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오마르 알-바시르

최근 수정 시각:

[ 펼치기 · 접기 ]
제1차 주권위원회
군사정권
제2차 주권위원회
제3차 주권위원회
군사정권
과도군사위원회
86년 총선
군사정권
과도군사위원회
과도군사위원회
과도주권위원회

오마르 알-바시르
عمر حسن أحمد البشير
프로필

1. 개요2. 상세3. 일생
3.1. 젊은 시절3.2. 쿠데타를 일으키다
4. 오마르 알-바시르 정부
4.1. 정치적 성향4.2. 주요 행보 및 공과4.3. 외교적 노선4.4. 영향
5. 몰락6. 평가
6.1. 긍정적인 평가6.2. 부정적인 평가6.3. 총평
7. 비판
7.1. 수단-남수단 전쟁7.2. 1993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7.3. 다르푸르 학살
8. 여담9. 관련 문서10. 둘러보기

1. 개요 [편집]

오마르 알-바시르
Omar al-Bashir
남수단이 탈퇴하면 헌법을 바꿀 것이며 그때에는 문화와 인종의 다양성에 대해 말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샤리아와 이슬람이 헌법의 주요 원천이 될 것이며, 이슬람은 공식 종교, 아랍어는 공식 언어가 될 것.
ㅡ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

عمر حسن أحمد البشير
오마르 하산 아흐마드 알-바시르 (Omar Hassan Ahmad al-Bashir, 1944년 1월 1일 ~ )란, 수단을 30여년간 지배한 수단의 독재자로, 수단을 완전히 말아먹은 하르툼 정육점 주인장 새끼이다. 소속 정당은 국민회의.

30년 경력의 수단 디펜딩 챔피언으로, 30년간 1.5년에 한 번 꼴로 나던 쿠데타를 전부 막아내 13전 12승 1패를 기록했다. 그러다 19년에 일어난 쿠데타 방어에 실패해 그대로 깜방행.

수단은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도 최악의 독재자로 꼽히는데, 30년간 집권하면서 한다는 게 알-카에다를 비롯한 전세계 테러단체들 지원하고 샤리아를 통해 자국민들 탄압한 게 다다. 하도 탄압이 심했으면 아예 남부 지방이 떨어져 나갈 정도다.

2. 상세 [편집]

체포된 오마르 알-바시르 前 수단 대통령.
군부 출신 이슬람 원리주의 독재자란 끔찍한 혼종[1]으로, 세계에서 제일 가는 악랄한 독재자 중 하나였으나 야권 세력의 분열 덕에 30년을 날로 먹은 인물이다.

국내에서는 샤리아를 통한 이슬람 원리주의 통치를 벌이고, 남수단과 다르푸르에서는 피부색으로 국민 갈라치기하면서 학살을 하는 마더뻐킹 레이시스트 같은 짓을 벌이면서 다르푸르 학살으로 자국민 무슬림 수십만을 죽였으며, 국외에서는 알-카에다, 신의 저항군 등 테러단체를 지원하고 수많은 국가들과의 외교를 씹창내는 등 수단을 제대로 조져먹은 아프리카 최악의 독재자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악의 학살자 중 하나로, 마오쩌둥북한 왕조, 폴 포트킬링필드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독재자로 랭크되어 있다. 대략 죽인 사람 수만 1,640,000명인데, 이는 수단 인구의 3.8배 수준이다. 이 덕에 ICC가 기소한 최초의 국가 원수란 타이틀을 달기도 했다.

하다하다 이집트와의 할라이브 분쟁에서 갑자기 셀프 철군을 시전하며 이집트한테 땅을 넘겨주기도 했다.

거기다 2023년 발생한 수단 전쟁도 이 인간이 신속지원군을 창설해 수단군과 신속지원군을 갈라치다가 발생한 거니 말 다 했다. 수단의 문제를 꼽아보면 10에 9은 이 인간 책임.

