피소드 XI: 눈을 뜬 마왕

Part I Part II Part III Part IV Part V

 카운터:사이드 IF - 에피소드 XII: 리턴 오브 더 킹

Part I Part II Part III Part IV Part V Part VI




 -- 카운터:사이드 IF - 에피소드 II: 공익 등장 --





 "Every little step I take, you will be there, Every little step I make, we'll be together♪"


 "And as a matter of fact, it blows my mind…♬"


 "Everybody wants to know what's going down, not with the James, not the Jim, but the Bobby Brown♪"



 울퉁불퉁한 거대한 바위벽들이 곧게 서있는 브라운 락 캐니언의 도로에는, 80년대 음악을 틀며 매캐운 연기를 뿜어대는 고물 같은 차량이 털털 거리며 지나갔다. 과거의 사람들에게는 단지 재미없는 황무지로 기억되었을지 모르지만, 자연의 경관이 침식파에 의해서 오염되지 않았던 이곳의 풍경은 지금의 사람들에게는 되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했기에 안전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주었다.


 운전자는 에디. 뒤에 앉은 용병들은 찰리하고 제시카고, 에디 옆에 앉아 팔을 괴며 바깥을 보는 여성은 카린.


 카린은 한숨을 쉬었다. "이제와서 팔십 년대 노래 들어봤자 무슨 의미가 있나요." 에디는 뭔가 친근한 태도로 답했다. 다른 세계의 에디는 절대 이런 성격이 아닌데. "딸이 좋아하더군. 같이 듣다보니 나도 좋아하게 됬어."

 뒷좌석에 팔짱을 끼고 앉아있던 찰리가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뭐. 지금도 클래식 음악 듣는 사람도 있잖아?" 초코바를 씹어먹던 제시카가 찰리에게 핀잔을 주듯이 중얼거렸다. "클래식이 뭔지도 모르는 녀석이 말은 잘하네."


 터덜터덜, 쿵쿵 거리면서, 왠지 불안한 불편한 승차감을 주었다.


 에디가 카린을 슬쩍 보면서 말했다. "급하다 해서 쎄게 밟지만, 이런 도로에서 빨리 달리면 차에 좋지 않은데…." 그러자 카린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서 조용히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죠. 이딴 고물차 정도는 새로 뽑을 정도의 돈은 줄테니까."


 "하하, 그건 안심이군."

 "……."


 "그런데 대령 아가씨, 우리 같은 용병은 뭐하러 불렀던 거지? 댁의 델타세븐이 직접 나서면 우리는 필요도 없잖아?"

 "제프티 바이오테크 아메리카 지부…."

 "그래, 임무 목표."

 "사실 이번 일은 저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몰래 당신들과 같은 용병을 불렀던 것이죠."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기분 좋았다.


 찰리가 기지개를 피면서 말했다. "뭐, 양심에 찔리지 않고 제대로 돈을 벌 수 있으면 나야 좋다구! 받은 만큼 일할테니 믿어봐. 카운터는 아니지만, 그냥 용병이 꽤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랄 걸!"

 카린은 아무 말도 하질 않았다. 초코바를 다 먹은 제시카가 그냥 껍질을 밖으로 툭 던지며 말했다. "자식, 입만 살았어."


 …….


 차를 점점 몰다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한 카린들. 이런 험한 외딴 곳에 있기에는 매우 어색하게 보이는 큰 건물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카린이 찾으려고 했던, 제프티 바이오테크 미국 지부. 굳이 카린이 지금 시기를 골라서 왔던 것도 바로 딘 코너… 본명 윌버 웨이틀리, 그가 이곳에 있단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기다리세요, 중장님, 대령님. 제가… 저희를 배신한 그 녀석들에게… 복수할테니까.'



 .

 .

 .




 알파트릭스 건물 옥상, 7:00 AM KST.


 카린이 있는 센트럴 타임 존에선 오후 3시지만, 그라운드 원을 기준으로 사장이 있는 한국에선 아침이다. 관리자는 한솔에게 알파트릭스 건물 옥상에서 기다리라 지시했고, 지아에게 말해 오즈 멤버들도 데려오게 했다.


 아침 바람이 꽤나 쌀쌀한 가운데, 제일 처음 한솔이 나왔고, 지아와 도로시들이 뒤따라왔다. 어쨌건 전부 모였고, 검은 타이탄이 철컹거리면서 앞으로 나와 말했다.


 "한솔 군, 도로시 양들과 함께 위저드란 조직을 공격했다고 들었는데."

 "…그렇습니다. 단독으로 일을 벌여 죄송합니다."


 그때 당시에는 정의감에 나서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해선 안 될 일이었다.


 애당초 자신은 프리랜서 카운터가 아닌, 이 회사에 소속된 직원이다. 자기 혼자만 아닌 코핀 컴퍼니 자체가 정체 모를 위험한 집단에 선전포고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이상할 것이 없었으니까.


 지금 사장 입장에선 자긴 단지 사고나 치는 얼간이로 보이지 않을까, 그렇게 걱정하며 양한솔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질 못했다.


 그런 모습을 본 도로시는 왠지 못 견디겠다는 듯, 눈을 똑바로 크게 뜨고 따졌다.


 "저기, 한솔이한테 뭐라고 안 할 거지? 착한 일 했던 거잖아? 어른인데 쪼잔하게 그거 갖고 뭐라고 하진 않겠지?"


 관리국 타이탄은 단지 침묵하며, 그냥 철컹 철컹 거리면서 한솔을 붉은색 렌즈로 쳐다봤다. 사실 관리자는 그냥 책상에 앉아서 턱을 괴고있을 뿐이지만, 애초에 그걸 디폴트 동작으로 설정한 기계였었기에… 왠지 그들에겐 뭔가 엄청 화났지만 말을 고르는 듯한 인상으로 보여졌다.


 "저, 저… 내가 잘못했어. 한솔이는 잘못 없으니까…. 우리가 어떻게든 할테니. 한솔이는 용서해줘."

 "맞아요. 사실 저희끼린 할 수 없었는데, 한솔 씨가 나서서 저희를 도와주신 거니까…."


 도로시와 리온은 미안한 기색으로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허수아도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용서해주지 않으면, 쪼잔이." 그녀의 헤드기어에는 ' :( ' 문자가 떴다.


 관리자는 다른 모니터들에 눈을 돌리다가, 턱을 괴며 생각했다. 그리고는 타이탄을 통해 말하였다.


 "내가 잘못 듣진 않았겠지? 정말로 무엇이라도 한다고?"

 "아, 응! 사장님, 그… 나쁜 사람, 아니, 나쁜 기계 아니지? 이상한 짓만 아니면 전부 할게!"


 도로시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을 보고 사장은 지아를 향해 기계 렌즈를 돌리며 말했다.


 "그렇다는군, 지아 회장. 내가 도로시 양들을 데려가도 괜찮겠나?"

 "하지만…."


 지아는 왠지 내키지 않는 목소리를 내었다. 관리자의 모니터 실에서 있었을 땐 그렇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였던 그녀지만, 역시 미숙한 소녀를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현장에 보낸다는 건 찬성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그 모습은 관리자에게 특이하게 보여졌다. 사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상적인 가치관을 함양한 숙녀처럼 보일지 몰라도: 지금의 세계는 고아들도 침식체와 싸우면서 스스로 살아남아야만 하는 지옥도다.


 '아마 한국의 상태가 꽤나 양호한 것도, 이 세계의 알파트릭스 회장이 손을 써뒀기 때문이겠지.'


 서윤의 예가 있었듯, 소년병들은 마치 길가의 똥개와 같은 취급을 받는 시대다. 언제 죽어버려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의 등을 쳐먹는 악마들이 넘치는 사회상. 이 시대에 전혀 모르는 소녀들을 거두어주고 진심으로 보살피려는 지아는 매우 특이한 여성이었다.


 "걱정말게. 이 기체는…."


 관리자는 말을 하다 어색함을 느껴, 다시 고쳐서 말했다.


 "…아니, 나 자신은 제4종과 비견될 수준이야. 언제라도 지켜줄 수 있으니 걱정말게."

 "이 아이들을 보내는 것보다 차라리 제가 대신 간다면 안 될까요?"

 "그럴 순 없네. 자네는 남아 내가 지시한 일을 처리해주게. 그건 지아 회장 밖에 할 수 없는 일이야."


 둘의 대화를 듣던 도로시가 살짝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뭐, 뭐야? 어디 싸우러 간다는 거야?"


 그러자 타이탄이 설명했다. "한솔 군이 그 기지를 습격한 후, 거기에 남겨진 자료를 입수해 조사해봤네. 제프티 바이오테크란 회사와 협력 관계에 있었더군. 그곳 또한, 위저드랑 마찬가지로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 실험하는 것 같아. 그렇기에 도로시 양과, 허수아 양과, 리온 양의 도움으로 그들도 같이 구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네."


 지아는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이제 저 소녀들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이 간다는 것처럼.


 그 말을 듣고, 역시 빨리 대답하는 도로시. "갈게! 여기서 겁쟁이처럼 물러날 수는 없지!" 그리고 말없이 'O' 표시를 띄우는 허수아. 그런 둘을 보고, 조심스럽게 손을 들면서 말하는 리온. "그렇다면… 저, 저도…."


 지아는 관리자를 보면서 말했다. "치사해요, 사장님. 처음부터 이렇게 하려고 생각했죠?"


 "이들은 더이상 자네가 생각하는 어린 소녀들이 아니야. 이 세계는 더욱 많은 영웅을 필요로 하고 있어."

 "……."


 사실 지아 스스로도 알고 있긴 했다. 알파트릭스의 기술로 더욱 강화한 부품을 장착한 그녀들은 어지간한 용병보다 강한 잠재력을 지녔었다. 또한, 그렇게 아이들을 위해서 싸우던 어른들도 이미 많이 죽었기에 저런 소녀들도 전장에 투입될 할 시간이 머지 않았단 것도.


 "미안하네. 자네에겐 마치 동생들과 같을텐데…."

 "아뇨. 사장님 말씀이 맞아요. 저는 단지…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을 뿐이예요."


 그리고 지아는 매우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올림피안의 렌즈를 보면서 말했다. 마치 저편의 관리자를 꿰뚫어 보는 것처럼.


 "부탁드릴 수 있는 거죠?"

 "약속하지."


 그러고서 타이탄은 코핀 함을 호출했다. 김하나가 승인하고, 조금 지나 하늘을 가리던 거대한 구름 저편으로부터 천천히 내려오는 거대한 차원전함. 먼저 기세 좋게 올라타는 도로시. 그리고 허수아, 그리고 리온에, 한솔까지 들어갔던 뒤에, 검은 타이탄도 덜컹거리며 승선했다.


 목적지는 제프티 바이오테크 미국지부.


 사실, 관리자는 카린이 이미 그쪽을 향했다는 사실을 진작 알고있었다. 또 윌버가 거기서 개발하고 있는 인공침식체들은 그녀 혼자서는 감당하질 못한다는 것도. 천천히 함의 방향을 돌리던 코핀은, 이내 전속으로 아메리카에 위치한 브라운 락 캐니언을 향해서 날아갔다.


 관리자는 깍지를 쥔 손으로, 모니터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마리아도 제이크도 내가 오기 전에 죽었다니 믿을 수 없군. 리플레이서의 본진을 공격중, 내부의 배신에 의해 이동 좌표가 노출되면서 기습을 받았다. 함은 리플레이서 퀸의 포격을 받고서 추락, 이후 적들에게 둘러쌓인 상황에서 결국 자신만이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그것이 카린의 보고서였지.'


 관리자는 오른손을 살짝 쥐고 뺨에다가 대며 턱을 굈다. '델타세븐에 남은 전력은 결국 카린뿐인가. 로자리아도 확언했었지. 토르는 내가 오기도 전에 죽었다. 거짓말치진 않았군. 솔직히 틀렸길 바랬었지만…. 하지만 카일이건 카린이건, 어쨌건 유능한 카운터인 것은 맞으니까. 서둘러야겠어.'


 그렇게 멍하니 모니터를 보던 관리자는 하품을 쉬다가 새삼 깨달았다.


 "코핀… 느리군."


 이때, 마이크를 끄는 것을 잊었던지, 타이탄은 관리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내면서 똑같이 중얼거렸다. 그걸 들은 한솔은 샌드위치를 먹다 말고 말을 맞춰줬다. "구형함이니까 어쩔 수 없죠. 그렇지만 보기보단 튼튼하잖아요?"


 '마이크를 끄지 않았었나?'


 어쨌던간 심심한 것도 있었고, 관리자는 한솔에게 물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오기 전까지 밥은 어떻게 나왔나?" 진짜로 평범한 먹을 것 얘기. 그러자, 한솔은 왠지 놀랍다는 듯이 눈을 뜨면서 말했다. "그런 것에 관심 가지실 줄은 몰랐는데요."


 "어째서지?"

 "그거야, 사장님… 기계이시잖아요?"

 "그것도 그렇군."


 한솔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어… 그러고보니 회사밥은 기묘할 정도로 카레가 많이 나왔네요. 카레밥, 카레빵, 치킨 카레…."

 "…카레? 어째서?"

 "모르겠네요. 누구 입맛인지는."


 한솔은 별로 관심도 없는지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며 중얼거렸다.


 '코핀 컴퍼니에 그런 카레 빌런은 없었을텐데…? 뭐지?'


 왠지 별 것도 아닌 것에 불안하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관리자였다. 그러자, 혼자 바닥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던 허수아가 궁금하다는 듯이 헤드기어에 '?' 문자를 띄우면서 물어봤다. "카레… 좋아해?"

 한솔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글쎄,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네. 아하하…." 허수아는 왠지 기운없게 바닥을 쳐다보며 말했다. "유감…." 그녀의 헤드기어에는 ' ……. ' 문자가 보였다.


 "그게 코핀 컴퍼니야? 어떻게 된 회사가 학교 급식보다 식단이 구리지?" 창 밖을 보던 도로시가 왠지 경멸스럽다는 듯이 타이탄을 흘겨봤다.


 "내가 지시한 게 아닐세. 애초에 나는 로봇이 아닌가."

 "…그래?"


 우유를 마시던 리온은 반대로 기대하는 눈빛을 지었다. "그, 그래도… 치킨 카레 같은 건 기대되는데. 왠지 먹고 싶어졌어." 하지만 도로시는 눈동자를 돌리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충 대꾸했다. "그럼 나중에 내 것까지 실컷 다 먹어."


 '도로시는 카레를 싫어하나?'


 그러다가 갑자기 궁금해져 타이탄은 붉은빛 렌즈를 한솔을 향해서 비추면서 물었다. "여태껏 회식은 어떻게 했었지? 힐데 소대장이 주로 뭘 사줬던가?" 샌드위치를 다 먹은 한솔은 버릇처럼 팔짱을 끼면서 대답하려 했다가, 자신의 팔을 소스가 묻은 손으로 잡았던 것을 깨닫고 당황했다.


 둘을 조용하게 보고 있었던 리온이 그때 빠르게 주머니에서 물티슈를 꺼내며 말했다. "여기, 물티슈요. 닦으세요." 한솔은 살았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리온. 준비성이 좋네."


 자리에 서서 물티슈로 툭툭 털듯이 팔을 닦으며 말하는 한솔. "스승님은 항상 가위바위보를 해서, 제가 지면 제가 먹고 싶은 걸로, 스승님이 지면 스승님이 먹고 싶은 걸로 고르기로 했었어요."


 '왜…? 뭐지? 아니, 힐데한테 그런 버릇이 있었나? 처음 듣는데.'


 그냥 아무 말도 없이 멀뚱멀뚱 쳐다보는 걸 느끼고는, 한솔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하하, 이상하죠?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네요. 아! 그러고보니 그것만은 아니었어요. 때로 그 규칙은 검술 대련때 내기로 쓰이기도 했었요. '언젠가 네가 나를 이기면, 그때 네가 나한테 사거라. 그러면 너한테 져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져도 노력엔 언제나 보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내가 사주겠다.'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아……. 이거….'


 어쩌다가 대화가 그렇게 되었는지, 한솔의 얼굴은 힐데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레 침울하게 변했다.


 '…괜히 들었다. 젠장….'


 관리자는 타이탄의 캐논으로 한솔의 어깨를 살짝(?) 툭툭 쳐주며 말했다.


 "기운내게. 힐데 소대장은 반드시 돌아올테니. 게다가 자네가 우울해하는 것도 그녀가 원하는 게 아닐세."

 "아, 저… 사장님, 아픈데요."

 "…크, 크흠. 미안하네."


 '힐데 녀석….'


 관리자는 고개를 뒤로 뻗으며 허리를 쭉 폈다. '이번 세계는 정말 기묘하고 괴상하군.' 그런 생각 밖에 들지 않았었다. 이수연이 없는 코핀 컴퍼니나, 유미나와 주시윤이 없는 세계, 또한 그렇기에 박정자를 포함해서 언제라도 코핀 컴퍼니에 항상 있던 사람들도 보이지가 않는 세계. 하지만 이런 곳에도, 저마다 추억과 희망을 가지고 있으니.


 '그렇지만 카레 빌런… 대체 누구일까.'


 어쨌거나, 오랜만에 그런 실없는 생각을 느긋하게 하는 것도 왠지 신선하게 느껴졌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코핀 함은 미국에 도착했다.


