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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정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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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 문서 : 홍준표/일생
1. 정계 입문2. 입법 활동
2.1. 15대 국회2.2. 선거법 위반과 위기2.3. 사면, 그리고 국회 복귀2.4. 17대 국회
2.4.1. 17대 대선 경선
2.5. 18대 국회
2.5.1. 한나라당 대표2.5.2. 당대표 사퇴
3. 19대 총선4. 제35·36대 경상남도지사5. 19대 대선
5.1. 낙선 이후
5.1.1. 미국 체류
5.2. 귀국
6. 초대 자유한국당 대표7. 당대표 사퇴와 그 이후8. 국회 복귀
8.1. 21대 총선8.2. 21대 국회8.3. 집으로
9. 20대 대선10. 낙마, 그리고 이후11. 관련 문서

1. 정계 입문 [편집]


부정부패와 비리 수사를 통해 '모래시계 검사'로 이름을 떨치고, 유명세를 얻었지만, 이를 통해 검찰에는 악명이 자자했으며 거듭된 좌천 끝에 결국 검사복을 벗게 된다. 이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자, 광주지검 시절 구속시켰던 조폭들이 가족을 위협하는 일이 계속되었고 잇따른 협박 끝에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회의원이 되어 제도권의 보호를 받고자 했다.

홍준표는 '6공의 황태자' 박철언 수사 등을 통해 '모래시계 검사'로 이름을 떨쳤고, 이 당시 수많은 정치인들이 부정부패로 구속된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청렴하고 정의로운 이미지를 갖고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정치 입문의 가능성을 보여준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슨상님에게 새정치국민회의 입당을 제안받아 오찬 회동에 초청되었지만, "DJ와 식사하면 그쪽으로 안 갈 수가 없다더라"는 말을 듣고 일단 참석을 미뤄두게 된다. 이후 밤 늦게 훗날 MC무현으로도 유명해지는 노무현과 민주당 인사들이 집으로 찾아와 입당 제안을 하기도 하지만 일단 보류해두게 된다.

몇 시간 뒤, 강삼재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이 찾아와 신한국당 입당을 권유했고,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해 "문민정부에서 큰 사람이 왜 야당으로 가려 하냐"라는 말을 듣고 한나라당 입당 결심을 굳혔다.

민주당 노무현은 "홍검, 그렇게 살면 안 돼요!"라고 화를 냈지만, 당시로서의 홍준표는 확실히 지켜줄 수 있는 당이 필요한 상황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세력이 미약했던 야당의 제안을 거절하게 된다. 특히나 홍준표가 보수 성향이었기도 하고.

그리하여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는 신한국당에 입당해 정계에 출사표를 던지게 된다.

2. 입법 활동 [편집]

2.1. 15대 국회 [편집]


"깨끗한 그와 함께
새로운 송파를 건설합시다!!"

홍준표, 15대 총선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신한국당 소속으로 송파 갑 선거구로 출마해 현직 의원인 자유민주연합 조순환 후보를 꺾고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정치를 시작하면서 '뜻이 크고 기개가 있어서 남에게 얽매이거나 굽히지 않는다'는 척당불기(倜儻不羈)를 좌우명으로 삼은 그는 신한국당 내의 소장파에 속했고, 노동 최저 연령 상향을 발의해 통과시키는 등 초선부터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는 15대 국회 전반기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을 역임하고, 15대 국회 후반기에는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 국회 윤리위원회 위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국회 제도개선특별위원회 위원 등을 겸했다.

1996년 9월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노동 가능 최저 연령을 만 15세로 상향 조정하는 법안을 발의하여 통과시켰다. 1997년에는 한보 특위 담당 의원의 한 사람에 선임되었지만 일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타 의원들이 수사에 의욕이 없자 그해 3월 11일 한보특위 담당 의원직을 사퇴했다.

하지만...

2.2. 선거법 위반과 위기 [편집]

"국회의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법의 칼을 빌린 이 정부의 결정으로 국회를 잠시 떠나고자 합니다."

홍준표, 의원직 상실 직후
선거운동 당시에 동협의회 총무에게 2,400여만 원의 선거운동비를 주고 사후 허위 지출보고서를 제출한 혐의로 국회의원 상실 위기에 놓인다.

당초 검찰은 불기소처분을 내렸지만, 야당은 공세를 멈추지 않았고 곧 이듬해 1997년 2월 21일 법원은 야당 측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이게 된다. 1999년 3월 9일, 대법원은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해 의원직이 상실됐으며 피선거권까지 박탈당하게 되었다.

2.3. 사면, 그리고 국회 복귀 [편집]

1999년 1월부터 그해 10월까지 미국 워싱턴인터내셔널센터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다가, 2000년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슨상님과 영수회담을 갖고, 추경예산 편성과 남북 경협자금을 승인해주는 대신 이명박, 홍준표 등 선거법 위반 사범에 대한 사면에 합의하며 사면되게 된다.

