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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후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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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후세인
صدام حسين عبد المجيد التكريتي
프로필
성명
사담 후세인 압드 알-마지드 알-티크리티

Saddam Hussein Abd al-Majid al-Tikriti

صدام حسين عبد المجيد التكريتي
출생
1937년 4월 28일
이라크 왕국 티크리트
사망
2006년 12월 30일 (향년 69세)
이라크 바그다드
소속 정당
재임 기간
이라크 대통령
1979년 7월 16일 ~ 2003년 4월 9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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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후세인 압둘 마지드(알-마지드)
어머니 수브하 탈파
배우자
본처 사지다 탈파
사미라 샤반다르
애인 니달 알함다니
자녀
슬하 2남 3녀[1]
장남 우다이 후세인 (1964 - 2003)
차남 쿠사이 후세인 (1966 - 2003)
장녀 라가드 후세인
라나, 할라
친인척
종교
신체
186cm | 95kg[2]
이라크 수비대
군사 경력
복무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
1975년 ~ 1968년 ~ 1968년
최종 계급
총사령관
기타 이력
이라크 대통령

1. 들어가기 전에2. 개요3. 상세4. 일생5. 사담 후세인 정부
5.1. 정치적 성향5.2. 주요 행보 및 공과5.3. 외교적 노선5.4. 영향
6. 평가
6.1. 긍정적인 평가6.2. 부정적인 평가6.3. 총평
7. 결론8. 여담
8.1. 의문의 1승
9. 관련 문서10. 둘러보기

1. 들어가기 전에 [편집]



이 문서가 다루는 대상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여기서 설명하는 대상의 모습은 천사와 악마처럼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ㄴ 빛은 경제 성장과 세속주의 성향, 어둠은 철권 통치 및 전쟁광이었단 점



이 문서의 대상은 공과 과가 너무나도 극명해 찬양하거나 까내리기만 하기에 애매한 고인입니다.

고인을 희화화하거나 비하해야 할지 너무 고민됩니다.




이 문서는 독재와 관련된 내용에 대하여 다룹니다.

??? : 참아야죠 뭐





"전쟁하자는 거냐"

이 문서는 전쟁 관련 내용, 혹은 유사 전쟁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후세인는/은 사실 하페즈에게 깊은 사랑을 품고 있습니다!
후세인는/은 누구보다 하페즈를 사랑하면서 왜 본심을 숨기는걸까?



이 문서는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영웅에 대해 다룹니다.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 줄 알았습니다...
이라크 내전 이후 상대적 재평가



이 문서는 선녀에 대해 다룹니다!

미인은 꽃과 같아서 잎이 있어야 그 미가 살아나는 법입니다.
“다시 보니 선녀 같다!”



이 문서는 눈새에 대해 다룹니다!!!!

눈치 좀 챙겨라 씹새야



이 문서는 자식농사를 망친 대상에 대해 다룹니다.

병신 난자/정자 중 재수없게도 하나가 세상에 나와버렸습니다.



이라크은(는) 어떤 곳일까...

2. 개요 [편집]

사담 후세인
Saddam Hussein
“나는 이라크 대통령이다.”
ㅡ 2005년 10월 19일 두자일 사건 첫 재판 인정신문에서

صدام حسين عبد المجيد التكريتي
사담 후세인 압드 알-마지드 알-티크리티 (Saddam Hussein Abd al-Majid al-Tikriti, 1937년 4월 28일 ~ 2006년 12월 30일)이란, 과거 이라크를 23년 273일간 지배했던 독재자로, 소속 정당은 이라크 바트당이다.

이라크 내 소수종파인 수니파 출신 인물[3]으로, 세속적 범아랍주의와 아랍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이라크 바트주의의 지도자였다.

21세기 들어 동네 힘쎈 그 나라에 의해 몰락했는데, 이후 2022년 현재까지도 이라크 뿐만 아니라 중동 내에서 평가가 갈리고 있으며, 한 쪽에서는 '범아랍주의의 지도자'로 칭송받는가 하면 또 다른 한 쪽에서는 '바그다드의 도살자'로 평가가 갈리고 있다.

