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페즈 알-아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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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페즈 알-아사드 |
프로필 | |
성명 | 하페즈 알-아사드 Hafez al-Assad حافظ الأسد |
출생 | 1930년 10월 6일 |
시리아-레바논 카드라하 | |
사망 | 2000년 6월 10일 (향년 69세) |
시리아 다마스쿠스 | |
심장마비 | |
묘소 | 시리아 카르다하 |
소속 정당 | |
재임 기간 | 제5대 대통령 |
1971년 3월 14일 ~ 2000년 6월 10일 | |
서명 | |
1. 들어가기 전에 [편집]
2. 개요 [편집]
3. 상세 [편집]
4. 일생 [편집]
4.1. 젊은 시절 [편집]
4.2. 군 복무 및 3번의 쿠데타 [편집]
4.3. 시리아의 반인반신이 되다 [편집]
4.4. 최후 [편집]
5. 하페즈 알-아사드 정부 [편집]
5.1. 정치적 성향 [편집]
5.2. 주요 행보 및 공과 [편집]
5.3. 영향 [편집]
6. 평가 [편집]
6.1. 긍정적인 평가 [편집]
6.2. 부정적인 평가 [편집]
6.3. 총평 [편집]
7. 여담 [편집]
김일성과 많이 친해서, 같이 선전도 도와줬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현재까지도 시리아와 북한은 상당히 밀접한 관계라고.
노짱 곁으로 간 애비의 초상화를 바라보는 바샤르 알-아사드.
원래 후계자로 낙점했던 놈은 자신의 장남인 바셀인데, 바셀이 뜬금없이 교통사고로 죽으면서 '정치 안해요' 하던 안과의사 바샤르 알-아사드를 후계자로 지명하게 된다.
같은 바트주의 지도자였던 사담 후세인과는 떨떠름한 관계였는데, 서로에 대해 과한 적대감을 갖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위협으로 봤다. 과거 알-바크르가 후세인을 견제하기 위해 바트당을 통합시키고 하페즈를 끌어들여서 후세인의 영향력을 줄이려 한 적 있는데, 후세인은 바르크의 이런 의도를 알고 반대 입장을 표했고, 하페즈 역시도 통합 이후 시리아가 이라크의 영향력 안에 들어갈 것을 우려해 반대 입장을 표했다. 이후로는 서로를 서로에 대한 위협으로 본 듯. 실제로 하페즈는 후세인이 벌인 이란-이라크 전쟁과 걸프 전쟁, 이라크 전쟁에서 모두 반 후세인 편을 들었다. 다만 후세인이 미국에 의해 제대로 억까를 당하고 사형당하자 시리아 내에서 동정 여론이 들끓긴 했다.
8. 둘러보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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