 사실, 출항할 때 관리자는 제프티 바이오테크를 공격할 것이라고 말하긴 했었지만 그건 이차적인 목표였다.


 지금은 단순히 무모한 공격을 하는 카린을 뒤로 물리거나 혹은 카린이랑 협공하는 것이었다. 즉, 어쨌거나 그녀를 생존시키는 게 목적인 것이다.


 "시스템, 마크해둔 브라운 락 캐니언으로 미속전진. 한솔 군, 검을 들게. 그리고, 도로시 양, 허수아 양, 리온 양."


 "그래, 준비됬어!"


 일단 도로시는 기세 좋게 외쳤지만, 허수아와 리온은 조심스럽게 사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일단 따라오라고 말하긴 했지만, 지금 당장은 단지 전장에 적응시키는 정도면 충분하겠지.'


 "…셋은 그냥 대기. 내가 지시할 때에 따라줬으면 좋겠네."


 리온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허수아는 단지 아무 말도 하질 않은채로 'O' 표시를 헤드기어에 띄웠다. 하지만 도로시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뭔가 불만인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러면 우리가 온 이유가 없잖아?"

 "아니, 내가 목표물을 구출하면 자네들이 호위하는 역을 맡아야 해."

 "아… 그래. 그러네. 알겠어."


 자신들과 비슷한 불운한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은 뚜렷했는지, 듣고 바로 납득한 도로시.


 '도로시는 저돌적인 성격이나 카운터처럼 몸이 튼튼하진 않으니까 너무 나서지 말라고 하려고 했지만… 지금 보니, 설명하면 이해하는 태도를 가졌어. 굳이 그런 잔소리는 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러던 순간에, 갑자기 바깥에서 총성이 들렸다. 한솔이 밑을 급히 내려보곤 사장에게 외치듯 보고했다. "사장님, 전방에 침식체로 추정되는 개체가 사십, 용병으로 추정되는 네 명을 원형으로 둘러싸듯 포위하고 있습니다!"


 "……."


 관리자는 타이탄을 캐터펄트까지 움직였고, 이에 한솔에게 명령했다.


 "따라와라, 한솔! 나머지는 일단 함내에서 대기!"

 "네!"


 그 뒤, 상공에서 마치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듯이 검은 타이탄이 낙하했다. 땅으로 떨어지는 도중에, 타이탄은 미사일을 카린들의 전방에 있는 적에게 발사했다. 마치 폭격기와 같이.

 한솔이 옆에 나란히 낙하하는 중, 관리자는 기체의 붉은빛 렌즈를 옆으로 돌리며 지시했다. "한솔 군, 저기 저 여자 보이나? 갈색머리 여성. 우리는 저 여자를 무조건 구해야만 하네. 자네가 잠깐 동안 그녀의 호위를 맡게."


 왜 그런진 모르나, 어쨌거나 한솔은 검을 쥐면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리 대답하며 칼을 더 꽉 쥐는 한솔.


 '미사일은 카린 입장에서 정면으로 쏴야했지. 자신들의 적을 공격하는 잠재적인 아군이란 것을 직관적으로 알려주기 위해. 다만 지금 이 올림피안 기체는 타이탄의 무장을 그대로 사용했기에 사격무장 밖에 없어. 미사일은 다섯 번만 더 쓴다면 끝이고, 런쳐는 아무리 제1종 침식체 따위가 적이라 해도 하더라도 사각으로 붙기 쉬워.'


 '물론, 붙어봤자 부스팅을 통해 떨쳐낼 수 있지만, 주위에 아군들이 있는데 혼자 사방으로 구르면서 날뛴다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냐.'


 '그렇다면….'


 떨어지는 타이탄을 마치 뒤로 빼듯이, 관리자는 포위당한 원의 안쪽인 카린들의 옆이 아니라, 함선과 원의 중간쯤에 착지를 하기로 결정했다. 한솔이 카린들과 혈로를 뚫고 도망치듯 나온다면, 자신이 뒤쪽에서 침식체에 계속 포격하며 호위할 수 있도록.


 타악.


 높은 곳에서부터 떨어졌는데도 고양이처럼 사뿐히 착지하는 한솔. 스승에게서 배운 낙법이었다. 그리고 바로 검을 치켜들어, 일격에 침식체를 죽였다.


 "적은… 아직도 삼십 마리 정도 남았군."


 '만일 사장님이 단지 함선에서 미사일과 캐논만 쐈었다면 그냥 전부다 죽일 수 있었겠지. 이건 억지로 저들을 구하기 위해서 몸을 던지는 것이고. 하지만 불평할 것도 없어… 약자를 위기에서 구하는 것이 기사니까.'


 혼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한솔의 뒤로, 카린이 물었다.


 "당신… 누구죠? 보니까 적은 아닌 거 같은데…."

 "코핀 컴퍼니의 양 한솔입니다. 저희 사장님이 당신들을 지원하라고 하셨습니다."


 한솔은 침착하게, 카린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고 정면에 집중하며 침식체의 발톱을 튕겨내곤 말했다. 방패로 적들을 간신히 막고 있었던 찰리가 물었다. "여어, 형씨! 혹시 카운터야?"


 "그렇습니다." 대답하며, 한솔은 칼날의 궤적을 크게 좌에서 우로 그리며, 침식체를 베어갈랐다.


 '스승님이 계셨다면, 이따위쯤 블레이드 스톰으로 바로 밀어버릴 수 있을텐데….'


 힘의 차이를 실감하는 한솔이었지만, 그런데도 일단 제시카의 눈엔 강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제법인데? 근데 당신 정도의 카운터가 어떻게 여기 딱 맞춰서 온 거야?"


 "저희 사장님이 이번 임무의 목적지가 여기라며 함선을 타고 가자고 하시더군요!"


 한솔은 마치 창으로 찌르듯 침식체의 눈을 찔러내며, 그리고 칼날이 박힌 침식체의 몸에 발을 대고서 밟아 빼면서 말했다. 그리고 에디가 물었다. "사장? 설마 저 엄청 큰 기계분이신가? 아까 전에 화끈하게 미사일도 뿌리셨지?"


 "네! 그거 저희 사장님 맞아요!"


 그리고 왼쪽발에 중심을 둔 채, 몸과 함께 칼날을 돌리며, 달려드는 침식체를 마치 야구 배트로 후려치듯 베었다.


 '대령님보다는 못하지만 강력한 카운터야…. 괜히 검 들고 싸우는 게 아니야. 한 번 움직일때 공격과 방어의 균형을 정확히 맞추고 있어. 단지 카운터의 파워만을 갖고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검을 쓰는 기술을 전문적으로 익혔어. 혼자서 깨우친 건가? 아니면 누군가한테 배웠나?'


 카린은 한솔을 엄호하며, 좌우로 달려드는 침식체를 총으로 쏴맞췄다. 그러면서 한솔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도중에, 갑자기 한솔이 무서운 눈으로 자신 쪽을 향해 달려드는 것을 보고 놀랐다.


 "자, 잠깐? 한솔 씨?"


 그리고 말없이, 카린 자신의 옆구리를 향해서 발톱을 치켜든 침식체를, 팔을 쑥 뻗어 찌르는 한솔.


 '뭐, 뭐지? 설마, 저렇게 정신없이 돌면서 주위 상황을 계속 파악하고 있었어?'


 침식체보다는 자신을 보고서 놀라하는 카린에게 한솔이 다급하게 말했다.


 "이대로 여기에 있으면 둘러싸이고 말아요! 저기, 제 사장님 보이죠? 우린 저기까지 가야해요! 그리고 함선을 향해서 달려요!"


 한솔이 가리킨 손가락 저편엔 검은 타이탄과, 상공에 떠있는 코핀이 보였다. 타이탄은 미사일을 흩뿌리며 침식체를 밀어냈고, 또 캐논을 쏘면서 포위된 원을 뚫으려고 했다.


 "아, 알고 있어!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 한솔의 머리에 마치 섬광처럼 무언가가 지나갔다. 이런 상황에는….


 "그 방패 저한테 줘요!"


 갑자기 찰리한테서 방패를 억지로 빼앗은 한솔. 어리둥절하는 찰리. 다른 모두를 향해 한솔은 소리쳤다.


 "그리고 다들 저의 주위를 감싸듯 등지고 바깥쪽으로 계속 총을 쏘세요!"


 딱히 똑똑하진 않은 찰리였었지만, 용병 생활을 계속 했었던 탓에 지금 한솔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과연, 똑똑한데! 어디, 카운터의 힘을 한 번 보자고!"


 찰리는 자신의 경기관총을 장전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다른 모두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솔의 주위로 붙어서 같이 거꾸로 달리며, 사방을 향해 총탄을 뿌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중간에 막는 침식체는 아예 방패로 밀고서 억지로 밟고 지나가는 한솔,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찰리와 제시카와 에디와 카린. 곧, 포위된 원을 뚫고서, 검은 타이탄을 지나쳤다. 그때에 사장이 지시했다.


 "함선으로 모두와 함께 들어가! 잠시 뒤에 따라간다!"

 "알겠습니다!"


 이때, 타이탄은 오히려 앞으로 돌격했다. 캐논과 미사일의 사각에 들러붙던 침식체들, 하지만 관리국 타이탄은 사격무장은 쓰지도 않으며, 단지 몸을 넘어지듯 구르면서 들러붙은 침식체들을 기체 자체로 짓누르며 압살했다.


 '이런 상황에 저런 발상을 하다니, 그래도 기본은 하는군. 만일 이게 주시윤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실력이 너무나 좋으니 애초에 위기에 빠지지도 않고 전부 죽였을까, 아니면…? 그런 생각을 하면서 관리자는 왼손으로 턱을 괴고, 오른손으로는 귀찮은듯 버튼매싱을 하듯이 아무렇게나 올림피안을 조작했었다. 어차피 땅에 구르건 말건 그 정도로 망가지는 기계도 아니다.

 단지 침식체가 아닌 것들에게 적대감을 가지는 침식체의 본능상, 그것들은 계속해서 관리자의 타이탄에 이빨을 세우고 부딪치며, 그리고 계속해서 깔려 죽고, 바닥에 짓뭉개 터져 죽고, 밟혀 죽었다.


 함선에 올라가 숨을 헉헉 내쉬던 한솔은 날뛰는 관리국 타이탄을 보고서 중얼거렸다.


 "굉장해… 제4종 침식체와 동급이라 했었던 것이 허세는 아니었군요."


 "뭐, 그렇지."

 한솔이 말을 마치자마자 거의 동시에 부스팅을 하면서 함선까지 날아오른 관리자의 타이탄. 한솔의 옆으로 와서 밑을 보고 있던 에디는 그 모습을 보고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외쳤다.


 "우왓! 놀랐잖아!"

 "미안."


 저런 위압적인 형태의 커다란 검은 기계가 그냥 캐쥬얼하게 미안이라고 말하는 걸 듣고서, 에디는 왠지 초현실적인 느낌을 받았다. 사실, 자신들이 총을 아무리 쏴도 제압하기 어려웠던 침식체들을 단지 굴러다니면서 죽이는 것을 봤을 때부터 이미 초현실적인 광경이지만….


 어쨌든 찰리가 말했다. "어… 그래서, 당신이 코핀 컴퍼니의 사장님이시라고? 이야, 댁 덕분에 살았어." 관리자가 타이탄을 통해 찰리를 훑어보고 말했다. "어떻게든 무사한 모양이군. 다친 데도 없고."


 그리고 그들의 뒤로, 도로시와 허수아와 리온이 조용히 다가왔다. 한솔이 그녀들을 보면서 말했다.


 "이번도 위험한 전투였어. 어떻게든 살긴 살았지만…. 그래도 사장님 판단이 맞았네. 도로시들은 여기서 쉬고 있길 잘한 것 같아."


 도로시는 그냥 솔직하게 인정했다. "아, 응… 정말 굉장했어. 우리가 따라갔다면 확실히 방해만 되었을거야."


 "어? 아이들이… 여기에 왜 타고 있죠?"

 "웃… 실례라고, 언니."


 어린 취급을 받는 것은 싫어하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째려보는 도로시. 카린은 왠지 솔직히 사과했다. "아… 미안해요." 달리, 에디는 허수아나 리온을 보면서 생각했다. '내 딸보다는 더 크군. 그래도 저 나이의 소녀들이 전함에 탑승했다는 것은….'


 어쨌건 관리자의 타이탄이 카린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만나서 반갑군, 델타세븐의 카린 대령. 우리도 제프티 바이오테크를 공격하려고 했었네. 여기는 힘을 합치지."

 "당신들은… 대체 누구죠? 게다가 제가 이곳에 있었던 건 어떻게 알았죠?"

 "…일단 잠시 쉬고 얘기하지. 자네들의 얼굴이 매우 피곤해 보이니까. 어차피 시간은 많이 있어. 윌버도 한동안 저기서 벗어나질 못할테니 걱정하지 말게."


 어쨌던간 코핀 컴퍼니가 아군임을 확신했던 그녀들은, 그 말을 듣고서 한숨을 쉬며 함선 바닥에 눕거나, 벽에 기대며 총을 내려놓았다.



 .

 .

 .



 한편 아키는….


 평상시처럼 회사에 출근했지만, 사장도 한솔도 없었다. 단지 하나 부사장이 알파트릭스의 지아 회장에게 찾아가서 그쪽 일을 도우라는 지시를 전달했던 것. 아침 일찍부터 다들 어디로 갔는지 레나에게 물어보니 북미 지역의 제프티 바이오테크라는 회사와 싸운다는 현장 임무를 수행한단 얘기를 들었다.


 '…이 회사는 현장 직원이 한 손에 뽑을 정도로 적은데 계속 싸움질만 하네요."


 아키가 봐도 이상한 건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 강하단 소대장이 적에게 쓰러져 입원한 와중에도, 완전히 기체를 바꿔 부활한 사장이 다른 임무를 직접 지휘한다. 다른 태스크포스들은 이런 위축된 상황에선 채굴 및 사냥 같은 소극적인 활동만 할텐데, 여긴 아예 상식이 없는지 더욱 날뛰고 있는 것이다.


 '하아, 저 같이 평화적인 사람은 전혀 적응하지 못할 회사예요.'


 소대장은 사무직으로 배치되는 게 적성에 맞지 않겠나 상담했지만, 아키는 사무직이건 현장직이건 그냥 이딴 회사 지금이라도 나가고 싶단 생각만 들 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알파트릭스 본사 앞까지 가서 머뭇거리던 아키. 인터콤을 앞에 두고 코핀 컴퍼니에서 보냈었다고 말했었지만 누군지도 모르니까 돌아가라며 말싸움을 계속 하다, 우연히 문 앞에서 마주친 지아 회장이 자초지종을 들어주고 결국 안에 들어왔다….


 '진짜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벌써부터 피곤해요….'


 라운지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아키. 그녀가 항상 들고 다니던 버스터 소드는 이젠 부끄러운 장난감처럼 느껴졌다.


 "코핀 소속이라고 했소? 거긴 소수정예가 아니었던가. 언제부터 이런 심부름꾼을 보낼 인력소가 됬지?"


 그때, 뒤에서 트렌치 코트를 걸친 여성이 다가왔다.


 "어… 저… 누구세요?"

 "프리랜서 카운터인 린ㆍ시엔이오. 신입이나 사무직의 인원인가? 오래전부터 그대가 속한 코핀과 연이 닿았던 사람이오만…."


 선글라스를 벗어 접곤, 안주머니에 넣는 모습은 척봐도 뭔가 베테랑 용병 같은 인상을 줬다.


 그리고 하얀 피부에 대조되게 잔흉터가 많은 손을 당당히 내밀었다. 아키는, 힐끗 보다, 호걸과 같이 느껴지는 그녀의 웃음을 보고선 자기도 모르게 어색하단 느낌을 잊으며 꽉 악수했다.


 "…아키. 코핀 컴퍼니 펜릴 소대의 히로세 아키예요."

 "반갑네."


 "훈련생인가? 그 살벌한 코핀 컴퍼니도 꽤나 보육원처럼 변했군. 하기사 리플레이서가 날뛰는 지금, 어디라도 인원을 보충하기 힘들으니까 말일세. 그래, 힐데 소대장과 한솔 군은 잘 있소?"

 "아, 네. 한솔 선배는 새로 들어오신 사장님과…."


 아차.


 자기 기업의 활동을 이런 모르는 사람에게 발설해도 좋은 걸까?


 그렇게 말을 잇지 못하며 주저하던 와중, 지아가 돌아오며 말했다. "린 씨. 코핀 컴퍼니는 오늘 현장임무를 맡고 있다고 하네요. 힐데 소대장은 지난 작전에서 중상을 입어 병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계시고요."


 "…힐데 정도가 되는 고수가 당했었다고?"


 시엔이 얼굴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지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믿기지도 않겠지만, 사실이랍니다. 원래라면 그쪽에 의뢰하려고 했었던 일을 대신 조사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군. 걱정 붙들어 매게나. 이런 탐정 일은 내 전문이오. 게다가 그 괴물이 있건 없건, 어차피 코핀은 이런 임무를 받아주지 않았겠지. 회장이 나에게 맡긴 건 현명한 판단이오."