3. 상세 [편집]

사담 후세인 / Saddam Hussein
원래 아메드 하산 알-바크르 정부의 부통령이었는데, 석유국유화를 철두철미하게 진행하고 고유가로 얻은 수익을 바탕으로 사회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정비해서 한때 다 망해가던 이라크를 중상위권 국가로 끌어올린 유능한 인물이었다.

그러다 점차 권력욕에 취했는지 알-바크르를 병환 때문에 정치 못 한다 하면서 쫓아내고 지가 대통령 낼름낼름 받아 먹었다. 이후 그대로 타락해서 이란-이라크 전쟁걸프전을 일으켜 지가 한 업적을 그대로 까먹었으며, 끝내는 9.11 테러 직후 제대로 맛 간 미국을 도발하다 교수형대에 서게 된다. 다만 독재를 하면서도 무능하기만 한 건 아니었는데, 이슬람 극단주의를 잘 진압하고 이라크를 지역강국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비록 실패한 전쟁이라 할지라도 이라크를 이란과 맞붙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시킨 것도 후세인의 공이다.

그리고 후세인이 몰락하자 그대로 이슬람 근본주의의 고삐가 풀리고 다에쉬란 막장 단체가 등장하며 이라크의 상황은 더 막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때문에 이라크 현지에서는 후세인 때가 나았다고 재평가 하는 여론도 꽤나 존재하는 상황.

간단히 말하면 현대 이라크를 만든 인물으로 평가할 만한 인물이다. 물론 사후 그 현대 이라크가 전부 작살났다는 건 안 비밀.

4. 일생 [편집]

사담 후세인 / Saddam Huss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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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담 후세인 정부 [편집]

사담 후세인 / Saddam Hussein
이라크 혁명사령부 위원회 부의장
이자트 이브라힘 알-두리
이라크 부총리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부통령
타하 야신 라마단
이라크 정보국장
바르잔 이브라힘 알-티크리티
이라크 정보국장
알리 하산 알-마지드
이라크 대통령 비서
아비드 하미드 마흐무드
후세인 정권의 주요 관료들. 물론 바르잔은 최측근이라기보다는 악우에 가깝긴 했다.

5.1. 정치적 성향 [편집]

후세인 정권은 기본적으로 아랍사회주의 성향을 띄고 있었다. 물론 집권 후반기부터는 퇴색 되긴 했지만 일단 베이스는 아랍사회주의다.

또한 범아랍주의, 아랍 민족주의 성향을 띄고 있었는데 이 덕에 9.11 테러 직후 반 후세인 세력에 의해 알려진 바와는 달리 이슬람 극단주의와는 상극과도 같았다.

추가로 후세인이 알-카에다를 지원해주고 있다란 이유로 전쟁이 일어난 것과는 대비되게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인 알-카에다를 대놓고 탄압했고,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를 공격하기도 했다.

5.2. 주요 행보 및 공과 [편집]

철권정치라는 비판도 받고 있긴 하나,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라크 사회의 세속화를 도모해 현대 국가로 만든 업적이 있다.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석유 국유화인데, 바트당 정권은 소련과 공동으로 남부 최대의 루메이라 유전을 개발시킨 후 1972년에 드디어 석유사업의 국유화를 단행했다. 오랜 세월 이라크는 석유의 이권이 국가가 아닌 외국계 석유회사에 독점되어 있었다. 그리고 석유 국유화를 단행한 결과, 제1차 오일쇼크 이후 이라크의 석유 수익은 계속 성장해, 1980년에는 1968년에 비해 50% 성장한 26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 석유 수입을 배경으로 바트당 정권은 제3차 5개년 계획을 세워 이라크의 사회주의화와 현대화, 국유화 추진, 이라크의 경제적 자립 등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 소련,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일본 등에 산업시설 건설 및 기술 전문가, 노동자의 파견을 요청했다.