2000년 한나라당이 출범한 뒤 한나라당 서울 동대문을지구당을 맡게 된다. 직후 2001년 김영구 의원의 사퇴로 치러진 10.25 재선거 때 동대문 을구 선거구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어 16대 국회의원으로 대한민국 국회에 복귀했다.

이어 한나라당 원내 부총무로 선출되었다. 16대 국회에서는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을 맡아보았다. 당무로는 한나라당 제1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과 한나라당 정책본부 본부장, 한나라당 동대문을지구당 당협위원회 위원장과 한나라당 전략기획위원회 위원장, 당 공천심사위원회 심사위원 등을 맡았다.

2002년 김대중의 3남 김홍걸의 미국 은행 입출금 내역을 공개해 3달 동안 23만 달러, 1달 평균 8,700만 원이라는 비정상적인 금액이 인출된 사실을 폭로하였고, 검찰이 이에 대해 수사에 들어가게 했다.

곧 검찰은 김홍걸이 최규선에게서 3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적발했고, 김대중 정권을 뒤흔든 최규선 게이트가 터지면서 결국 김홍걸이 구속되었다. 슨상님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민주당을 탈당했고,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참패하면서 레임덕에 빠지게 되었다.

2.4. 17대 국회 [편집]


"동대문의 꿈!
한국의 희망!"

홍준표, 17대 총선

2.4.1. 17대 대선 경선 [편집]

"서민의 꿈과 희망되겠다"

홍준표, 17대 대선 출마 선언 中

2.5. 18대 국회 [편집]

"동대문이 키운 인물"

홍준표, 18대 총선

2.5.1. 한나라당 대표 [편집]

"계파 없이 홀로 뛴 선거에서 저 홍준표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대의원 동지들에게 감사드린다."
"현대조선소에서 일당 800원을 받던 경비원의 아들, 고리채 사채로 머리채를 잡혀 길거리를 끌려다니던 그 어머니의 아들이 집권 여당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 여러분이 보여주셨다."

2.5.2. 당대표 사퇴 [편집]

"여러분의 뜻을 끝까지 받들지 못하고 대표직에서 사퇴하는 것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길 바란다."

홍준표, 당대표 사퇴 기자회견 中

3. 19대 총선 [편집]

"동대문이 만든 큰 인물!"

4. 제35·36대 경상남도지사 [편집]


"힘있는 도지사
당당한 경남시대!"

2012년 경남지사 재보궐선거 당시 홍준표 캠프 슬로건
"'경남 미래 50년' 멈출 수 없습니다!"

5. 19대 대선 [편집]

후보
득표율
41.1%
24.0%
21.4%
【 상세 내용 】
2012년 12월 19일
18대 대선
2017년 5월 9일
19대 대선
2022년 3월 9일
20대 대선
투표율
77.2% ▲ 1.4%p
당선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41.1%)
【 관련 문서 】
경선 (후보) · 국민주권선거대책위원회
경선 (후보) · 국가개혁선거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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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라인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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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겠습니다 자유 대한민국"

홍준표, 19대 대선

5.1. 낙선 이후 [편집]

5.1.1. 미국 체류 [편집]

5.2. 귀국 [편집]

"때가 되면 다시 시작하겠다"

홍준표, 귀국 직후

6. 초대 자유한국당 대표 [편집]

"‘도로탄핵당’ 막으려 다시 전장에 선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中

7. 당대표 사퇴와 그 이후 [편집]

"나라가 째로 넘어갔습니다."

홍준표, 당대표 사퇴 기자회견 中

8. 국회 복귀 [편집]

8.1. 21대 총선 [편집]


"타도 문재인! 선택 홍준표!"

홍준표, 21대 총선

8.2. 21대 국회 [편집]

8.3. 집으로 [편집]

"맏아들 돌아왔다"

홍준표, 국민의힘 복당 기자회견 中

9. 20대 대선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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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선 후보
 [ 제1차 경선 ] 
탈락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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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락
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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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홍준표 후보 선거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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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경선
예비 경선
2차 경선
본경선

"G7 선진국 시대를 열겠습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국민의힘 경선 슬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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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7 선진국 시대’를 열겠습니다.

대한민국 70년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성취와 영광의 역사였습니다.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를 넘어 정보화까지 이루어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를 선택한 위대한 선배들과 긍정의 역사 인식으로 뭉친 국민 모두의 땀과 노력 덕분입니다.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바뀌었고, 이제 정식으로 OECD와 선진국 클럽에도 가입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열어갈 선진국 시대는 우리 역사를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사람들의 힘과 열정으로 이룩해야 합니다. 이 모든 힘을 모아 공정과 번영, 안전과 서민의 시대적 가치를 구현해 나가겠습니다. ‘정의와 법치의 세탁기’로 무너진 공정을 바로 세우겠습니다. 혁신과 성장으로 나라와 개인의 부를 늘리겠습니다. 강한 안보로 국가 존엄과 국민 안전을 지키겠습니다. 약자와 서민들에게 더 많은 기회의 사다리를 만들겠습니다. 선진국 시대의 번영과 성취, 그 과실을 누구나 공정하게 누릴 수 있게 하겠습니다.