 둘의 대화를 조용히 듣던 아키는 코핀 컴퍼니나 혹은 힐데의 위상이 이 구역에서 어느정도나 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팔짱을 끼고 고심하던 린은 그대로 고개를 들어 물었다. "예전 한조 때부터 그랬지. 어느 시대에도 국운이 걸린 시기엔 나라에서 사교도가 출몰하고… 그래, 출발하기 전에 내가 더 알아야 할 정보는 있소?"


 지아가 라운지 중앙에 고개를 돌려 명령했다. "컴퓨터, 브리핑 자료를 준비해주세요."


 나긋한 여성의 목소리가 응답하며, 푸른 홀로그램의 스트럭쳐가 공간 중앙부에 펼쳐졌다. 부숴진 트럭과 난잡하게 흐트러진 탄피, 그리고 이제는 버려진 고층 빌딩. 침식지대의 풍경이었다.


 "사교도의 일부로서 추정되는 그룹이었는데, 저희 사원들을 파견하여 처리했습니다."

 "확실하군."


 "하지만 이들은 보급부대가 아닐까 추정됬어요."

 "왜지?"


 지아는 손짓을 하여 컴퓨터에 지시했다. 트럭의 방향에 줌인하며 그곳에서 회수한 물품이 주위에 펼쳐지듯 공간 중에 떠올랐다. "강습대가 찾은 물건들은 의복 및 식량 외, 사교도 본인들이 쓴 화기에 호환되지 않는 탄약과 포탄을 싣고 있었습니다."


 시엔은 고개를 까닥였다. "그렇지… 타당한 결론이야. 하지만 이 차량은 어딜 향하고 있었나?"


 지아 회장은 한숨을 쉬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측 경로의 모든 지역지구들을 확인했었지만, 아무 단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고용한 것이다. 시엔의 명성은 그녀의 무력으로부터 기인한 게 아니라, 지력으로부터 널리 알려진 것이니. 물론 세간에 천재라 알려진 지아도 마음만 먹으면 해결할 수 있겠지만: 그녀의 지위엔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었다.


 "후우… 일단 저기부터 가보는 게 좋을까."


 "……."


 그렇게 말하며 품에서 꽁초를 꺼내 입에 물곤 팔짱을 끼며 무언가 생각하는 시엔과, 말을 마치곤 자길 뚫어지게 쳐다보는 지아. 아키는 불길함을 느꼈다.


 '어…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죠?'


 눈이 마주치자 빙긋 웃고는, 지아는 린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럼, 보조역으로 아키 씨를 붙여드리겠습니다. 치명적인 위기 상황이나 혹은 결정적인 자료를 입수했을 경우, 즉시 연락해주세요."


 "네?!"


 …불안한 직감은 언제나 맞는다.


 "음! 맡기시오. 그래, 갈까?"


 도대체 자기가 가도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단 표정을 짓는 아키를 우악스런 손으로 잡곤 그대로 끌고 나가는 린. 자기랑 비슷한 또래의 여자애로 보이는데 참 힘이 강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것도 카운터 워치에 의한 근력향상의 작용이지만.


 아직 서먹서먹한 둘은 걸어가며 아무런 말도 하질 않았다. 아키는 계속 눈치만 봤고, 린은 휴대용 장치를 통해 사전에 입수한 자료를 전부 검토하고 있었다. 딱히 더 이을 단서가 없어 전자 펜을 머리에 콕콕 찌르던 린은 그냥 한숨을 쉬며 장비를 주머니에 넣곤 인상을 찌푸렸다.


 "…저기, 잘 안 되나 봐요?"

 "응?"


 "아, 그게… 아, 하하."


 어색함을 풀어내려 뭔가 말을 꺼내려고 했던 아키지만, 평균 이하의 절망적인 소셜 스킬을 가진 그녀였다. 용병처럼 보이니까 많은 경력과 경험이 있을 거 같다, 아니면 코핀 컴퍼니와 연이 있다고 했는데 뭐일까, 그런 부분을 물으면 좋나 그렇게 생각하면 그녀지만….


 역시 다른 사람과 말하면 금방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면서, 이미 생각한 작전(?)의 반도 풀어내질 못하는 것이다.


 정말 안쓰러운 아키. 하지만 린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딱히 눈치채지 못하고 적당히 말을 받았다. "그래. 탐정 일이라고 단지 보고서만 읽으면서 풀 수 있었다면 누구나 했겠지. 지아 회장도 그럴 수 있었을 것이오."


 그리고 기지개를 피면서 말했다. "하아- 그녀가 굳이 나를 고용할 정도라면, 쉽진 않겠다 그 말일세."


 "하하하… 인생, 편하면 재미가 없겠죠?"


 …….


 아니, 진짜.


 바보 아키! 왜 자꾸 이딴 이상한 말을 대답이라고 하는 건데?


 하지만 그걸 그냥 재밌다 생각한 건지, 린은 웃어줬다. "인생 편하면 재미가 없다… 그렇지! 자네의 말이 맞아." 그리고 아키를 향해 돌아보며 물어봤다. "분명히 신입 같은데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네들이 하는 말을 읊는 것 같군. 어때, 그 검으로 얼마나 많은 침식체들을 죽여왔었소?"


 "네?"


 "요즘 세상에 그런 대검을 들고 밥 벌어 먹으면 충분한 실력이 있단 게 아니겠소?"


 '…대검, 그냥 버려버릴까.'


 옛날엔 중세 기사나 일본 무사가 화려한 갑옷을 되려 기피했단 말을 이해하지 못한 아키였지만,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듣다보니 왠지 피부로 실감하게 됬다….


 …이 버스터 소드는 단지 좋아하는 게임의 멋진 주인공이 썼기에 코스프레 및 호신용의 겸용으로 용돈 탈탈 털어 구매했던 건데.


 "아, 아니예요! 그냥… 총알 값이 부담스러워서 검을 대신 쓰는 거지, 저 그렇게 강하지도 않아요."

 "으음…? 하지만 꽤 괜찮은 검이 아닌가. 당장 팔면 화기와 탄약은 쉽게 구할 수 있을텐데? 그냥 겸손한 게 아니오? 애초에 하수가 침식체와의 혈전에 검을 들고 싸우러 갈 이유가 어디에 있겠나!"


 …이성적인 사람이면 분명히 그럴 것이다. 아니, 이성적이고 뭐고 정상적인 사람이면 당연히 저렇게 생각하겠지.


 아이러니하게도, 린은 자기가 말하다 보니 오히려 자기의 논리를 더 믿게 됬다. 진심으로 아키가 실력을 감추고 있는 강호가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


 '도대체 왜 만나는 사람마다 제게 부담감을 잔뜩 줘버리는 건지….'


 …아까 전만 하더라도 침묵이 어색해 어떻게든 대화로 풀고 싶었던 아키였지만, 오히려 이번엔 대화 자체가 너무나 부담스러워 다시금 침묵에 돌아가고 싶다고 느끼는 아키였다.


 한 시간 뒤….


 마젤란 사교회가 알파트릭스 순찰대 및 강습대 전투원들과 맞닥트린 그 침식지대.


 회색빛 버려진 폐건물들이 못처럼 박혀 있는 유령도시엔 왠지 금방이라도 침식체들이 나올 것 같은, 무언가 어둡고 적막한 기운이 맴돌았다. 스륵 불어오는 바람조차 왠지 이 세상의 것이 아닌듯, 아키는 왠지 떨리는 가운데 기묘하게 초조함 대신에 침착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뭐지?'


 아키는 린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저기, 린 씨…? 분명 아까 홀로그램으로 봤을 때는…."


 팔짱을 끼고 무서운 눈으로 주위를 노려보다가 이내 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피우는 그녀. 선글라스를 쓰지 않은 그녀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아 뭔가 에이전트 같단 느낌도 주었다.


 "흐음…."

 "이상하지 않은가요? 그 사이에 시체가 전부 사라졌어요!"


 "알고 있소."


 코트를 펄럭이며 이것저것 보면서, 계수기로 침식파를 측정하는 린. 아키는 방금 전의 지루한 상황과는 달리, 두려움과 호기심이 공존하는 흥분을 느끼면서 쫓아가 물었다. "저기, 혹시 알파트릭스에서 전부 수거했던 것은 아닐까요?"


 "뭐…?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지?"


 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어봤다.


 "그야… 적이긴 해도 죽은 사람은 묻어주는 게 예의니까?"

 "자네, 현장 경험이 정말 없군."


 "……?"


 "침식체의 시체를 땅에다가 묻어? 코핀 컴퍼니엔 그런 새로운 관습이 생겼나? 신입, 보통은 그냥 그곳에 전부 버리는 것이라오. 정화하지 않는 이상 이것들은 전부 오염물질에 불과하다네."


 아….


 또 멍청한 말을 해서 그런지, 아키는 얼굴이 붉어지며 당혹스러운 느낌만을 받았다.


 "해동에도 정말 이상한 마교가 있군…."


 질질 끌린 핏자국을 보곤, 린은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찔러 집중하였다. 확실히 전투 직후와, 자기들이 오기 전에 일어났던 것이 틀림 없다. 이것은 분명히….


 '분명히, 그들이 시체를 치워놓은 게 틀림없소.'


 애초에 이들이 보급부대란 것은 확정되었던 정보다. 그렇지만 굳이 이런 움직임을 취할 필요가 있나?


 도대체 무엇 때문에…?


 마젤란 사교회는 애초에 그 정체가 익히 알려진 무장집단이다. 거기다가 정보에 따르면 이들은 보급원에 불과해 딱히 누설되면 안 될 데이터를 가졌던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엔 그냥 물자들을 유실했단 사실을 보고하고 그걸로 끝이 아닌가? 게다가 이 작업은… 유추해보면, 땅바닥에 질질 끌은 뒤에, 마치 땅에 삼켜지듯…? 아니, 그럴리가 없소. 누군가가 들어 옮겼다는 것인데.'


 꽁초를 바닥에 툭 털고는 신발로 비비면서 끄는 린. 아키가 다가와 물었다. "저기, 애초에 시체에 중요한 의미가 있나요? 어차피 어디로 가져갔는지도 모르는데…."


 "고려해야만 하는 가능성이오."

 "어… 대체 왜요?"


 "마젤란 일파는 엘릭서를 제조하고 부하들에 보급하여 쓰도록 지시했다고 들었소. 지금 이 사건엔 딱히 관계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과거에 이들은 엘릭서의 성분이 유출되는 것을 기피하여 시체를 일부러 불태우거나 훼손시키는 방법을 취했소."


 린은 짜증나는 표정으로 흘겨봤다. "코핀 신입, 자넨 대체 아는 게 뭐요?" 아마도 자신이 생각하는 도중에 방해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아… 죄송해요."

 "……."


 마치 혼난 강아지처럼 풀이 죽은 모습을 보고 살짝 누그러진 린이지만, 그냥 고개를 휙 돌려서 걸어갔다. 그렇다고 말을 맞춰주면 귀찮게 계속 말을 걸 것 같아 그냥 의뢰에 집중하고 싶은 것이다.


 "저, 저기! 같이 가요!"


 하지만….


 "…방금, 뭐라고 하였소?"


 린은 방금처럼 뭔가 매서운 눈으로 아키를 노려보았다.


 겁에 질린 아키는 두려운 목소리로 떨며 반응했다. "아, 아니… 죄송해요, 그냥 같이 가고 싶어 불렀는데…!" 근데, 그녀야 그 성격이라 눈치채지 못했지만, 사실 린은 화내는 게 아니라 뭔지 모를 위화감과 어색함에 눈을 부라리며 날카롭게 반응한 것이었다.


 뭔가… 있다.


 뭔가가 들렸다.


 "코핀 신입, 방금 뭔가 들리지 않았소?"


 아키가 그런 소리를 낼리 없다.


 그렇다면…?


 "어라… 이상한 소리요?"

 "……."


 뭔가가 이상해. 그렇게 생각한 린은 옆머리를 넘기고선 그대로 머릴 바닥에 대었다. 갑자기 뭔 행동을 하는 건지 모르는 아키는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멀뚱거리고 있었는데, 잠시 후에 그녀가 일어나곤 자리를 바꾸며 그짓을 반복하자 오히려 이상하게 보였다.


 '…뭐지?'


 곧 린은 자길 봐, 똑같은 짓을 하도록 명령했다. "아키. 땅에다 머릴 대보면 어떻겠소?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확인하고 싶다오."


 "…네? 아니, 왜요? 머리 더러워지는데…."

 "하시오, 당장."

 "시, 싫어요! 더럽다구요…."


 린은 뭔가 짜증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넨 코핀 사원이고, 그쪽에서 회장에게 보낸 인력이오. 그리고 지아 회장이 직접 나에게 자넬 붙여주었지. 듣지 않는 거요? 당신 회사에 이를 보고해도 괜찮겠소?"


 정말 철부지 같다, 그런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휙휙 지나가는 것이었다.


 거기까지 말해서야 아키는 심술난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우우, 하, 할게요!" 뭔가 이렇게 억지로 명령을 듣는 게 억울하단 듯이 살짝 울상인 목소리.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었다.

 한 곳, 그리고 한 곳, 다른 한 곳, 린은 계속 똑같은 곳에 귀를 대도록 지시했고 아키는 묵묵히 따랐지만 정말로 특이한 현상이란 없었다. 몇 차례나 계속 끈질기게 묻던 린은 결국 한숨을 쉬며 포기했다.


 "…정말로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리고 린은 사과도 없이 휙 돌아서서 기차 역의 입구 방향으로 걸어갔다.


 "자, 잠깐! 같이 가요!"


 아키는 지친 표정을 지으면서, 억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무거운 대검을 쥐고서는 뒤뚱뒤뚱 따라갔다….


 '결국엔 아무것도 없었잖아요…! 도대체 왜 그렇게 혼자 똥폼만 잡고, 이상한 일을 시키고, 미안하다고 말하지도 않는 것인데요…?! 이거 정말, 블랙기업이라구요…!'


 …그런 철부지 어리광을 속으로 하소연하면서.


 삼십 분 뒤….


 버려진 터미널 스테이션 안쪽까지 들어온 둘.


 침식체 하나 보이지도 않는 지하가 너무나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너무나 어둡고, 무언가가 숨어있어 자신들을 언제 덮칠지도 모른다는 그런 긴장감을 느끼며 아키는 꿀꺽 침을 삼켰다. 옆에 있던 린은 발소리를 내지 않고 조심스레 앞을 노려보며 걸어갔다.


 "린 씨, 정말로 여기에 나쁜 놈들이 있는 거 맞아요?"


 …….


 "린 씨?"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기 있었는데?


 하지만, 시엔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다.


 그 자리에서 얼어붙듯 당황한 아키는, 숨이 넘어갈듯한 소리를 내면서 사방을 둘러보다, 바닥에 있는 무언가를 밟고 뒤로 넘어지며 주저앉았다.


 '히, 히익….'


 그 소리가 역으로 자신을 더 무섭게 만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터벅터벅 들리더니, 마치 불타는 듯한 빛이 번쩍였다. 아키는 눈부셔 하며 손을 이마 가까이 댔다가, 그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베이지색 외투를 걸친 남자다. 그의 등 뒤로 마름모의 불빛들이 마치 날개처럼 펴져있다. 카운터인가? 남자의 오른쪽 손에는, 날개와 똑같은, 날카로운 에너지 칼날이 뻗어져있었다.


 "매우 큰 검을 쥐고 계시길래 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어둠에 익숙하신 분은 아닌 것 같군요."

 '또, 또 칼 얘기야?'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휘둘러 그와 대비되는 불타는 에너지 블레이드를 더욱 길게 만드는 갈색 머리의 남자. 그리고 날개를 접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 남자의 칼날만이 번쩍이며 빛났었다. 아키는 공포에 질린채, 자신의 대검을 잡은채, 허둥거리며 일어나, 대검을 그를 향해서 겨누었다.


 "오, 오지 마세요! 진짜 공격할테니까!"


 "…훗."


 남자는 웃으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두려움에 질린 아키는 오히려 손이 멋대로 움직이듯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캉, 하는 소리. 남자의 손으로부터 뻗어나온 붉은 주황빛 칼날이, 아키가 온 힘을 다해서 날린 일격을 쳐내어 막았다.


 쿵, 하고. 오히려 아키가 자신의 대검의 무게를 다루지 못해서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 아야…."


 나유빈은 단지 조용히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아키는 다시 일어나서, 이번엔 대충 한솔이 하던대로 찌르려고 해봤었다. 문제는… 보면 알겠지만 애초 아키의 무기는 그런 찌르는 동작에 적합한 것이 아니다. 유빈도 그걸 아는지, 단지 재밌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냥 느낌 가는 대로 휘두르는 여자애군.'


 "이야아아앗!"


 그리고, 아키의 칼날이 자신의 방향을 향해서 들어오는 순간에, 나유빈은 칼날 끝자락에 타오르는 에너지 블레이드를 맞대고 바로 기울여, 그대로 빠르게 올려냈다.


 "어? 어……?"