바트당 정권은 약 400억 달러 규모의 제4차 5개년 계획을 진행시켜 전국에 통신망·전기망을 정비해, 벽지에도 전기가 닿게 되었다. 또한 토지개혁으로 농업의 기계화, 농지의 분배를 추진해, 최신식의 농기구까지 배부되어 국유지의 70%를 자영농에게 분배하였다. 또, 소련의 협력으로 이라크 최대급의 모술 댐과 하디사 댐도 완성시켰다. 이러한 정책으로 1970년대 후반에는 이라크의 인구는 35% 증가했다. 국내 총생산에 있어서 국영부문의 비율도 1972년에 35.9%였는데 비해 1977년에는 80.4%로 증가하여, 사실상 바트당 정권이 국민에게 부를 분배하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아랍사회주의 정부 답게 이라크 전역에 학교를 설립하고 문맹률을 낮추었으며, 1977년부터 대규모 문맹 퇴치 캠페인을 전개해, 전국 규모로 읽고 쓰기 교실을 개강했다. 물론 참여 안 하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동행하긴 했지만 말이다. 과정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문맹률이 낮아졌고, 그 성과로 1980년대에 유네스코상을 수여받기도 했다.

또한 여성 인권에도 신경을 썼는데, 성별에 의한 임금 차별이나 고용 차별을 법률로 금지했고, 일부 다처제를 금지했으며, 여성의 사회 진출을 적극 권장하고 또 결혼과 이혼의 자유도 보장해주었다. 이 결과 여성 공무원이 증가한 건 물론 군대에도 입대할 수 있도록 했다. 아랍권에서 크게 문제가 되는 명예 살인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5.3. 외교적 노선 [편집]

외교적 노선은 아랍사회주의 정권답게 본래는 친소에 가까웠으나, 이란-이라크 전쟁 시점에는 일부 국가를 뺀 전세계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북한, 시리아, 리비아, 포르투갈, 파키스탄, 이스라엘 정도를 빼면 겉으로 이란을 지원하는 국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사실상 전세계 맞다. 물론 미국한국은 양다리 걸치긴 했지만.

이 당시 미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훗날 네오콘으로 악명을 떨치는 도널드 럼즈펠드를 특사로 파견하는데, 둘은 악수하고 포옹까지 하기도 했다. 이는 훗날 이라크 전쟁 발발 후 럼즈펠드를 까는 주요 떡밥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다양한 국가의 지원을 받았다고는 해도 이란과의 과도한 전쟁, 그것도 8년간의 전력 소모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으며, 거기다가 이란과의 전쟁 당시 후세인보고 전쟁하라고 부추겼던 사우디쿠웨이트는 후세인을 도와주진 못할 망정 빚 갚으라고 제대로 압박을 해댔다. 그리고 그 압박의 결과는...

걸프 전쟁 이후에는 사실상 전세계의 주적이 되어 버렸다. 전세계로부터 경제 제재를 뚜들겨 맞았고, 주변 국가들에 국경까지 패쇄당하고 여러 각국으로부터 항공 직항편까지 정지당하는 등 그야말로 고립을 당했다.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제대로 회담해주는 국가도 없었고, 걸프전 이후 정상회담을 한 국가원수는 베네수엘라우고 차베스가 다다. 그나마 중립 노선 지키던 요르단후세인 1세이나 팔레스타인야세르 아라파트 정도가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후세인 1세는 걸프 전쟁 때도 이라크 침공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9.11 테러로 한때 지원을 받았던 미국에 의해 완전히 몰락해버리고 말았다. 물론 '신의 천벌'이니 하면서 어그로 끈 후세인 잘못도 있겠지만 당시 미국 정계 내에서도 후세인을 축출하면 좆된다는 말이 오고 갔는데 이걸 전부 씹고 전쟁 일으킨 네오콘 새끼들도 문제 있는 건 마찬가지다.

이후 후세인은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 전쟁 등의 전쟁 범죄 혐의를 쓰고 사형을 당하게 되는데, 그 이란 전쟁을 누가 지원해줬는지는 ㅋㅋㅋㅋㅋ

후세인이 지하 세력으로 전환한 이후로는 반미 세력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는데, 팔레스타인에서는 후세인 지지 여론이 커져 후세인 관련 상품들이 불티나게 잘 팔리기 시작했고, 시리아의 반미 성향 국민들에게도 동정을 받기도 했다. 또 친후세인 반군 세력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반이란 세력에게 친이란 반군 좀 견제해달라고 지원을 받기도 했다.

5.4. 영향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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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헬조선 하지만 여기에 갔다 오면 헬조선이 헤븐조선으로 보일 것입니다.