※ 나라를 정상국가로 만들겠습니다.

우리는 선진국의 길이냐, 베네수엘라의 길이냐,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국회 180석의 집권 세력은 사회 시스템, 국가 제도를 점점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더 나갔다가는 되돌릴 수조차 없습니다.

선진국 시대는 바로 오지 않습니다. 잘못 가는 길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저는 3년 전부터 , <프리덤코리아 포럼>을 통해 말씀드린 대로 국가 정상화 즉 ‘네이션 리빌딩(Nation Rebuilding)’을 준비해 왔습니다. 성장과 일자리, 부동산과 육아, 조세, 교육, 농어민, 복지, 지역발전, 안보와 외교 등등 모든 분야의 비전과 정책, 실천계획을 마쳤습니다.

※ 정권교체의 중심이 되겠습니다.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시대의 요구와 당원들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대표자이자 국가의 얼굴입니다. 지식은 빌려도 지혜는 빌릴 수 없습니다. 수신제가의 도덕성과 치국의 국정 능력은 대통령의 필수 요건입니다. ‘제로 디펙트(Zero Defect)’의 무결점 후보만이 부당한 술수와 공작의 빌미를 주지 않고 야권승리를 쟁취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정권교체를 통해 나라를 바로 잡을 절호의 시기입니다. 국제적으로도 미·중 패권 갈등은 격화되고 북한의 핵위협은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세계무대에서 국익을 지키고 나라 정상화를 위한 국정대개혁을 제대로 해낼 ‘강한 리더십’과 ‘미래를 통찰하는 혜안’이 필요합니다.

대선에서 ‘재수는 필수’란 말도 있습니다. 검증되고 준비되었기에 자신 있습니다. 지난 19대 탄핵 대선과는 달리 이번에는 온전한 당과 한 몸이 되어 승리의 영광을 가져오겠습니다.
홍준표 후보 출마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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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 행정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습니다.

- AI와 블록체인, 빅데이터 등을 행정 시스템에 과감하게 도입하여 국정의 효율을 높이고 2024년 대통령 중임제, 행정구조 2단계 개편, 국민기본권 신장을 중심으로 개헌을 추진하겠습니다.

2.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천명하고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선진국형 경제 시스템을 갖추겠습니다.

- 도심고밀도 개발, ‘쿼터 아파트’ 도입으로 주택공급을 대폭 늘려 집값을 안정시키겠습니다. 강성 귀족노조의 패악을 막고 노동 유연성을 높이겠습니다.

3.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 창출입니다.

- 세제개혁과 불필요한 기업 규제 철폐로 민간 일자리를 대폭 늘리고 더 높은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의 사다리를 많이 만들겠습니다.

4. 무너진 공정을 바로 세우겠습니다.

- 대학 입시를 정시 중심으로 개편하고 로스쿨, 의전원, 국립외교원 제도는 폐지, 사시, 행시, 외시, 의과대학을 부활시키겠습니다.

5. 사정기구를 개혁하여 선진국 사법체계를 구축하겠습니다.

- 검찰은 공소유지를 위한 보완 수사 기능만 유지하도록 하고 공수처는 폐지 하겠습니다. 경찰 국가수사국을 독립시켜 ‘한국형 FBI’로 만들고 모든 수사의 중심이 되게 하겠습니다.

6. 외교 안보 기조를 확 바꾸겠습니다.

- 상호불간섭 주의와 체제경쟁 주의를 원칙으로 독일식 통일 정책 추진

- 한미일 자유주의 동맹 강화 및 한미간 NATO식 핵공유 협정 추진

- 4군 체제 개편 및 모병제와 지원병제로의 전환 추진

7. 문화의 다양성과 균형을 회복하겠습니다.

- 국가의 간섭을 줄이고 민간중심의 창의와 자율을 바탕으로 글로벌 문화강국을 만들겠습니다. 방송은 EBS만 남기고 KBS, MBC를 민영화하여 민간 방송시대를 열겠습니다.
국민과의 약속
  자세한 내용은 국민의힘 제2차 전당대회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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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낙마, 그리고 이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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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계
관련 문서
"민심과 거꾸로 간 당심이지만, 홍준표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깨끗하게 승복하겠다."[1]

홍준표, 경선 패배 직후
그러나 6.35% 표차로 윤석열 후보에게 패배하게 된다.
>
"청년들의 꿈이 되고 싶었다…한동안 쉬면서 생각 정리할 것"

하지만 청년들의 꿈이 되고 싶었다며 향후 정치 활동을 예고 했고, 드디어 11월 14일 청년의꿈이란 정치 플랫폼을 만들어 공개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자세한 내용은 청년의꿈 문서
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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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그러나 이후의 행보는 윤석열과의 대립과의 치중되어, 꽤나 평가가 반전되었음은 물론 당 내외에서 내부총질이라고 비판받고 있다.

11. 관련 문서 [편집]

[1] 정작 승복은 커녕 계속 윤석열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 추하다란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