 아키는 뭐가 일어났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온 힘으로 달려들어 찌르려고 세웠던 칼날이, 그냥 휘어졌고, 자신도 유빈의 옆으로 미끄러져 넘어졌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당연히… 애초에 아키는 그걸 눈치챌 실력도, 이해할 실력도 되지 못했다. 단지 아프단 생각에 지금 위험하단 것도 까먹으며 울먹이는 표정만 짓던 아키는, 유빈이 다가와 떨어트린 자신의 대검을 잡아, 손잡이 부분을 자신에게 내밀어준 것을 보고는 놀랐다.


 "에, 어? 어?"

 "당신, 마젤란 일당은 아니군요."


 "아… 네. 맞아요. 그걸 조사하라고 지아 회장님이 린 씨랑 같이… 아차."


 이럴 때는 동료의 이름을 말해선 안 된다는 것을 갑자기 기억한 아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유빈은 가만히 서서, 왼손을 오른팔의 팔꿈치에 받치고, 오른손은 턱을 만지면서 생각했다.


 자신이 뭔가 오해가 있어서 잘못된 사람을 공격했던 것은 아니었나. 아키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아, 저…."


 남자는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아키가 다시 말했다.


 "저, 저기요."

 "네?"

 "저… 당신도 그 여기의 사교도 같은 것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분이시죠? 죄송해요, 적인 줄 알고 놀라서…."


 그러자 유빈은 조용히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괜찮습니다. 딱히 다치지도 않았으니까요."

 "그… 저, 혹시, 성함이?"

 "나 유빈입니다. 흐음… 성실하고 친절한 동사무소 직원이라고 해 둘까요?"

 "동사무소요…?"


 "요즘 일도 잘 안 하는 주제에 동사무소 직원은 무슨…."


 린의 목소리.


 그녀의 뒤에선 요요를 굴리는 소리와 함께 금발의 여성과,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하게 노려보는 흑발의 여성이 뒤이어 따라왔다.


 "어? 린 씨!"

 "최근의 육익은 꽤 잠잠했었소. 뭔가 꿍꿍이가 있나 싶었더니… 이런 곳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군."


 유빈은 린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지수는 팔짱을 끼곤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탐정 나부랭이가 우리 조직의 목적을 짐작할 수 있을리 없겠지."


 지루하게 요요를 돌리면서 놀던 여성이 실을 거두곤 보고했다. "대장. 하란 대로 얘한테 물건을 건넸어."


 '…대장?'


 아키는 유빈의 얼굴을 힐끔 보았다.


 육익이라고 불렀었던가? 린이 알 정도로 유명한 조직인 것일까, 그리고 대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라면….


 아까 전혀 손도 못 댄 아키였지만, 어쩌면 그렇게 강한 사람이니까 당연했던 것이었는지 모른다.


 "알파트릭스의 회장님께서 조사하라고 보내셨었죠?" 유빈이 고개를 돌려 린에게 물었다. 불은 붙이지 않고, 단지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술로 문 린.


 "그럴지도?"

 "하하… 딱히 숨기실 필요는 없어요. 당신이 이런 곳에서 이유도 없이 돌아다닐리가 없고, 또 당신을 고용할 사람도 딱히 많지는 않죠. 게다가 이 지역은 평소 그 회사의 순찰대가 패트롤을 도는데… 밖에는 그 마젤란 일당과 교전한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네요. 뭐, 바보가 아니면 다 알겠죠?"

 "후, 좋을 대로 생각하시오."


 반쯤은 이미 인정한 말투였다. 유빈이 말했다. "에이미 씨가 전달한 그 자료에는 이 근처에 숨은 마젤란 사교회의 거점과 구성원의 정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회장에게 전달하여 확인하라고 말해주세요."


 "……."


 주머니 안에 넣은 기기를 만지작거리던 린은, 다른 손으로 라이터를 꺼내며 고갤 끄덕였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진 모르지만, 내가 입수했던 정보들과 충돌되는 부분도 딱히 없었소. 고용주에겐 그대로 보고하리다. 하지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뭐죠?"

 "전투가 일어난 그 현장에서 이상한 소릴 듣지는 못하였소?"


 잠시간의 침묵.


 유빈은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그걸 본 린은 어깨를 으쓱하곤, 모자를 앞으로 누르며 중얼거렸다. "이상한 건 결국은 나였던가…? 알겠소, 요즘 몸을 너무 굴렸나 보군."


 그리고 몸을 돌리며 떠나는 린.


 그녀와 같이 가려는 아키의 팔을 유빈이 잡았다.


 "에…?"

 "코핀 컴퍼니 펜릴 소대의 아키 씨. 잠시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나쁜 의도는 아닌 것 같고… 아키는 그대로 서서 유빈을 쳐다봤다.


 "혹시 리플레이서 비숍이 누군지 아시나요?"

 "리플레이서? 비숍? 아뇨."


 유빈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아직 접촉하지 않은 것인가?'


 "저희 사장님은 알고 계실지도… 아님 입원하신 힐데 소대장님이나… 아차."


 적이 아니라고 안심해서 그냥 편하게 말하다 또 말실수를 한 아키. 하지만, 이번엔 오히려 그것이 도움이 되었다.


 "…힐데 소대장이 입원? 방금 힐데라고 하셨나요? 그 코핀의 S급 카운터?"

 "아, 저… 그…."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묻는 유빈에게, 결국 아키는 그렇다 말했다. '나쁜 사람들은 아닌 것 같고… 괜찮을지도.'


 하지만 그의 반응은 기묘했다. "입원이라고…? 마지막 발키리가 도대체 뭐에 당했단 거지?"


 '마지막 발키리?'


 "혹시 저희 소대장님을 아세요?"

 "아뇨. 듣기만 했어요."


 '……?'


 "제가 카운터로 각성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그런 유명한 분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을리가 없겠죠."

 "그런 것치곤 엄청 잘 싸우실 것처럼 보이는데…."

 "과분한 칭찬이네요, 하하."


 유빈은 잠시 고민하더니, 주머니에서 USB를 꺼냈다.


 "코핀 컴퍼니엔 최근 새로운 사장님이 오셨죠? 검은색 기계의…."

 "어? 어떻게 아신 거예요?"


 코핀 컴퍼니에 힐데가 있긴 하지만, 그녀 개인이 유명할 뿐이지 딱히 회사 자체에 명성이 있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여태껏 사장이었던 김하나는 별달리 지목되거나 언급되거나 그러지 않는다. 애초에 누가 이런 삼류 기업의 리더쉽에 주목하고 있겠나.


 "역시… 관리자님이 언젠가 온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이 그때군요. 테라사이드 사태가 발생한지 이제는 한 달이 되어가는 중이지만…."

 "…관리자?"

 "실례, 이쪽 얘기였어요. 아키 씨, 이걸 관리자… 아니, 사장님께 전달해드릴 수 있나요? 나유빈이 보냈다고 하시면 알 거예요. 그리고… 저는 관리자님을 방해하는 사람도 아니고, 또 이 세계의 대적자가 아니라는 말도 전해주세요."

 "아, 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아키였지만 어쨌던간 유빈은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단 느낌이 들어 그대로 그가 건네준 USB를 받았다.


 "그리고… 에이미 씨?"

 "왜, 대장?"


 손으로 빙글빙글 요요를 굴리며 놀고 있었던 에이미가, 분홍색 자켓에 요요를 집어넣으며 밝고 가벼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키 씨를 시내까지 에스코트 해주세요. 혹시 돌아가는 도중 침식체에게 공격받을지 모르니까요."

 "아, 치사해! 나 빼고 둘만의 시간을 갖겠다 이거지?"


 그러자 지수가 짜증난단 듯이 말했다.


 "장난치지 마라, 원숭이. 방금 대장이 중요한 자료를 넘겨주신 것을 보질 못했나? 너한텐 지금 중요한 임무를 맡긴 거다."

 "베~ 시끄러, 저능아 이지수."

 "…무슨 저능아냐. 내가 너보다 똑똑한데."


 그러자 에이미는 혀를 낼름거리며 머리 위로 양 팔을 뻗는, 무언가 이상한 기묘한 포즈를 취하며 외쳤다.


 "스파 이지수! 스파 이지수!"

 "이 씨발 에이미가!"


 쿨하고 진지한 모습은 사라진 채, 갑자기 엄청 흥분한 이지수. 그걸 보고 아키는 왠지 궁금해졌다.


 '스파 이지수…? 대체 그게 뭐지?'


 그때 아키는 몰랐지만… 뒤에 있던 유빈은 눈을 부라리며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신비스러운, 무언가 그런 분위기는 아예 사라져버려, 주먹을 쥔 팔이 부들거리면서 떨고 있었다.


 "시끄럽군요. 조용하게 만들어 드릴까요?"


 방금 전까지 약간 높았던 미성의 음색은 굵고 낮은 목소리로 바뀌었다. 그러자, 에이미와 이지수는 눈을 깔면서 조용히 했다.


 "죄, 죄송합니다, 대장."

 "미안…."


 그러자 나유빈은 조용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몇 초 지난 후에, 눈을 다시 뜨면서 평상시의 분위기를 다시 잡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후… 에이미 씨, 그럼 부탁해요."

 "응. 빨리 갔다올게."


 그리고 에이미는 아키를 데리고 터널 바깥쪽으로 나갔다.


 "흠……."


 피곤한듯 길게 숨을 뱉는 유빈을 보고, 진심으로 죄송한 듯 지수는 고개를 떨어트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대장. 저도 모르게 그만… 추태를 부렸군요."


 그런 진지한 태도에 유빈은 되려 옆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냐는 듯이 말했다.


 "네? 아뇨, 딱히 그걸 신경쓰고 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죠. 단지, 리플레이서 비숍이 대체 어디에 있나 그걸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


 지수는 얼굴을 붉히며 곁눈질을 했다.


 "저희가 왔을 때는 이미 사교단의 머리칼 한 올 보질 못했으니까요. 혹시 진작에 떠난 것은 아닐는지…."

 "……."


 유빈은, 자신의 불빛과 같은 에너지 검을 - 더 카타스트로피 블레이드 - 다시 손에서 뻗어 주위를 비췄다. 어둠 속의 불빛은 고요하게 폐허를 비추었다.


 '…….'


 "그만 가죠, 지수 씨."

 "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도 좋습니까?"

 "아뇨, 오늘은 많은 수확을 얻었습니다. 관리자님이 이 세계에 이제야 오셨던 걸 알았고… 지금 저희와 연이 닿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보질 못했던 어둠의 안쪽에서….

 핑크빛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눈을 번쩍이며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십 분 뒤….


 기차 역의 바깥으로 나온 둘. 유빈은 계속 팔짱을 끼며 주위를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며 둘러보았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단 것을 알아챈 지수는 딱히 대장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주위를 경계하며 발걸음을 조용히 맞추었다.

 계속 걸어, 린이 시체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던 교전지에 도착하자, 지수와 함께 조용히 걷던 유빈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로 물었다.


 "기회를 노리는 것 같군요.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을 겁니까?"


 그리고, 등 뒤로 날카로운 화염빛의 날개를 내뿜으며 천천히 눈길만 뒤로 돌렸다.


 "…리플레이서 비숍."


 그러자 놀라울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칫 소리가 들리며 바로 무언가가 빠르게 다가왔다. "눈치채지 못하다니… 적인가?!" 지수는 들고 있던 칼의 손잡이에 빠르게 오른손을 대며 적의 기척을 느끼려 애썼다.


 하지만 보이질 않았다.


 바로 그때. 도대체 어디에서 날라온지 모르는 에너지 탄환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그러면서 탓, 탓, 탓, 탓, 하는 누군가가 빨리 달리는 듯한 발소리가 공간의 전역을 조용하게 지배했다.


 "이게 리플레이서 비숍…? 대장, 위험합니다!"


 날라오는 에너지 블래스트. 하지만 그들 같은 최강급의 카운터들에겐 치명적인 데미지를 주질 못하였고, 단지 살짝 짜증나는 정도였다. 나유빈은 다각도에서 동시에 탄을 맞는 것을 느끼고는, 탄속을 조절하며 여러 위치에서 발사하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딱히 아프진 않지만… 눈 같은 곳에 맞으면 큰일나겠군요."

 "큿…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적은… 카운터의 눈에 보이지 않아. 바닥을 발로 계속 치면서 빨리 이동하고 있군. 애초에 은폐장을 쓴데다, 자신의 위치를 짐작하지 못하도록 교란하듯 총탄을 쏘고 있어. 하지만 땅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면…."


 그리고 유빈은 지수를 향해 눈을 날카롭게 뜨고는 지시했다. "지수 씨, 전격봉진을 당신 근처에만 써요, 당장!" 지수는 바로 그 말을 듣고서, 칼날을 땅에 꽂았다. 동시에, 유빈은 양팔을 교차에 가슴에 댄 채, 눈을 감고 숨을 들이켰다, 눈을 뜨면서 양쪽으로 팔을 뻗어 손바닥을 피며 외쳤다.


 "라이트닝- 어스퀘이크!"


 동시에 나유빈의 등 뒤에, 마치 붉은 색의 번개가 빠지직 거리듯 뻗어가며 타오르며, 동시에 그의 발 밑으로부터 거대한 전격 충격파들이 연속으로 바깥으로 밀어닥쳤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탓탓거리던 소리가 갑자기 없어졌다가… 투명한 여성의 형체를, 붉은 빛의 번개가 휘감듯이 지직거리며 묶어버렸다.

 지수는 땅에 박힌 칼을 붙잡고 그 전격폭풍을 견뎌내었다. 이는 그녀가 사용한 주술 전격봉진에 의해서 피해를 방지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였었나!"


 그리고, 나유빈은 오른손에서 뻗은 카타스트로피 블레이드를, 팔 자체를 크게 왼쪽 밑에서 오른쪽 위로 휘두르며 내던졌다. 붉은빛 칼날은 곧 그 여성의 형상을 향해 꽂혔다. 그리고, 더는 은폐장을 유지하지 못하는지 그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얼굴을 기계로 가린 핑크빛 머리의 소녀.


 "큭… 쿨럭, 훌륭하군요, 유빈 씨. 이런 방법을 통해 날 잡았다니… 데이터가 부족했군요."


 '…뭐지? 리플레이서 비숍… 분명히 그렇게 생겼어. 하지만 다른 세계의 신나래들과는 말투가 좀 다른데?'


 나유빈은 미묘하게 뭔가 어긋난 느낌을 받으며, 그녀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오른손으로 날린 재앙검의 칼날은 나유빈 본인이 주먹을 쥐면서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왼손을 가슴 근처까지 들었다가, 사십오도 각도로 좌하단을 향해 팔과 손바닥을 뻗었다. 다른 카타스트로피 블레이드를 왼손에 취한채, 나유빈이 가까이 가며 물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더군요. 이곳에 리플레이서나 마젤란 일당은 없던 겁니까? 대답만 제대로 하시면, 고통 없이 보내드리죠."


 그러자, 비숍이 아픔을 무시하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걸론 재미가 없겠죠. 그냥, 서로 질문과 대답을 하나씩 하는 게 어때요?"

 "무엇을 물어보려고 하나요."


 무릎 꿇은 비숍의 눈 앞까지 다가온 유빈은, 카타스트로피 블레이드로 비숍의 뺨을 밀면서 말했다. 그의 날개가 타닥, 타닥 거리면서 불타고 있었다.


 "별 것 아니예요. 그냥… 나를 잡았던 것은 훌륭했지만, 어떻게 내가 쫒아온 것을 알고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요."


 유빈은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오른쪽의 주먹을 꽉 쥐면서 대답했다. 그때에, 박혀진 카타스트로피 블레이드가 더욱 깊게 들어가며, 비숍은 입으로 피를 토했다.


 "…어차피 곧 죽게 되겠지만, 그 정도는 알고 가셔도 좋겠죠."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지수가 또박또박 걸어오며, 유빈의 옆에 서서, 왼손을 허리에 올리며 비숍을 같이 내려다보았다. 유빈이 말했다. "파워 워드… 아마 리플레이서인 당신들은 모르지만, 순수하게 신성도 침식도 아닌 마법계 능력이죠. 아마 스트레가의 마녀들이면 바로 보자마자 알 수 있었겠죠."


 "…스트레가?"

 "생각해 보니… 이 세계에는 로라도 유나도 없었네요. 쉽게 말해, 당신 눈에 보이지 않는 이형적인 에너지 구성체들을 이 지역 전체에 뿌리곤 계속 돌아다녔던 겁니다. 하루종일 여기저기 움직이며 덫을 놓았는데, 방금 전부터 계속 밟고 계시더군요."


 '과연… 그랬던가! 역시 대장이군.'


 사실, 마녀들과는 다르나 어쨌건 마법과 비슷한 성질의 주술을 쓸 수 있는 지수 또한 그걸 보긴 했다.


 하지만 지수 본인은, 유빈이 그런 의도로 룬 계열 주문인 파워 워드나, 비숍이 그걸 밟으며 유빈에게 피드백을 보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유빈은 어두운 화난 눈을 보이며 왼손의 재앙검 칼날을 비숍의 목에 대면서 물었다. "그러면 이제 제 질문에 대답해주실까요?"


 그러자 비숍은 쿡쿡 웃었다. "사교단 말씀하시는 거군요. 감탄할 정도의 싸움법을 들었던 대가 치고는 싸네요. 그 무능한 녀석들의 시체라… 응. 내가 전부 없앴어. 여기 있었던 녀석들 모두."