가지 마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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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은 꽃과 같아서 잎이 있어야 그 미가 살아나는 법입니다.
“다시 보니 선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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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 줄 알았습니다...
무너지는 후세인 동상.
미국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바그다드의 이라크 대통령 궁
나름 소수파 애들 데리고 이라크 오랫동안 잘 틀어쥐고 있었는데 미국이 얘 목만 따고는 대책을 안세워서 이라크에선 매드 맥스 시대가 개막되었다.

후세인 슨상님 계실 적엔 이런 일 없었는디.

이후에 후폭풍으로 ISIS[4]가 탄생하며 지옥이 펼쳐지게 되었다. 다행히 현재는 리더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트럼프에게 암살당하며 거의 몰락한 줄 알았으나..

아프간에서 폭탄 테러를 일으켜 다시 한번 관심을 받고 있다.

한편 후세인의 측근들은 끝까지 체포 당하지 않고 현재까지도 도주 행각을 이어가고 있는 후세인 정권의 2인자 이자트 이브라힘 알-두리를 제외하면 전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다만 재판 과정이 너무 정치 보복성이었단 점이 문제가 되었는데, 누리 알-말리키를 중심으로 하는 신 이라크 정부는 구 정부에 대한 정치 탄압에만 앞장섰다. 사베르 압델 알-두리술탄 하심 같은 유능한 관료들도 싸그리 학살 혐의를 씌워 감옥으로 보냈고, 후세인 등을 고문하기도 했으며, 특히 "케미컬 알리"로 유명했던 알리 하산 알-마지드바르잔 이브라힘 알-티크리티 등을 체포 직후 재빨리 사형이 집행시켜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일부 친후세인 세력은 이라크 내의 반군이 되어 버렸는데, 대표적인 세력으로는 이자트 이브라힘 알-두리가 이끄는 나크슈반디 군대(일명 JRTN)가 있다. 이쪽은 아예 다에시와도 손을 잡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결별하고 이라크 정부와 협력하며 다에쉬 소탕을 하고 있는 상황.

여담으로 사후 후세인의 무덤이 이라크 내전 속에 파괴되는 고인능욕까지 당했다. #

2022년 "외교 천재" 날리면 할배가 빈 살만 왕세자의 '카슈끄지 암살 사건' 논란에 대해 현직 국가원수 면책 특권을 인정해주기로 하면서 이쪽만 병신이 되부렀다. 바보 병신 후세인

2018년 기준으로도 수니파와 기독교도 등 이라크 내 소수 종교인들과 세속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후세인 시대를 그리워 하는 이라크인이 꽤 있다고 한다. 후세인 사후 오히려 더 막장이 되어버렸다고. #

6. 평가 [편집]

6.1. 긍정적인 평가 [편집]

  • 현대 이라크의 기틀을 닦음
  • 석유국유화를 통한 경제성장
  • 여성 인권 상승 및 명예 살인 금지
  • 이슬람 극단주의 탄압, 알-카에다 등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공격
  • 학교 교육 지원, 문맹률 감소
  • 군비 확장
  • 비주류 종교 보호, 종교의 자유 보장
  • 타 독재자들과 달리 끝까지 본인의 소신을 밝히고,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함.

6.2. 부정적인 평가 [편집]

  •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전 등의 과도한 전쟁 및 전력 낭비 : 물론 두 전쟁 다 이해가 안 가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이 후세인의 몰락을 가속화시킨 건 사실이며, 특히 걸프전은 후세인의 가장 큰 실책으로 꼽힌다.
  • 20여년의 철권 정치
  • 쿠르드족과 시아파 탄압, 두자일 학살 등의 학살 논란

6.3. 총평 [편집]