 유빈은 침묵한 채 생각했다. '역시 그랬었군. 리플레이서의 하청이나 다름 없는 사교회란 어느 세계에도 똑같겠지.' 그리고 말했다. "없앨 필요가 왜 있었죠? 도미닉이나 제이나의 명령입니까? 아니면 마젤란 일당 자체가 리플레이서들에게 이용가치가 없어졌거나?"


 그러자, 그 말을 듣고 비숍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놀랐다. "유빈 씨… 당신, 누구죠? 어떻게 그걸?" 하지만 이내 웃는 눈을 지으면서 비꼬듯 말했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그걸 자랑하려는 것 같지만… 아쉽게도 틀렸어."


 그때였다.


 갑자기 그들의 주위로, 기괴한 거대한 검은색 구더기 같은 형체들이 일어나며 섬짓한 소리를 내었다.


 "서서서성… 성찬을… 준비하하하하라."

 "타원위의타원위의제단단단단단호수의호수의호수의지식지식지식지식…"


 "뭐야?!" 그때 나유빈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놀람을 숨기지 못한 채 소리질렀다. "이게 뭐야?! 잠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그리고 오히려 화난듯, 아니 그것보다 매우 당황한 듯, 불타는 날개를 전력으로 뿜으며 고개를 미친듯이 돌리며 주위를 보았다. "대체 이게 무슨 의미야?! 뭐지? 아니, 하지만 어째서?!"


 '대장… 왜 이렇게 당황하시는 거지? 그냥 별 것 아닌 변종 침식체들에 불과해 보이는데?'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덜 알았던 지수가, 더 많이 아는 유빈에 비해서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직 유빈은 마왕 가아셰블라그에 대해 설명하질 않았었다. 당연히, 지수의 눈에는 약간 괴상한 해괴한 괴물이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유빈은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어 하며 미친듯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대체 뭐지? 이게 뭐야?'


 '리플레이서는 에델하고 어떤 연관조차 없었을텐데?! 아니, 그것보다 이 몇 년 동안, 에델과 그 학회는 유럽에만 있었어!'


 '아니, 하지만 이 세계의 도미닉이 마왕들과 손을 잡아서 현실세계를 침공한 것이었다면? 신생관리국이 그렇게나 쉽게 무너졌던 것도 그러면 설명 돼. 하지만… 하지만 그것도 이상해. 여태까지 로스트 쉽들을 떨어트리면서 리플레이서만 움직였고, 어떤 마왕들도, 그들의 하수인도 전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질 않았어!'


 '게다가 그것만 가지고서는 지금 에델의 하수인들이 리플레이서 비숍을 공격하질 않으면서 따른다는 것을 전혀 설명할 수 없어!'


 '빌어먹을, 만일 마왕들 중 누군가가 리플레이서들과 협력하고 있다면, 다른 세계에서 봤던 리플레이서들에 비해 지금 이 세계의 리플레이서가 얼마나 강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아하하하하!" 방금까지 잘난척을 하던 나유빈이 그렇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선 매우 만족스러운 듯, 리플레이서 비숍은 웃어제꼈다. 그 모습에 당혹감과 불안감을 감추질 못하는 나유빈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설명하세요, 비숍! 이게 다 뭐죠?"


 그러자, 갑자기 비숍의 발 밑에서 심연의 저편과 같은 어둠이 자라났고, 비숍은 거기에 삼켜지듯 점점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제가 설명해야만 할까요? 유빈 씨는 똑똑하니까 스스로 알 수 있지 않을까?"


 화가 난 유빈은 소리치며 주먹을 쥔 오른손을 그대로 허공에 밀어넣었다. "도망칠 수 있을 거 같아?!" 하지만, 비숍은 이미 이곳에서 안전하게 탈출해버렸다. 곧, 나유빈의 오른손에 다시 카타스트로피 블레이드가 나타나졌다.


 "대, 대장…!"


 정체모를 불안함을 떨쳐내지 못한 채로, 나유빈은 눈동자를 검은 괴물들에 돌리면서 중얼거렸다.


 "이것들은 작고 약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더욱 거대하고 위협적인 것입니다. 지수 씨, 일단 저것들을 처치해버리죠. 어쩌면 나중에 관리자님이 저희에게 설명해주실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나유빈은 양 손에 재앙검의 칼날을 만든 채로, 붉게 타오르는 날개를 펼치며 이해하지 못할 혼돈들에게 달려들었다.



 .

 .

 .



 브라운 락 캐니언 상공, 하얀 구름의 위에 떠있는 코핀 함은 마치 천상까지 걸어오른 사람들이 사는 집과 같은 느낌까지 줬다. 다만 그러한 낭만적인 감상에 취할 틈도 없었는데, 관리자가 카린들을 구출했던 직후, 잠시나마 짧은 재정비를 거쳐 다시 작전으로 돌입해야했기 때문이다.

 인원들은 원형의 탁자에 둘러섰다. 관리국 타이탄, 한솔, 도로시, 허수아, 리온, 카린, 에디, 찰리, 제시카. 탁자 위엔 목표 건물의 내부 지도가 있었다.


 관리자가 말한 작전이란 그냥 간단했다. 자신이 정면에서 제프티 바이오테크를 포격하고 도발하며 내부 병력들을 유인하면, 카린들이 하수도를 통해 내부까지 잠입하여 임무를 수행할 것. 한솔과 도로시와 허수아와 리온은 최우선적으로 내부의 인원을 구출할 것이며, 카린들은 윌버의 사살을 목적으로 행동한다.


 건물 내부에 있는 병력은 대충 침식체 혹은 실험체 종류만 세도 사백은 될 것으로 추정. 정확하게 알 순 없었지만, 제3종 침식체가 다섯 정도 있을 거라 고려된다. 나머지는 한솔이나 카린 등이 제압할 수 있는 제2종 이하 침식체들이니 작전 수행시에 딱히 문제점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


 타이탄은 짧게 브리핑을 마쳤지만… 한솔이 제일 먼저 의문을 제기했다.


 "뭔가?"

 "사장님이 정면에서 적을 공격하며 유인한다 하셨는데, 만일 제3종 침식체들이 끝까지 나오질 않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현실적으로 저도 카린 씨도 내부에서 제3종 침식체를 마주치면 쉽게 이기질 못할 거예요."

 "그러면 내가 건물 내부에 들어가 전부 죽이는 게 되겠지."

 "……."


 "제프티는 인체실험을 비롯해서, 상위 종의 침식체를 인공적인 힘으로 만드는 행위를 하고 있네. 키메라계, 슬라임계, 케르베로스계… 셀 수 없이 많아. 다만 단지 실험적인 단계이며, 지금 볼 수 있는 침식체의 파장만을 체크해도 제3종 이상의 건 없었지. 결국, 내가 밖에서 계속 공격을 한다면 늦던 빠르던 전부 함락될 거고."

 "그렇다면, 그냥 처음부터 안전하게 모두 바깥에서 공성을 거는 게 좋지 않은지…?"

 "아니, 윌버란 남자는 자신이 위급하면 혼자 도망친다거나 혹은 아이들을 인질로 삼는 자일세. 최악의 경우엔 신경쓰지 않고 자폭까지 할 남자니까. 자네들이 몰래 잠입해서 미리 그의 움직임을 봉쇄하지 않는다면 안 돼."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던 도로시가 밑에 비춰지는 건물을 보면서 물었다.


 "그 윌버란 사람, 정말로 그런 쓰레기야?"


 "네." 카린이 이빨을 갈면서 말했다. "사장님이 말씀하신 것은 놀랄만큼 정확해요. 그 남자를 정말 잘 알고 계시군요. 정계와 재계에 로비를 하면서, 남을 배신하고 기만하며 여기까지 온 자…. 불리해지면, 말하신 셋 중 하나는 반드시 하겠죠."


 "대령은 찬성한다는 걸로 알아도 되겠나?"

 "아뇨… 잠깐…. 코핀 함은 그냥 바위 산의 뒤에 숨겼다 필요할 때 저격 혹은 추격 목적으로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왜지?"


 "만일 사장님께서 적을 공격하시고, 저희가 내부로 진입했을 때, 윌버가 헬기를 통해 탈출할 경우엔…."

 "그게 걱정되면, 목표물이 탑승한 항공기를 함선으로 추적해 격추할 것을 약속하겠네. 나의 기체에서 쏠 수 있는 탄약들의 수는 제한됬어. 나 스스로가 코핀 함을 끼고, 멀리에서 계속 탄을 쏟아부은 뒤에 바로 함으로 올라타 장전해 내려와 다시 포격하는 형식으로 싸우려고 하네."

 "…그렇다면 이의 없습니다."


 자신이 죽어도 윌버는 반드시 없애버리고야 말겠다는 칠흑의 의지를 뿜어내는 카린. 성격이 둔한 찰리를 빼고, 에디나 제시카… 심지어는 한솔조차 대충 복수를 원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무엇보다 이를 걱정하는 건 관리자 본인이었다. '윌버와 카린을 트레이드하는 건 전혀 내키질 않는군. 일단 그렇지 않게 막을 생각이기는 하나….' 어쨌던간, 이대로 전투를 시작하기로 결정했었다. 외부공격은 관리자의 타이탄이, 내부침입은 한솔의 지휘를 받는 도로시들하고 카린의 지휘를 받는 에디들.


 사십 분 뒤….


 브라운 락 캐니언, 검은색 타이탄이 덜컹덜컹 거리며 움직이고 있었고, 바로 위엔 코핀 함이 관리자의 컨트롤을 받는 채로 떠있었다. 지금 시간이면 카린들은 이미 도착했겠지. 관리자는 그냥 주저없이 타이탄의 포를 쏴갈겼다.

 쾅, 하고 포탄이 건물에 맞는 소리가 시원하게 울려펴져, 타이탄은 다시 캐논을 쏘고, 그리고 움직이며 다시 쏘았었다. 처음 카린들이 고물 자동차를 타고 왔던 때와 달리, 마치 공성병기가 성을 부수는 그림이 나왔다.


 잠시 뒤에, 바닥에서 저글링과 같이 땅에 숨어있던 침식체가 꿈틀거리면서 일어나며 타이탄을 향해 달려왔다.


 '…맞아. 우리가 조우할 당시 어떻게 그런 상황이 됬는지 물어보진 않았는데, 카린들은 저것들에게 당했겠군. 아마 걸어 가던 도중, 혹은 차로 타고 가던 도중, 저렇게 기습을 받았겠지.'


 관리자는 시시하단 듯이 타이탄의 부스터를 통해 공중으로 치솟은 뒤, 함선 위로부터 미사일을 흩뿌리고, 함선에서 미사일을 바로 장전하고 다시 발사했다. 하는 짓이 폭격기랑 똑같았다. 몇 분 되지 않아, 압도적인 화력으로 녹아버린 정문쪽의 제1종 침식체들.


 그러자, 건물에서 비둘기 같은 날개를 펄럭이며 다가오는 거대한 침식체들. 아마 함을 요격하기 위해 보냈었던 것이겠지. 관리자는 바로 올림피안 기체를 땅에다 떨어트려놓고, 코핀 함은 전속으로 뒤로 빼내면서, 미사일을 공중에다 흩뿌리며 탄막을 치고는, 그때까지 계속 코핀 함만 향해 날아가던 비행체를 조준하며 캐논으로 쏴버렸다.


 키에엑! 하면서 떨어지는 비행체. 비행체가 네 기 정도 남았을 때, 갑자기 건물의 정면에서부터 제3종 침식체 다섯 마리가 나타났다. "진짜 읽기 쉽군…." 관리자는 중얼거리면서 미사일을 전부 발사하며 남은 공중 침식체를 전부 떨어트리고는, 뒤로 돌며 느릿하게 접근하는 거대한 침식체를 마주봤다.


 "평상시에 진짜 전쟁이란 무엇인지 알려 하지 않고, 그냥 강한 괴물들을 만들어서 던진다면 이길 거라 생각하니 그런 거다."


 딱히 윌버가 듣질 않는 것을 알고 있었어도, 관리자는 그냥 혼잣말을 하며 캐논을 침식체의 다리를 향해 조준했다. 쾅! 하고 다리를 맞아서 넘어진 그것. "만일 내가 당신이었다면, 제3종 침식체를 먼저 보내놓고, 비행체는 정면에서 일렬로서 처박지는 않고, 좌익과 우익을 가로질러 지나치듯 움직였다 함을 감싸듯이 공격했었겠지. 그렇다면 올림피안 주피터는 함에 들러붙는 침식체를 향해 미사일을 쏘질 못했었을테고, 캐논조차 쓰기 어려웠을테니."


 그리고 관리자는 무표정한 눈으로 딸깍거리면서, 관리국 타이탄 머신을 돌리며 다른 침식체의 다리를 쏴맞췄다. 적에게 설교하는 듯한 어투의 혼잣말은 계속됬다. 아마 본인에겐 그게 재밌어서 계속 중얼거리는 것이겠지만.


 "다만 기동력이 높은 비행체를 앞서 보내놓고, 이후 기동력이 낮은 거대 침식체를 뒤따라서 보내니까 결국 각개격파 당한다는 거다. 이런 수준이면 네가 제4종 침식체까지 갖고 있었건 아니건, 너는 질 수 밖에 없었겠지."


 제3종 침식체 다섯 마리 모두를 크리플링시킨 관리자. 이젠 단지 오른손으로 턱으 괴건, 단지 왼손으로 타이탄을 뒤로 후퇴시키면서 눈을 향해 포탄을 쏠 뿐이다. 애초에 관리자의 타이탄은 퓨처앳워 타이탄과 비교해 기체 내구도와 기동성이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우월하여 3종 침식체로 이길 가능성이 희박한 매치였지만, 이젠 아예 후진만 하며 탄을 쏘는 기체를 따라잡을 수가 없는 일방적인 전투로서 변했다.


 "어느 세계이건, 윌버는 야심만 많았지." 그리고, 검은색 타이탄의 캐논이 다시 쾅! 하고 울렸다. 탄을 보급하기 위해, 코핀함까지 부스팅을 하며 올라가는 올림피안. 벌써 한 마리 제3종 침식체가 박살났다.


 한편 카린들은….


 지하 하수도를 통해 진입하여, 아이들이 갇힌 구역의 벽을 폭탄으로 부수고는 내부까지 들어오는 것에 성공한 한솔들. 들어오자마자 경고음이 울리면서 아이들이 갇힌 문이 봉쇄되었지만, 리온이 토토를 사용해 갉아먹으면서 안전하게 열어냈다.


 "응? 언니들 뭐야?"

 "벌써 나가도 되는 거야? 오늘은 방 안에 있으라고 했었는데~"


 전부 진짜 어린애들이었다.


 "아인, 츠바이, 드라이, 피어… 이런 유아들을 두고 대체 뭔 짓거릴 하는 거야?" 도로시는 금발의 머리칼을 가진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게다가 이름을 무슨 실험체처럼 대충 짓고는 병아리들처럼 가두고…."


 머리 위에 ' ……. ' 표시를 띄우며 조용히 말하는 허수아. "그래도, 이제 우리가 구하긴 했어." 도로시는 머리칼을 뒤로 넘기면서 말했다. "일단 나가는 일만 남았네. 한솔, 여기에 있는 게 전부 맞지?"


 리온이 가진 검을 보고서 무서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재밌는 것을 본 듯이 꺄꺄 거리면서 만지려고 하는 아이들과, 위험하니 손대지 말라면서 자꾸 이리저리 감추려고 하는 리온. 하지만, 아인과 츠바이가 이빨을 만져도 토토의 눈은 웃으며 가만히 있었다. 그러면서도 숫자를 세던 리온이 말했다. "잠깐, 저… 한솔 씨, 사장님이 말씀하신 정보와 일치하지만, 루시드란 사람이 보이지가 않아요."


 한솔은 검을 꽉 쥐고 말했다. "나는 카린 씨들하고 좀 더 같이 다니면서 찾아볼 게. 너희들은 왔던 길로 되돌아가 빠져나간 뒤에, 아이들을 데리고 약속지점에서 대기해."


 그러자 도로시가 말했다. "잠깐, 그 루시드란 아이를 찾는다면 나도 도와줄게. 나는 빠르니까 걔가 어딨는지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한솔이 단호히 막았다. "안 돼, 빨리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 브라운 락 캐니언 일대엔 아직 침식체가 있을지도 몰라. 허수아와 리온은 아인들을 데리고 들키지 않도록 조심히 도망치고, 도로시는 빨리 움직일 수 있으니 일행보다 먼저 앞서가며 위험한 게 있는지 없는지 지속적으로 살펴봐."


 "하지만 그 루시드란 아이를 구하지 못한다면…." 한솔은 끊듯이 대답했다. "찾아볼게." 도로시는 그 이상으로 묻진 않았다. "알았어. 그 윌버란 녀석을 혼내줘." 그러고서, 도로시는 먼저 바깥으로 달려갔고, 허수아가 제일 앞에, 아이들이 중간, 리온이 제일 뒤에 서면서, 아이들도 천천히 그곳에서 나갔다.


 카린은 진지한 눈으로 소녀들이 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굳은 표정을 짓는 카린을 보고서 에디가 말했다. "딸아이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군. 딸을 가진 아빠로서 이런 걸 보면 좋은 느낌은 들지 않아." 카린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여기 오기 전까지는, 단지 복수만을 원했어요."


 "사실은 알고 있었네."

 "네?"

 "카린 씨는 솔직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라, 눈동자를 보면 읽을 수가 있어."


 그러자 제시카도 말했다. "무슨 사연인진 모르지만, 당신 우릴 만날 때부터 쭉 그랬었으니. 아예 죽길 원하는 표정으로 있었지? 이 바닥에서 일하다보니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부 보여지거든." 그러자 찰리가 눈치없이 말했다. "뭐야, 진짜? 나는 몰랐는데." 제시카가 팔꿈치로 찌르며 말했다. "넌 빠져."


 "여기 올 때…." 카린은 조용히 입을 열면서 말했다. "네, 어쩌면 그냥 죽어도 된다고… 차라리 여기서 저 녀석을 죽이고, 저도 같이 죽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증오심과 복수심에 사로잡혀 움직이는 게 정말로 좋은 것일까…. 하지만, 의도가 어떻건, 적어도 좋은 일 하나는 한 것 같네요."


 그들의 회화를 조용히 들으며 가만히 있던 한솔. 그리고, 그런 한솔을 보며 카린이 말했다. "한솔 씨, 이제 가죠. 한솔 씨는 루시드를 찾는다면 그냥 그 분을 데리고 가주세요." 그리고 에디와 제시카와 찰리를 차례로 보면서 또 말했다. "그리고 용병 분들도… 수고하셨어요. 루시드를 찾는다면 한솔 씨랑 같이 나가서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그러자 찰리가 말했다. "잠깐, 그래도 괜찮아? 윌버란 녀석을 박살내고 싶다고 말했잖아?" 그러자 카린은 창 밖을 보며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걸어가 창 밖으로 관리자가 타이탄을 사용해서 제3종 침식체를 전부 죽여놓고, 나머지 몰려드는 침식체들을 박살내며 날뛰는 모습을 본 카린이 말했다.


 "딱히 제 눈으로 보질 않아도, 악은 결국 누군가에게 심판 받는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관리자를 이곳에서 만난 것은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하지만 그의 약속을 받아냈던 카린은, 이제 어찌됬건 괜찮다며, 모두 끝났다는 느낌으로, 서글픈 눈을 하면서 라이플을 장전했다.


 찰리가 팔짱을 낀 채로 그런 카린을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저러나? 남자가 그러는 건 봤어도 여자가 그러는 건 본 적이 없는데….' 하지만 예리한 건지 둔감한 건지, 찰리는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을 털었다. '모르겠군. 뭐, 내가 여자 마음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몇 분 전에….


 타이탄이 나타났던 직후부터 잘못된 판단만 거듭하며 계속 실패했던 윌버는 부하들에게 화내며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다가, 제3종 침식체들이 전부 각부를 다치며 아예 쫓지도 못하는 걸 보고는 셰나에게 전화를 걸며 자신을 구하기 위해 당장 오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자 옆의 부관이 물었다.


 "저, 코너님. 지금이라도 헬기에 타고 대피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윌버가 히스테릭하게 성질을 부리면서 소리질렀다. "너 이 자식, 바보냐? 아니면 카린 녀석의 스파이야? 내가 저능아로 보이냐? 아까 저 로봇 움직이는 거 못 봤어? 지금 내가 느린 헬기타고 도망치면 전함에 타서 미사일을 미친듯이 쏴대는 저 녀석한테서 도망칠 수 있을 거 같아?"


 사실 윌버가 오판을 엄청 하긴 했어도 그 말 자체는 틀리진 않았다.


 부관은 단지 아무 말도 하지를 못했다. 그러자, 리플레이서 병사가 급하게 달려오며 보고했다. "코너 님, 테스트 서브젝트 룸으로 침입자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윌버는 당황하며 소리쳤다. "뭐? 지금? 이럴 때? 잠깐, 누구야?! 야! 뭐해?! 카메라 돌려봐!!!"


 카메라엔 카린들과 다른 용병들이 비춰졌다. 윌버는 오직 카린만 알아볼 수 있었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매우 혼란스러워했다.


 '뭐지? 뭐야 저것들? 잠깐, 아까 낮에 카린 저 미친 여자가 혼자 용병이랑 날뛰다가 저 빌어먹을 로봇이 구해줬어. 게다가 지금은 저 괴수 같은 로봇 놈이 계속 포탄을 쏘고 있고. 그러면, 왜? 뭐하러 이렇게 할 필요가 있었지? 아니, 그게 문제가 아냐. 저 괴물딱지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거지? 관리국? 델타세븐? 퓨처앳워? 대체 뭐야?! 현존하는 어떤 기술도 저런 미친 괴수를 만들어낼 수는 없을텐데?'


 '…젠장!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아니야!"


 그리고 윌버는 보고를 하러 왔었던 리플레이서 병사에게 냅다 소리지르면서 말했다. "야! 루시드 녀석 불러와! 빨리!!"


 "네!" 그리고 그렇게 달리려고 하던 도중에, 윌버가 다급히 다시 부르며 말했다. "야! 잠깐! 잠깐!! 야!!!" 그리고 달리던 길을 다시 돌아온 리플레이서. "루시드 녀석하고 나이트메어 침식체를 같이 이쪽으로 가져와. 아니, 옥상 바로 밑 격납고로 불러와!"


 누가봐도 매우 두려워서 안절부절하질 못하는 느낌이 역력한 윌버.


 '옥상 근처까지 가서… 셰나 녀석이 오면 적어도 걔랑 같이 도망칠 수 있겠지. 그때까지 저 폐품 녀석이 시간을 끌어준다면… 하, 하하하…!'


 그리고 윌버는 뒤쪽으로 가서 자폭 스위치를 눌렀다. 건물 전체에 빨간 불들이 비춰지며, 경고음이 시끄럽게 울려졌다. 그러자 부관이 당황하며 물었다. "코너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윌버는 역으로 화내며 말했다. "몰라서 물어? 어차피 망한 거 그냥 터트려야지! 야, 십 분 남았어! 그냥 도망치면 살 수 있을테니 그냥 집어치고 알아서 나가라고!"


 다음에 그냥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진짜 무능한 너희들에겐 질려버렸다, 방금 내가 자폭 스위치를 눌렀다! 십 분 남았으니까 살고 싶으면 알아서 도망쳐! 이상!" 패닉에 빠져서 다들 지휘실을 나가 계단 밑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오히려 윌버는 매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그래야지. 저 쓰레기들이 멍청한 카린 녀석이 올라오는 시간을 좀 끌어줄 수 있을지도. …음?' 그런 생각을 하다 다른 쪽의 모니터를 보는 윌버. 루시드와 침식체를 말한대로 격납고에 불러놓고, 급하게 혼자서 내려가는 리플레이서 병사가 보였다. '…아니, 그냥 지나치게 해도 상관없겠군. 루시드 녀석은 방금 격납고에 왔으니까.' 그렇게, 윌버는 방금 전의 태도와는 달리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 위를 밟아 올라갔다.


 방금 말했었던 윌버의 메세지는, 사방으로 리플레이서와 침식체를 향해 총을 쏘던 카린들도 들려졌다. 문을 열 때나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자신의 몸을 방패로 적의 총탄을 맞으면서 돌격하는 한솔에, 카린이 바로 뒤따라 엄호사격을, 그리고 에디와 찰리는 끝에서 바짝 따라오며 후방에서 적이 접근하는지 주의하며 계속 경계했다.

 제시카는 일행의 딱 중간에 서서, 카린이 다 쏜 총을 받는 동시에 자신의 총을 주면서, 자신은 방금 받았던 총을 장전하며, 카린이 계속 총을 쏠 수 있도록 어시스트를 했었다.


 '이 전투감각… 마치 델타세븐에 있던 때와 비슷하게 느껴져. 잠깐… 음?'


 가장 효과적인 효율적인 진형을 추구하며 고집하는 싸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 카린은 모니터 저편에 비춰진, 연보라빛 머리의 착해보이는 여자에 눈길을 돌렸다. 윌버가 침식체를 그 사이에 두고 권총을 그녀의 머리에 대며 계속 소리지르고 있다. 카린은 그걸 보면서 바로 짐작했다.


 "한솔 씨, 저길 봐요, 아무래도 저 사람이 루시드 같아요!"


 마지막 침식체를 찌르며 한솔은 카린이 가리키는 모니터를 보았다. 격납고에 있는 윌버와 여성. "사장님이 말씀하신대로 연보라빛 머리… 루시드 같긴 한데, 어린 소녀가 아니었군요." 하지만 어찌되던 상관없다는 듯이, 손목을 풀듯이 검을 훅 휘두르고는, 카린을 향해 말했다. "어찌됬건, 지금 빨리 구하러 가죠. 바로 위니까!"

 카린은 스나이퍼 라이플로 교체하며 대답했다. "네! 앞장 서세요!"


 키엑, 키엑 거리면서 죽는 소리를 내던 침식체들은 조용해졌고, 한솔들은 계단을 밟으며 빠르게 올라갔다.


 위층에서 이를 듣고 있던 윌버는 패닉에 빠져서 발작하듯 루시드를 향해 소리지르고 있었다.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는 침식체들이 죽고, 달리는 인간들의 발소리가 들리자 더욱 겁에 질리는 윌버.

 윌버는 아무것도 하질 않는 침식체 나이트메어를 옆에 두고서 루시드에게 소리를 질렀다.


 "뭐야?! 도대체 뭐가 문제야! 야, 빨리 이 녀석을 변신시켜봐!"

 "이쯤되면 코너님도 아실 거예요, 저는… 할 수 없어요."

 "이 빌어먹을 쓰레기가!!!"


 윌버는 머리에 갖다댄 총을 쏘지는 않았고, 그냥 손으로 루시드를 밀쳤다. 쿠당, 소리를 내며 땅에 앉은 루시드. 하지만, 그 나이트메어라고 불린 침식체는 단지 구름처럼 부정형의 형상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으며 딱히 어떤 변화도 일어나질 않았었다.


 사실 윌버가 이런 짓까지 하는 이유는 달리 있었다. 브라운 락 캐니언 근처의 침식체 실험실… 원래 목적은 바로 리플레이서의 적에 쓰기 위한 인공적인 침식체를 만들어내려고 했던 곳이었다. 그 중, 카운터의 정신하고 감응하는 침식체의 종을 발견하여, 그들의 내면적 공포를 구현해 재구성하는 개체까지 창조했었던 것.

 분명 이론상으로는 매우 강력할지 모르지만, 실전에서 사용하기에는 엄청 많은 문제점이 발견됬다. 첫째는, 당연하게도 항상 일정한 전투력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 둘째는, 카운터에만 반응한다는 것. 그렇기에 침식체 나이트메어는 온순하며 조종하기 쉽다는 장점이 무색하게 실전성은 딱히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망할… 내가 카운터였다면, 오히려 쟤들을 전부 죽여버렸을지도 모르는데."


 완전 무능력자는 아니었는지, 윌버는 자신이 공포로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었다. 다만, 이런 상황에도 딱히 절망과 분노에 사로잡히기 보다, 자신을 불쌍하게 쳐다보는 루시드를 보면서 윌버는 갑자기 화가 쏠렸다. "뭘 봐! 아니, 너 진짜,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그리고 윌버는 루시드의 멱살을 잡으며 총구를 이마에 대었다. "너 말야, 뭐가 문젠데? 내가 그냥 쟤들한테 죽는 걸 보고 싶어? 여태까지 우리가 널 얼마나 많이 괴롭혔는데, 이제와서 무서운 게 없다고? 얘 좀 변신시켜 보라니까!" 분명 협박을 하는 것은 윌버인데 오히려 간절다고 다급했던 것은 그였다. 역설적인 광경.

 사실 윌버는 딱히 루시드에게 어떤 감정이 있었다기보단 그냥 카운터인 루시드가, 침식체 나이트메어의 모든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인공적인 공포를 만들어내길 원했던 것이었다. 다만 그마저도 귀찮아서 여태 실험 체크조차 제대로 하질 않으며 다른 담당 과학자들에게 맡겼었다가 이제와서 불러냈으니.


 "…인간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것에는 큰 공포를 느끼질 못해요. 저에게는 코너 님도, 이 아이도 딱히…."

 "아니, 그딴 말은 됬다니까! 아… 야, 쟤들 오잖아! 진짜 망했네 이거!!!"


 윌버는 이 순간에도 담담하게 설교조의 철학적인 말을 들으면서 진짜 답답하다는 듯이, 사방을 향해 권총을 쏘았다. 그때, 카운터가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서 침식체 나이트메어가 계단쪽을 향해 반응했다. 곧, 한솔이 문을 부수면서 나타났다.


 "찾았다! 네놈의 악행도 여기까지다, 윌버 웨이틀리!" 갑자기 기사 같은 기분에 취했는지 그런 태도로 말을 하면서 검을 바로잡는 한솔. 근데 이때까지 그가 보여줬던 쓸만한 모습인 때문인지, 딱히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올라온 카린과 에디들. 그 모습을 보자, 윌버는 새하얗게 얼굴이 질리며, 루시드의 목을 잡고서 머리에 권총을 대었다. "와, 왔다. 왔다, 왔다! 죽어, 야! 여기 오면 얘를 쏴버릴 거야! 쏜다고! 알겠지? 나 방금 전에 네들이 그 실험체 애들 구하는 거 봤어! 얘도 너희들한텐 인질이야, 얘도! 오지마! 오면 죽인다!"


 횡설수설하며 날뛰는 윌버 대신에, 갑자기 침식체 나이트메어가 한솔을 향해 방해하는 것을 보고서 움찔거린 루시드. 한솔은 난감한, 그러면서도 적대적인 표정을 지으면서 검을 쥔 채, 다리를 움직이질 않았다.

 그러나 윌버 스스로가 본인의 긴장감을 견디질 못했었는지, 루시드의 목을 조르듯 가까이 대며 권총을 잡은 손을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폭발하듯 외쳤다. "가! 가라고! 내려가라고! 내 말 안 들려?! 쏜다! 못 쏠 거 같지? 젠장!!!"


 그리고 손가락을 당겼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질 않았다. 단지 딸깍, 딸깍 하는 소리.


 윌버는 바로 깨달았다. 방금, 자신이 홧김에 그냥 아무렇게나 권총을 쏘면서 탄을 낭비했다는 사실을. "아…." 그리고 정신이 나간듯, 권총을 잡은 손이 풀리는 듯, 마치 모든 것이 끝난듯이 허탈한 표정을 자신도 모르게 짓는 윌버.


 그리고 곧바로, 카린이 윌버의 손목을 향해서 쏘았다. 하지만 무슨 기적이었는지, 윌버의 손은 다치지 않은 채 총만 맞고서 뒤쪽으로 튕겨나가졌다. 카린은 이빨을 갈면서 중얼거렸다. "…너 같은 쓰레기는 항상 운이 좋지." 그리고 카린은 다시 장전하며, 윌버를 향해 걸어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제 끝이다, 윌버. 그 운조차 다 써버린 것 같군."


 하지만 그때, 한솔과 루시드가 동시에 소리질렀다. ""멈춰요!""


 항상 긴장을 풀질 않는 카린은 그 소리를 듣고 걸음을 바로 멈췄다. 그리고 놀란듯 물었다. "네? 잠깐, 왜요? 아니… 저건?"


 방금 전에 한솔을 보고서 마치 슬라임과 같이, 몸 전체를 꾸물꾸물 거리는 이상한 침식체. 그걸 보면서 한솔은 무언가 매우 불길한 느낌이 들어, 팔을 오른쪽으로 뻗어 카린이 섣불리 접근하지 말도록 막았다. 또한, 루시드가 말했다. "이 아이는, 나이트메어라고 불리는 침식체예요. 카운터의 내면적인 공포를 구현화하는 위험한 능력을 갖고 있어요!"


 반쯤 정신이 나간 채 얼빵하게 쳐다보고 있던 윌버는, 갑자기 자신의 승기가 보이자, 시계를 보고는 미친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 아하하하하! 겁쟁이 녀석들! 너흰 이제 끝났어!"

 그러자 그 얼굴을 보면서 엄청나게 화난 카린이 윌버의 면상을 향해 라이플을 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을 예상했단듯이 루시드의 가방을 낚아채 그걸로 얼굴을 막은 윌버. 그리고는 윌버는 혼자 중얼거리듯 소리쳤다. "너희들도 당연히 카운터인데다가, 당연히 무서운 것이 있겠지! 그걸 몰랐었네! 특히 너, 카린 말야! 마리아랑 제이크가 죽었을 때 혼자 간신히 살아 도망쳤었지!"


 "이… 천박한 쓰레기가!" 카린은 분노해 총을 쏘려고 했지만, 윌버가 바로 루시드 뒤에 숨어버렸다. 떨리는 손으로 정밀한 조준을 할 수 없었던 카린은 스스로도 쏠 수 없단 것을 자각했다. 자신의 이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방아쇠를 눌러버리고 실수로 루시드를 맞추게 된다면, 분명히 나중에 후회할 것이라고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에.


 "그러면, 네 년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뭔지, 나도 구경해 볼까? 음? 하하하하핫!!!"