<<MISS ME YET?>>

이라크 어디엔가에 붙어있을 광고판...
“내가 그립지 않니?”
그가 이라크 정치 전반에 등장한 건 아메드 하산 알-바크르 정권 시기 부통령으로 임명되면서였다. 당시 그는 석유국유화를 주도면밀하게 시행하고 유가 부양에도 앞장서서 고유가로 얻은 수익을 바탕으로 사회인프라를 대대적으로 정비시켜서, 쿠데타와 잦은 내부 분란으로 바람 잘날없었던 이라크의 정국을 안정시켜 이라크의 1인당 국민소득을 중상위권 국가로까지 성장시킨 매우 유능한 인물이었다. 사실상 현대 이라크를 완성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러나 대통령 취임 후에는 과거와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였는데, 바트당 인사들을 대거 숙청하는 것으로 시작된 그의 20여년간의 철권 정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완성한 이라크를 다시 작살내고야 말았다. 그나마 초반에는 안정적인 통치를 했으나 단추가 어긋나기 시작한 건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그는 이란 혁명을 일으킨 이란의 이슬람주의자들을 경계하며 사우디 등 주변 반이란 국들에게 지원을 받아 전쟁을 일으켰으나 어떤 성과도 내지 못한 채 빚만 잔뜩 남기고 말았으며, 이 덕에 이란의 영향력만 커졌다는 걸 감안하면 사실상 패배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사면초가에 몰린 상황에서 사우디, 쿠웨이트 등 과거의 지원국들은 빚을 갚으라며 안 그래도 이란과의 전쟁으로 작살나 있던 이라크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쿠웨이트를 침공한다는 최악의 수를 두면서 전세계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이후에는 다시 이라크 복구에 힘쓰며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다, 9.11 테러 직후 미국을 도발하는 또다시 최악의 수를 두게 되면서 완전히 몰락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그의 20여년 간의 통치 간 아예 장점이 없던 건 아니었는데, 알-카에다를 공격하고 이슬람주의자들을 탄압하며 제정 분리를 분명히 했고, 학교 교육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문맹률을 줄였으며, 여성 인권 향상에도 앞장서며 명예 살인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5] 또한 아랍사회주의에 따라 타 종교 신자들도 적극적으로 보호해줬다. 당장 후세인의 최측근이었던 타리크 아지즈도 기독교인이었다. 이 때문에 이라크 내의 다수 기독교인들이나 집시들은 아직까지도 후세인을 그리워 하고 있는 상황. # 물론 쿠르드족이나 시아파는 얄짤 없이 탄압하긴 했다.

이라크 전쟁 이후에는 ISIL를 중심으로 한 내전 정국에 이라크 시아파 정권 + 미국 지도층의 무능까지 겹치면서 후세인을 그리워하는 여론이 수니파들 사이에서 다시 스멀스멀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저런 놈들을 나름대로 ㅅㅌㅊ의 통치력으로 잘 통제해온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특히나 시아파 정권의 성급한 후세인 처형이 이런 기조를 앞당겼으며, 처형 당시 그의 소신 있고 당당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더 불을 지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담담하게 유언을 남기고 용수를 거부하는 등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본인 나름대로의 철학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 결과 후세인은 공과를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채 수니파 진영에서는 순교자가, 시아파 진영에서는 악마가 되어버렸다.

7. 결론 [편집]

8. 여담 [편집]