 윌버는 루시드를 방패로 삼아, 놀리면서 좌우로 춤을 추듯이 스텝을 밟기까지 했었다. 한솔은 윌버를 한심하게 쳐다보면서도, 점점 여자의 모습으로 변하는 나이트메어를 보면서 침을 삼켰다. 그리고 그것은….


 솔리키타티오.


 그것을 보는 순간에, 한솔은 갑자기 심장이 멎는듯 했었다. 그때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를 못한, 그리고, 거의 죽을 뻔했을 때 자신의 스승님이 부상을 각오하면서 구해주었던 그 상대. 검을 쥔 손이 떨렸다.

 카린은 그걸 보고서 되려 상황을 이해하질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나이트메어는 한솔의 내면을 읽었지 카린의 내면을 읽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까 전부터 윌버가 시끄럽게 도발하며 자신의 내면의 공포를 꺼낸다고 했었기에 그 문맥에 잡혔던 카린은, 늦게서야 알아쳤다.


 '아…! 이건 제가 아니라, 한솔 씨의 공포군요. 이 정도의 실력이면 제가 알지도 못하는 강한 침식체와 싸워봤을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윌버만은 아직도 그게 카린이 무서워하는 내면을 실체화한 것이라고 믿으며, 일부러 짜증나는 웃음을 내면서 도발했다. "뭐야, 카린? 이게 네가 무서워하는 거였나? 진짜 웃기는군! 나는 네 멍청한 면상이 더 무서운데 말야! 아무튼 좋은 구경을 했다, 나는 이쯤에서 실례하도록 하지!" 그런 말을 하며 뒷걸음질치던 윌버는, 그대로 빠르게 옥상으로 향하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도망쳤다.


 카린의 탄환은 이번에도 단지 엘레베이터의 문에 맞은 채 불발했다. '칫… 내가 또 놓치다니…! 스스로도 믿을 수가 없어….' 사실은 평상시 대로 침착하게 조준을 하려고 머리로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손이 분노에 의해서 너무 떨렸기 때문이었다. 지금 카린은 저격총을 쥐여줘도 멀리에 세워둔 깡통조차 제대로 쏴맞추지 못할 상태였다.


 한솔은 검을 제대로 고쳐쥐며 솔리키타티오로 변한 침식체 나이트메어를 쳐다봤다. 검고 붉은 십자가들을 만들어내어 자신 주위로 돌리고 있는 그 모습. 루시드가 뒤에서 외쳤다. "조심하세요,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진 모르지만, 침식체 나이트메어는 제3종이랑 동급의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 말을 듣고, 한솔은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보았다. '솔리키타티오는 제5종 침식체와 같다고 스승님이 말씀했었지. 그렇다면, 모습은 같지만 그냥 더욱 약하단 것인가?'


 자신을 향해서 곧바로 날아오는 십자가를 보고, 왼쪽 손바닥을 칼몸에 대고 칼날을 방패처럼 사용해 그걸 막아낸 한솔. '진짜다… 진짜 솔리카티오는 내가 튕겨내기도 힘든 정도였었어.' 그리고 천천히 나이트메어를 향해 다가가던 중에,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침식체 나이트메어는 카운터와 공감하여 내면의 악몽을 재현하는 존재라 했었어. 그렇다면….'


 계속해서 십자가를 날리다가, 튕겨나간 십자가에 손가락을 가리키며, 다시 한솔을 향해 찌르도록 가리키는 나이트메어. 아무리 튕겨내도 갑자기 공간 자체가 한솔을 향해 내던지는 듯 느껴졌다. 그리고, 나이트메어와 한솔과 눈이 마주쳤다. 비릿하게 웃으면서, 그것은 양 손을 어깨 위로 들어올렸다.

 순간, 단순하고 불규칙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한솔을 시험하는 십자가들이 이번에는 그의 주위를 원을 그리며 맴돌았다. 지난 번에 솔리키타티오랑 싸웠을 때와 완전히 동일한 테크닉.


 '큿… 역시!'


 사실상 체크메이트 같은 상황이었고, 예전에 일어난 그것은 다시 반복되었다. 갑자기 이런 상황에 다시 처하게 된 한솔은, 어떠한 답도 생각할 수 없었다. 곧, 정면에서 십자가가 자신을 향해서 날라왔다. 캉, 하는 소리. 칼날로 베듯이 그것을 튕겨낸 한솔은, 이번엔 뒤에서, 그리고 옆에서, 차례로 자신을 놀리듯 사방에서 계속 공격하는 십자가들과 마주해야만 했다.


 '악몽을 구현한다라….'


 그것들을 전부 치고 있을 때에, 마치 진짜 솔리키타티오처럼 하얀 머리를 가진 나이트메어가 기괴하게 비웃었다. 그건, 단지 한솔이 이전에 보았던 그것의 모습과 정말 똑같았다. 곧, 십자가가 다시 정면에서 날라왔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한솔이 그걸 쳐내려 했었을때, 바로 뒤에서 십자가가 날카롭게 자신의 등을 베었다.


 "크윽!"


 한솔은 검을 놓칠 뻔했다. 너무 불리한 상황. 사실은 솔리키타티오의 모습을 봤을 때, 이렇게 될 줄 짐작은 하고 있었다.


 "뭐, 뭐야 저 녀석… 한솔 씨는 대체 어디서 뭘 하다 온 사람이야?" 대충 여태까지 루시드가 말했었던 것을 이해하는 제시카는, 한솔이 무언가를 겁낸다는 것보다도 애초에 이런 것과 싸웠었지만 여태까지 살아있었단 사실에 경악했다. "저거, 방패로 막아도 뒤에서 공격한다면 그냥 당할 거 아냐?!" 그것은 찰리도 마찬가지였다.


 "……."


 오직 에디만 조용히 적을 바라보고 있었었다. 자신들을 코핀 컴퍼니라 불렀었던 그들에게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양 한솔… 일본인이었던가? 중국인? 아냐, 아니지, 저 이름은 한국식 작명이다. 그렇다면 그라운드 원 근처인데, 어째서 이 정도로 엄청나게 강력한 로봇하고 이런 수준 높은 검사가 있는데 여태까지 알려지지 않았었지? 같은 용병처지로서 중요한 한국계 회사의 이름은 전부 외워놓고 있었다고 자신했었는데.'


 '무엇보다 애초 강력한 적을 처치할 수 있다면, 혹은 이미 처치했었다면, 그만큼 이름값이 높아지고 유명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차례겠지. 더욱이 진짜로 이런 침식체와 직접 싸웠다고? 이겼건 졌었건, 이 수준이면 소문이 퍼지지 않을 수가 없을텐데?'


 그때, 에디의 앞에서, 카린이 저격총을 다시 장전하고 나이트메어를 향해 조준했다. '한솔 씨가 위험해요, 게다가 윌버도 언제 도망칠지 몰라, 어떻게든 해야되는데…!' 이번에 그녀가 쏜 탄환은, 정확히 침식체의 눈에 맞았다.


 "지, 지금이다!" 한솔은 눈이 멀었다 생각해, 그대로 점프하며 피하려고 했었다.


 투각, 하지만 바로 예전과 똑같이, 공중으로 점프하는 자신의 궤도를 향해서 날아오는 십자가들. 그리고 그것을 맞고 다시 땅에 떨어진 한솔. "크, 쿨럭…. 크허억…." 왼쪽 무릎을 땅에 대고, 오른손으로 검을 잡아 일어나려고 하는 한솔은, 뿌옇게 변한 안경을 집어던지고 나이트메어를 노려봤다.


 "한솔 씨, 괜찮아요?!" 카린이 다급히 물었다. 한솔은 아무런 대답도 하질 않았다. 아니, 사실 하질 못했다.


 '잠깐… 만일 이게 통한다면…!'


 그러다가 섬광처럼 한솔의 머리에 지나갔던 아이디어. 그리고, 카린을 향해 외쳤다. "카린 씨, 에디 씨들을 지켜줘요, 이 침식체가 사용하는 십자가는 매우 날카로우니까!" 그러자 카린은 다급히 말했다. "하지만 한솔 씨가…!"

 한솔은 단지 카린을 뒤로 보면서 훗, 하고 웃었다. 그리고, 발을 굴러서 먼지를 강하게 일으켰다.


 에디는 한솔의 생각했다. '응? 먼지를 일으켰군. 저렇게 해서 자신을 정확히 노리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나? 하지만….' 그리고 에디의 걱정이 사실로 변한 듯, 나이트메어는 단지 비웃듯이 한솔이 일으킨 먼지를 쳐다보다, 손을 탁 튀겼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한솔의 주위를 빠르게 돌던 십자가들은, 동시에 중앙을 향해 날라갔다.


 그때였다. 쿵! 하고 엄청난 큰 소리가 들렸었다. 다음, 먼지가 사라진 곳에는 단지 커다란 구멍만이 있었다.


 "저, 저…!"

 "설마, 저 녀석…!"


 "…한솔 씨?"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면서 그것을 멍하니 보는 침식체 나이트메어. 그리고, 바로 밑으로부터….


 바닥이 깨지며,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쇼류켄!!!!!!!"


 한솔이 오른손에 쥐었던 자신의 검을 수직으로 뻗은 채로, 뒷통수를 보이면서 날아올랐었다. 솔리키타티오의 모습을 한 나이트메어는 어퍼컷을 맞듯, 아니, 몸이 수직으로 이등분이 되어 잘리면서 밴시처럼 울며 죽음을 맞았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악----!!"


 사실, 한솔은 자신이 먼지로 시야를 가리면 아마도 자신의 주위를 돌면서 포위했던 십자가들로 난잡하게 공격한다고 예상했었다. 그래서 바로 그때에 주먹으로 땅을 쳐버려서 밑층으로 내려갔다, 다시 밑에서 올라오며 공격했던 것이었다.


 '진짜 자신의 힘으로 이기진 못하고 이런 편법을 사용하다니… 아직 나 스스로가 생각하는 진정한 기사에는 도달하지 못했어.'


 일단 그렇게 속으로 말하긴 했어도, 한솔은 마치 일본의 무사처럼 무릎을 꿇고 칼을 허리춤에 다시 차는 자세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에게 기사란 대체 뭐일까. 아무튼, 그 모습을 본 찰리와 제시카가 박수를 쳤다.


 "오, 와우! 대단한데, 형씨!"

 "내가 봤던 어떤 카운터들보다도 잘 싸웠어!"


 하지만 그런 칭찬을 들으면서도, 머쓱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돌리는 한솔이었다.


 "하, 하하…. 별 거 아니었어요."

 "그게 별 거 아니면 우리는 대체 뭐라고….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확실히 훌륭했다."


 에디도 빙긋 웃으며 똑같이 거들었다. 하지만, 솔직히 한솔은 진짜로 이것이 왠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방금 그건… 만일 솔리키타티오와 직접 싸웠던 상황이었다면 아예 통하지도 않았을거야. 아직 스스로가 부족하단 걸 부정할 수 없게 느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카린이 한솔이 던졌던 안경을 셔츠 밑자락으로 닦으면서 돌려줬다. "자요, 멋진 승부였어요." 예쁜 여자가 웃으며 자신을 칭찬해줬지만, 한솔도 그냥 덤덤한 태도로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어뇨… 이 정도야, 아직 미숙해요. 스스로도 부족함을 느끼니까." 그리고 안경을 받으며 말했다. "안경, 던져놓고 잊고있었네요. 고마워요."


 그때 루시드가 다가와서 말했다. "저… 저, 아까 들었어요. 혹시 아인이나 츠바이랑, 다른 아이들은…?"


 한솔은 버릇대로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저희 동료들이 이미 구출했어요. 저는 루시드 씨를 찾으려고 여기까지 왔었고요." 그러자, 루시드가 깡총 뛰듯 반응하며 대답했다. "아, 네! 제가 루시드 맞아요. 그런데, 여기가 폭발할 때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둘이 대화하고 있을 때, 카린이 저쪽에서 엘레베이터를 쿵 치면서 화냈다. 한솔이 놀라며 물었다. "카린 씨, 뭐죠?" 카린이 대답했다. "젠장, 엘레베이터… 이거, 작동을 안 해요. 윌버 녀석이 위에 있는데…."


 그때, 한솔이랑 얘기하던 루시드가 빨리 달려가며 말했다. "건물 내부 시설물은 오직 제프티 바이오테크 소속의 사람만 작동시킬 수 있어요, 제가 열어드릴께요!" 그리고 버튼을 눌러, 바로 엘레베이터의 문을 열었다.

 "아… 고마워요." 카린은 멋쩍은듯이 웃으며 말했다. 루시드는 단지 싱긋 웃으면서 카린을 보았다. 한솔, 카린, 에디, 찰리, 제시카, 루시드. 모두가 엘레베이터에 타자, 루시드가 카린을 향해 물었다.


 "저… 어떻게 하실 거죠? 코너 씨를 찾으러 위로 가실 건가요, 아니면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 일층으로 갈 건가요?"


 "옥상으로." 카린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루시드에게 들으라고 하던 것은 아니었고, 단지 윌버를 죽이고 싶단 생각에 그렇게 뱉듯이 말을 했었던 것이겠지. 하지만, 곧바로 자신의 입에서 뭔가 너무 까칠한 어투의 목소리가 나왔단 사실에 놀라며, 더듬으며 다시 부드러운 어조로 고쳤다. "그… 옥상으로 가주세요. 바깥에 있는 동료가 전함을 갖고 이쪽으로 올테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루시드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대답하며 옥상으로 가는 버튼을 눌렀다. "네, 그래요."


 몇 초 간의 짧은 침묵….


 찰리는 팔짱을 끼면서 루시드를 곁눈질하며 생각했다. '루시드란 애를 찾고 나가라고 했었지만,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뭐, 받은 돈만큼 일해야 하는 것이 용병이니까.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진 않고.'


 이후 그들은 윌버가 기다리고 있었던 옥상까지 올라왔다. 루시드가 카린의 옆에 서있는 것을 보고는, 윌버는 눈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루시드, 이 폐품 같은 쓰레기가… 여태까지 먹여주고 재워주고 그랬는데, 저 망할 계집애의 편을 들어?!" 루시드는 단지 고개를 떨구며 아무 말도 하질 않았다.

 윌버의 면상을 보기만 해도 화났던 카린은 그대로 권총을 윌버를 향해 조준하며 말했다. "멍청한 사람은 멍청한 말만 하는군요. 더이상 당신 목소리 듣기도 싫으니까 이제 그냥 죽어주시죠." 그리고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망설임도 없이 쐈다. 하지만….


 "안 돼, 이 남자가 하찮긴 하지만, 여기서 죽으면 우리가 곤란해져."


 갑자기 핑크빛 머리를 한, 악기를 든 여자가 잔상처럼 윌버의 앞에 나타나, 총알을 잡으며 말했다.


 "후, 후후후, 하하하하! 봐라,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 정도다, 카린!"

 "진짜 시끄럽네,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질 못하는 주제에."


 윌버는 뭔가 불만인 표정을 지었지만,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어쨌거나… 코너 씨는 내가 데려갈게. 내가 얘 말은 들어줘야 해서 말야. 짜증나지만 어쩌겠어? 개인적인 감정은 없으니까… 너무 미워하지 말아줘. 너희들은 여기서 죽어 줘야겠어."


 셰나는 그렇게 말하며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셰나를 쳐다보던 모두와, 곧 이상한 헬멧을 꺼내서 낀 윌버. 그녀의 주특기, 침식파를 연주하며 사람들을 광기의 나락에 빠트리는… 지금 카린들은 결코 이길 방법이 없는 기술.


 하지만….


 한솔들은 결국 셰나가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 알지 못했다. 왜냐면, 갑자기 그들의 뒤에서, 거대한 포탄이 슈웅, 하고 날아가며 윌버 뒤의 헬기를 터트리며 박살냈기 때문이다.


 "자, 잠깐?! 뭐야? 뭐야 저거?! 왜 저거 아직도 살아있어?!"


 그리고 셰나를 향해서 쏟아지듯 날라오는 미사일들, 셰나는 칫, 하고 띠꺼운 표정을 지으며 윌버를 한 손으로 잡고는 날아올랐다. 그녀의 연주가 끊기며, 한솔들의 앞엔 관리자의 타이탄이 쿵, 하고 착지했다.


 "저 망할 고철새끼! 야! 젠장! 대체 넌 왜 내가 그렇게까지 싫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야!!!"


 세나의 팔에 등이 잡힌 채, 헬맷을 벗고서 마치 발악을 하듯이 소리지르는 윌버. 그리고 셰나는 터진 헬기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저거… 강해보이네. 어쩔까?"


 윌버는 셰나를 보고선, 부하들을 대할 때와 다른 어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자, 빨리 도망치자. 너도 이렇겐 제대로 싸울 수 없잖아." 그러자 관리자가 타이탄을 통해 말했다. "죽어라, 윌버." 그리고 관리국 타이탄의 뒤에 실렸던 유도 미사일이 윌버와 셰나를 향해 날아올랐다.


 "흐응…."


 셰나는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입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똑바로 날아가던 미사일들이 사방으로 엉뚱한 방향으로 퍼지다가 이내 허공에서 터졌다.


 "…재머? 엘리시움 필하모닉이 그런 능력까지 갖고 있었었나?"

 "어머, 우리가 누군지 아는 거야? 윌버, 너 또 가벼운 입을 아무한테나 마구 놀렸던 거니?"

 "나, 나도 몰라…."


 어쨌건 셰나와 타이탄은 서로를 노려봤다. 그러다, 코핀 함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셰나는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의 정체를 알고도 그냥 살아 돌아갈 수 있다니, 당신도 운이 참 좋네. 기계라… 인간들은 그때부터 정말 굉장하게 진화했어. 또 보자고, 로봇 친구."


 그리고, 셰나의 양 발 끝에서 분홍빛 에너지가 타올랐다. 마치 하늘이 울릴듯이 지지직거리며 공간이 뒤틀리는듯한 그 모습. 그것은 제4종 침식체 중에서 유달리 강했던 그녀가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관리자는 함선을 향하는 셰나의 시선만 보고서도, 무엇을 할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곧 셰나가 그걸 발로 찼다. 오른쪽 발은 코핀 함을 향해서, 왼쪽 발은 카린들을 향해. 그리고 셰나는, 검지와 중지를 펴서 눈썹에 가까이 댔다가 떨어트리며 인사했다. 윌버를 잡은 채 바로 후퇴하는 셰나. 관리자는 함선으로 날라가는 에너지탄을 피하기 위해서 원격조작으로 함선의 활공 기능을 순가적으로 중지시켜, 고도를 급격히 낮췄다.


 그리고 그 거대한 함선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마치 공간을 가르는듯한 셰나의 에너지 탄은 그대로 슝하고 지나갔지만….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 이건! 우와아앗!"


 이것은 도저히 쳐낼 엄두가 나질 않았는지, 검으로 막으려고 했었던 한솔은 순간 옆으로 피했다. 그리고 건물 자체를 아예 관통해 땅까지 처박혔던 셰나의 에너지 탄. 옥상이 무너지며, 다른 모두도 전부 떨어졌다.


  "꺄아아아아악!!" 카린 또한 떨어질때 당황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때 관리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개 있었다. 셰나를 쫓아 가던지, 카린을 구할 것인지. 하늘을 날 수 있는 자신이 억지로 셰나를 쫓으면, 지금 얼터니움 리액터나 레거시 디바이스 웨폰을 장착하지 않은 올림피안 주피터의 기본형은 결국 4종급에 지나지 않기에, 셰나를 공중전에서 이길 수 있을지는 불확실한 상태이다. 그러나….


 억지로 윌버만 노리면, 어쨌건 윌버는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딱히 고민할 것은 없었다. 관리자는 애초부터 카린을 구하려고 여기까지 왔지, 윌버가 여기서 죽건 말건 딱히 신경쓸 것도 아니었으니까. 곧, 떨어지는 모두보다 더 빨리 내려가서, 길다란 캐논과 커다란 기체로 모두를 받아내며, 타이탄은 유유히 코핀까지 날아갔다.


 일 분 뒤에….


 브릿지에 서있던 모두는, 석양이 지는 가운데… 브라운 락 캐니언 뒤편에 숨어 있던 제프티 바이오테크가 여러 번 폭발을 일으키더니, 그대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다.


 찰리가 휘파람을 불면서 말했다. "휘익, 진짜 영화의 한 장면 같았어. 사장님, 당신 정말 대단한데?" 타이탄은 기익 기익 움직이며 대답했다. "별 거 아니지."


 제시카가 금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말야… 우리, 결국 그 딘 코너인가, 윌버인가, 걔를 끝내지는 못했잖아." 그러자, 에디가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그래… 안타깝지만 임무는 실패했었지. 뭐 하나 다친 곳도 없이 기적적으로 생환했지만."


 "…하지만, 전혀 쓸데없는 짓을 하진 않았다고. 적어도 불쌍하게 온갖 실험을 받던 아이들을 구했잖아." 도로시가, 왠지 실망한듯 한숨을 쉬는 어른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맞아요, 그 점은… 정말 감사드려요." 루시드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그걸 보고, 도로시가 놀라며 물었다. "잠깐, 루시드란 사람이 언니야?"


 "네, 맞는데…."

 "나보다 나이가 많네? 쟤들 구할 때는 진짜 유치원생만한 애들 밖에 없었길래 오해했어."


 그랬군요, 말하면서 카린을 쳐다보는 루시드. 무언가 아까 전부터 할 말이 있는 듯, 타이탄을 노려보고 있었다. 대화의 흐름을 따라서 처음엔 제시카, 다음엔 에디, 다음엔 도로시, 다음엔 루시드… 루시드의 눈을 따라가서 카린이 여태까지 자신을 보고 있었던 것을 그제서야 알았던 관리자였다.


 "무엇인가, 대령?"


 카린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우리는 윌버를 놓쳤어요. 사장님, 당신이 저한테 약속했었죠. 윌버는 꼭 죽이겠다고."

 "모두를… 아니, 대령 당신을 구하느라 어쩔 수 없었다."

 "알고있어요, 단지…."


 지금 듣는 사람도 있는데, 모두가 낙사할 것을 알면서도 윌버를 쫓아가서 죽이지 않았냐고 따지기엔 머뭇거린 카린. 그런 그녀의 속을 쉽게 읽었던 관리자는 마치 사람이 고개를 돌리듯, 붉은 빛을 뿜는 렌즈를 돌리며, 그리고 기체 자체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제이크도 이러길 원했겠지."

 "네?"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내가 그의 의지를 이었다고 생각해주겠나? 그는 분명, 내가 윌버를 죽여서 델타세븐의 복수를 이루는 것보다도, 차라리 떨어지는 카린 양을 구하길 원했겠지. 안 그런가?"


 사실은, 그것이 바로 카린이 어렴풋이 알면서도, 단지 누군가에게 직접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자신의 실패를 용서할 말을 누군가가 해주길 바랬던 그녀에게는… 어느새 한 결 편해진듯,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석양이 지는 창 밖을 보았다.


 "…그렇겠죠."


 그리고 결심을 한듯, 카린은 고개를 돌려 에디들을 보면서 말했다. "임무는 실패했지만, 오늘은 강력한 친구를 사귀게 됬습니다. 그냥 성공했다치고, 약속했던 돈을 계좌에다 넣어드리죠. 에디 씨, 찰리 씨, 제시카 씨."


 "오, 정말이야?" 놀란듯 기쁘게 웃는 찰리.

 "통이 크네, 군인 아가씨. 이 바닥에선 뭐가 어찌됬건 실패하면 우정이고 뭐고 그냥 파토나는 것이 일상이라." 의외라는 듯이 말하는 제시카.

 "…미안하군, 솔직히 뭐 하나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이런 호의까지 받아서. 돌아갈 때 선물을 쥐여주면 딸이 기뻐하겠어." 그리고, 다른 세계의 자신과는 달리 우울함과 심각함이 전혀 비춰지지 않는 얼굴로 대답하는 에디.


 그들을 보면서 카린이 속으로 생각했다. '대령님은 용병들을 엄청 싫어하셨지만… 그렇게 나쁘진 않은 사람들도 있었네요.' 그리고, 옆에서 가만히 있던 타이탄이 말했다.


 "혹시 저녁이라도 같이 먹고 돌아가지 않겠나?"

 "어머, 데이트 신청하시는 거예요?"


 "아니." 관리자가 정색하며 대답했다. 그걸 보고 재밌다는 듯이 카린이 웃으며 말했다. "농담, 농담. 역시 기계는 장난을 받아들이지 못하네요. 뭐, 오늘 하루 동안 너무 바깥에서 있었으니, 이제 슬슬 복귀해야 할 거 같아서요."


 그리고는, 카린은 함선을 호출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코핀 함의 옆까지 날라온 뉴 오하이오. 서로 입구를 열어 마주보는 채 같은 속도로 이동하는 두 함선. 카린을 배웅하기 위해서 모두가 뉴 오하이오를 마주보며 서있었다.


 휙, 하고 이쪽에서 점프해서 저쪽으로 건너가는 카린. 카운터이기에 그렇게 뛸 수 있었다.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서 아이들이 손을 흔들면서 외쳤다. "잘 가, 카린 언니!" 그리고, 아이들을 향해 왠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같이 흔드는 카린. "그래, 건강해야 해!"


 팔짱을 끼던 한솔도, 똑같이 팔짱을 끼며 호탕하게 웃는 찰리와 팔꿈치를 기대면서 서있던 제시카도, 그리고 벽에 기대있던 도로시나, 조용히 쳐다보던 허수아랑 리온도, 너무 신나하는 아이들을 돌보던 루시드도, 사장 옆에 진지한 얼굴로 서있는 에디도, 그리고 그 사장도… 왠지 알 수 있었다. 카린이, 여기 올 때에 비해, 왠지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단 사실을.


 이후에, 측면의 문을 닫으며 천천히 가속을 하다가, 석양의 저편으로 빠르게 움직이며 사라지는 뉴 오하이오.


 그걸 보고 있던 타이탄에게, 에디가 조용히 물었다.


 "방금 한 말은 진심이었나, 사장님?"

 "그래. 원한다면 딸까지 데리고 이곳으로 와도 좋아. 적어도 테라사이드 사태가 끝날 때까진 자네들을 고용하고 싶네."

 "우리 실력 봤었잖아? 하, 하하… 어지간히 사람이 부족했나 보군."


 타이탄은 딱히 렌즈를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내키지 않는가?"

 "전혀. 당신들과 같은 엄청나게 강한 카운터나 머신들과 같이 일할 수 있다는데 누가 마다하겠어."

 "몇 달 동안 고향을 등지고 한국까지 와야해서 싫어할 줄 알았는데."

 "평생 거기서 있을 것도 아니잖아? 물론 거기서 계속 살지는 고민되겠지. 그래도 사장님 같은 사람이… 아니, 기계가 관리하는 그런 좋은 회사면 뼈를 묻고 싶기도 하지만…. 뭐, 이 저주받을 테라사이드 사태를 무사히 끝낼 때까진 같이 잘 해보자고."


 그러자, 타이탄은 에디를 돌아보며 말했다.


 "잘 생각했네, 에디. 그리고 찰리, 제시카도. 입사를 환영하지."


 멍하니 아름답게 지는 석양을 보고 있던 둘이, 자신들의 이름을 듣자 그때서야 놀라며 말했다.


 "어, 뭐야? 에디? 방금 입사가 뭐라고?"

 "우리 코핀 컴퍼니와 계약한 거야?"


 에디가 말했다. "적어도 테라사이드 사태가 끝날 때까지다. 불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러자 찰리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 아니. 나야 좋지! 아까 떨어지던 나를 사장님이 받아줄 때 감동했다고! 크하하핫!" 그리고 제시카는 살짝 퉁명스러운 투로 말했다. "솔직히 이제 볼 일 없으니까 그냥 헤어질 줄 알았는데."


 "싫지는 않지?"

 "아니, 전혀. 성격도 능력도 좋은 사람이 같이 일하자는데 누가 걷어차?"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어!"


 관리자는 말없이 그들을 지켜보다, 아까부터 핸드폰을 계속 만지작거리던 한솔에게 말을 걸었다.


 "한솔 군, 수고했네."

 "아, 네. 네. 아뇨, 별 거 아니예요."


 사장님이 자신에게 말을 걸자, 폰을 만지던 손을 바로 멈추고 타이탄의 렌즈를 쳐다보며 말하는 한솔.


 "누구랑 연락하고 있었나?"

 "아키요. 스승님이 어떤지 물어봤습니다."

 "……."


 "그리고, 또 말하더군요. 혹시 사장님이 근처에 있다면 말을 전해달라고…."


 뒤에 한솔이 했던 말은, 가만히 앉아서 커피를 마시던 관리자를 놀라게 했었다.


 "-나유빈."


 "뭐?"


 "나유빈이라는 남자와 만났다고 하더군요. 그가 사장님을 관리자님이라고 부르면서… USB를 전해줬다고."


 나유빈.


 그렇지, 그도 여기에 있었나. 어떤 세계였던 자주 보던 남자였다. 그러고 보니 힐데한테서 그의 이름을 듣진 못했다. 이수연이 즉사할 땐 대체 나유빈은 어디 있었는지, 아니면 유빈도 힐데의 제자였는지. 지금 생각하면 - 만일 알고 있었다면 나유빈에 대해서 진작에 언급하지 않았을까?


 그런 나유빈이 지금 여기에 있다. 자신하고 접선하길 원하면서.


 '이건… 여기서도 나유빈은 리플레이서를 돕고 있나? 아니면….'


 하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딱히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게 생각해, 타이탄은 한솔에게 말했다.


 "알겠네. 돌아가서 보고를 받도록 하지."


 먼저 에디들의 사무실에 가서 짐을 전부다 챙기고, 그리고 코핀 컴퍼니로 돌아오는 걸로. 밥은 차라리 함에서 먹는 것이 나을지도 몰라. 또 샌드위치 먹으면 질릴테니, 이번에는 에디들이 짐을 챙길 동안에 다른 음식을 사와서 이동하는 중에 함 위에서 대충 저녁을 먹으면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모두와 함께 코핀 함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코핀 함도 또한, 조용히 측면의 문을 닫고서, 황금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석양을 향해 조용하고 경쾌하게 나아갔다.


 몇 시간 뒤….


 김하나가 아키에게 USB를 전달 받아, 사장실에 놓아뒀고, 그걸 이제 덜컹거리면서 들어와서 내려보는 관리자의 올림피안. 아키가 한솔을 통해서 추가로 전달한 내용은….


 유빈은 이 세계의 대적자가 아니며, 또한 자신을 적대하지도 않는다.


 '굳이 그렇게 말하면 정말 사실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쨌건, 결국 본인이 말하길 원하는 것을 들어보고 이후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느꼈던 관리자는 나유빈의 USB를 컴퓨터에 꽂아 연결했다. '설마 바이러스가 있거나 하지는 않겠지…'


 '그런 장난을 할리가.' 잠시 몇 초 지난 뒤에, 관리자는 봤다. USB에는 단지 영상파일 하나만 있었다. 왜지? 무언가 기묘한, 이상한 느낌을 받으며, 관리자는 그걸 실행했다.


 모니터에 비춰지는 영상.


 그건, 이 세계의 원래 관리자가 떠났어도 혼자 남겨진 예비용 마더 컴퓨터에 의해 창설된 신생관리국의 수뇌부 기지의 모습. 지금은 이 관리자 본인도 확인했듯 현재는 파멸된 폐허에 지나지 않지만, 어쨌던간 이전 관리자가 떠났었던 직후 신생관리국이 그것에 의해서 설립되어짐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삑삑 소리를 내는 컴퓨터들 가운데, 지금 관리자가 있는 비밀기지에도 쓰고 있는 청소로봇들과 경비로봇들이 보였었다. 그냥 계획대로 되어졌던 모습. 다만… 몇 분 뒤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음…?"


 책상에 앉아서 타이탄의 렌즈를 통해 보고 있었던 관리자는, 갑자기 나타난….


 나유빈도 누구도 아니었던,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 인물을 보고는.


 그리고 그 인물이 갑자기 로봇들을 파괴하며 마더 컴퓨터를 부순 것을 보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 잠깐. 이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스크린 속의 인물을 쳐다보는 관리자. 그리고 그 인물이 이쪽 카메라의 모니터를 잠시 쳐다봤다, 곧,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영상은 끝났다.


 "……."


 이게 아마, 자신이 관리자인 것을 알았었던 유빈이, 무조건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해서 보낸던… 정보.


 '나유빈은 자신이 대적자도 나의 적도 아니라 했었다. 그런데도 신생관리국을 마비시킨, 지금 이 자가… 나의 적이라고, 어쩌면 이 세계의 대적자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관리자는 오른손을 들어, 검지를 코 밑에다 대고,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는듯한 자세를 취하며, 다시 영상을 돌려 그 인물의 얼굴을 보았다. '틀림없어. 이건 그 사람이 맞지만…. 왜? 어떻게 이 사람이 이곳의 관리국에 적대한 것이지?'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 답도 관리자에게 허용되지 않았었다. 타이탄은 단지 USB를 뽑아 책상 위에 올려놨다. 사장실의 창문 바깥, 샛노란 달이 환하게 뜬, 짙은 푸른빛이 감도는 어스름한 새벽. 저편에는 마치 탑과 같이 박혀있는 로스트 쉽들로부터 어두운 안개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고요한 대기는 단지 그런 소리없는 비명을 잠재운 채.




-- EP.II END




 이 팬픽은 먼저 썼었던 초판본을 기억에서 거의 잊혀졌던 이후 다시 읽고 편집했던 재판본입니다. 서술자의 리뷰 혹은 해설 및 작법 등에 관련된 내용을 읽고 싶다면은 이쪽의 개인 채널로 와주세요.


 https://arca.live/b/ofcountersidefanfics


 ※ 카운터사이드 뿐만 아닌 단간론파 및 드래곤볼 같은 다른 것도 언급하기 때문에 스포일러 주의

 




 후기 ----




 왠지 쓰면서 느꼈는데 뭔가 라노벨 같네. 원래 스타일은 약간 다른데.


그보다 폰 정리하다가 재밌는 짤 발굴함 ㅋㅋ 카사 팬픽이나 써볼까 생각했던 때가 언제였나.. 뭐 카운터사이드로 에픽 서사시 같이 엄청 긴 거 써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근데 이제서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