  • 정말로 무지성 대량학살무기를 만들고 있었나?
    ㄴ 단지 전쟁 명분일 뿐이고 대량학살무기, 즉 핵은 있지도 않았음
    물론 화학 무기는 가득했지만
    ㄴㄴ 화학무기도 ABC 무기 아님?
    ㄴㄴㄴ 저거 잘못 썼었노. ABC 무기 말고 핵 없다 하려고 했는데 ABC 무기야 꽤 많이 있었고. 그리고 그런 화학 무기들이 있던 건 전쟁 이전에도 기정 사실이었고 그런 무기들을 지원해준 건 다름 아닌 미국이었음.
  • 사자나 여러 동물들을 애완동물로 키웠다. 그리고, 후세인 몰락과 같이 이 동물들은 총살당하거나 동물원으로 끌려가 굶어죽는 비참한 최후를 당했다.
  • 이라크 전쟁 당시 그의 현상금은 자그마치 한화로 25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미군 특수부대에 체포돼서 아무도 250억을 받지 못했다.
  • 장남은 우다이 후세인이라는 놈인데, 아이큐는 190에 대학교 성적을 올만점을 받을 정도로 천재이기는 하다. 문제는 인간성이 심히 딸려서 그렇지. 한창 잘 파티를 하는데 뭐가 그리도 꼴받는지 갑자기 아버지의 측근을 곤봉으로 쳐죽여버렸다. 그리고 지네 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을 무슨 브이독아인 줄 알고 있는지 경기에서 졌다고 선수들을 잡아다 콘크리트 공으로 축구 시합을 시키거나 마치 베어너클의 일렉트라 마냥 전기 채찍으로 때려서 인간을 맛이 가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 토우에 맞아서 죽었다.
  • 이집트의 모하메드 비스흐르는 사담 후세인과 닮아서 화제가 됐는데, 몇몇 단체들은 후세인의 성생활을 그린 야동에 출연시키기 위해 납치까지 시도했다고 한다. #
  • 집권 기간 내내 콧수염과 이라크 군복 차림으로 잘 알려져 있었는데, 사실 후세인은 이라크군에서 복무한 적이 없다. 걍 이미지 메이킹용. 다만 그와는 별개로 이라크군에 대한 군비 확장을 적극 추진하기도 했다.
  • 훗날 미국의 정보기관에서 후세인에 대한 정신 감정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편집증 증상 외에는 별다른 정신적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즉 개똥철학이긴 했어도 나름대로의 신념 하나는 확실했던 셈. 다만 저 편집증 증상이 후세인 정권 중 여러 차례 드러난 적이 있긴 했는데, 대표적으로 바트당 대숙청 사건이나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전에서 이런 편집증적 증세를 잘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 같은 바트주의 지도자였던 하페즈 알-아사드와는 떨떠름한 관계였는데, 서로에 대해 과한 적대감을 갖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위협으로 봤다. 과거 알-바크르가 후세인을 견제하기 위해 바트당을 통합시키고 하페즈를 끌어들여서 후세인의 영향력을 줄이려 한 적 있는데, 후세인은 바르크의 이런 의도를 알고 반대 입장을 표했고, 하페즈 역시도 통합 이후 시리아가 이라크의 영향력 안에 들어갈 것을 우려해 반대 입장을 표했다. 이후로는 서로를 서로에 대한 위협으로 본 듯. 실제로 하페즈는 후세인이 벌인 이란-이라크 전쟁걸프 전쟁, 이라크 전쟁에서 모두 반 후세인 편을 들었다. 다만 후세인이 미국에 의해 제대로 억까를 당하고 사형당하자 시리아 내에서 동정 여론이 들끓긴 했다.

8.1. 의문의 1승 [편집]

??? : 훠훠...

솔직히 이 재앙 새끼는 후세인 말고 말리키한테 비비는 게 맞긴 하다. 후세인은 유능하기라도 했지, 말리키 문재앙 이 두 재앙 새끼는 정치 보복 말고 뭐 했노

9. 관련 문서 [편집]

10. 둘러보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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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16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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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민주화 운동 (2011)
예멘 내전 (2011)
바레인 민주화 운동 (2011 - 현재)
리비아 민주화 운동 (2011)
2011 리비아 내전 (2011)
시리아 내전 (2011 - 현재)
2011 이라크 내전 (2011 - 2013)
2013 이집트 쿠데타 (2013)
2013 이라크 내전 (2013 - 2017)
2014 리비아 내전 (2014 - 2020)
예멘 내전 (2014 - 현재)
카타르 외교 위기 (2017 - 2021)
2017 이라크 내전 (2017 - 현재)
2019 수단 쿠데타 (2019)
바그다드 국제공항 공습 (2020)
2021 수단 쿠데타 (2021 - 현재)
마흐사 아미니 시위 (2022 - 현재)
윤석열 UAE의 적은 이란 발언 논란 (2023)
• 사우디-이란 관계 회복 선언 (2023)
관련 문서
[1] 이들은 본처인 사지다 탈파의 자녀들이고 이 외에 몇 명의 사생아들이 있다.[2] https://www.howtallis.org/saddam-hussein-height-weight-shoe-size/[3] 사실 전세계적으로 가보면 수니파가 절대 다수긴 하다. 이라크가 특이한 케이스.[4] 정식명칭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5] 물론 '그 돼지'들 덕에 꺼림직하게 느껴질 수는 있으나, 이 동네는 ㄹㅇ로 여성 인권이 막장인 동네다. 이런 막장에서 이슬람주의를 탄압하고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한 건 분명히 공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