그러다 내전 도중 갑자기 행방불명 됐다. 원래는 그대로 교도소에 있었어야 하는데, 내전으로 전 국토가 개판이 되면서 교도소 역시도 무방비해진 탓. 일단 수단 정부 측은 본인들이 내전 직전 알바시르의 신변을 확보해 군 병원으로 옮겨 구금시켜놓고 있다고 하는데, 자세한 정황은 내전이 정리되고 나서야 알 수 있을 듯하다.

3. 일생 [편집]

3.1. 젊은 시절 [편집]

1944년 1월 1일에 하르툼에서 북쪽으로 150km 정도 떨어진 호쉬 반나가(Hosh Bannaga)라는 마을에서 소규모 낙농업자의 12명의 자식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초등교육을 마친 후 하르툼으로 상경해 중등교육을 마치고 사촌 파티마 할리드(Fatima Khalid)와 결혼하였고, 얼마 되지 않아 두 번째 아내인 와이다드 바비커 오마르(Widad Babiker Omer)와 결혼했지만, 두 부인 사이에서 자식은 없었다.

1960년 수단군에 입대하였고, 1966년 이집트 사관학교로 유학을 갔다온 뒤 수단 사관학교를 졸업한다. 1967년부터 1969년까지는 수단 서부 사령부에 있었다.

1969년 공수부대에 편입되었으며,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일어났을 땐 알-바쉬르에 있는 이집트군에서 복무했고, 1975년 아랍에미리트의 군사 고문으로 재직했다. 대령으로 돌아왔을 때인 1981년에는 기갑 낙하산 여단의 사령관이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군의 실세로 떠오르기 시작하여 1987년에는 제8보병여단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3.2. 쿠데타를 일으키다 [편집]

당시 수단의 총리였던 아메드 알-미르가니(Ahmed al-Mirghani, 1942~2008)는 1989년 3월 NIF를 제외한 정당연합의 거국내각을 성립시키고 6월 30일 아디스아바바에서 남수단인민해방군측과 국민헌법회의 개최, 외국과의 군사동맹 폐기, 이슬람법 적용범위 축소 등에 합의해 남부와의 협상을 각의에서 통과시킬 예정이었다.

그러나 국가 이슬람 전선(NIF) 등 강경파 세력은 남부 협상에 불만을 가졌고, 1989년 6월 30일 국가 이슬람 전선을 위시한 오마르 알-바시르 준장이 쿠데타를 일으키며 정권은 전복당하고 만다.

그는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하르툼에 무혈입성한 뒤, 구국혁명사령부(RCCNS)[2]] 의장을 역임하며 실질적으로 수단의 지도자로써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는 총리, 국군 총사령관, 국방부 장관을 겸임하며 헌법을 정지시키고 국회와 정당을 해산시켰고, 독립적인 신문을 금지했으며, 주요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을 투옥하는 등 국가 전반을 권위주의 정책으로 통제했다.

1990년에 쿠데타 시도가 발생했으나 실패했고, 1991년 1월 1일부터 남부 3개 주를 제외한 전국에서 이슬람법 샤리아가 시행되면서 대통령 중심 연방제와 이슬람 슈라(Shura) 원칙에 따른 인민의회제 등 새로운 정치제도가 채택되고, 사법은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로 민사, 형사 모두 샤리아를 적용시켰다.

혁명위원회는 1993년 10월 16일에 열린 특별회의에서 스스로 자진해체하기로 결정하였고, 알-바시르를 혁명위원장 겸 수상을 대통령에 임명시켰다. 쿠테타 배후세력인 NIF는 정재계, 사법부, 군부, 언론계, 학계 등 요직을 독점하여 수단의 지배세력으로 등장했다. NIF는 세력을 확대하여 정통 이슬람 국가 건설에 목표를 두고, 이에 반대파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 등을 탄압했다.

4. 오마르 알-바시르 정부 [편집]

4.1. 정치적 성향 [편집]

4.2. 주요 행보 및 공과 [편집]

알-바시르 수단 정부는 이슬람주의 정권으로써 다양한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를 지원했는데, 1991년 말까지 1000명의 이집트 반란군을 맞아들이고 알-카에다오사마 빈 라덴에게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며, 오사마 빈 라덴에게 5년간 은신처를 제공하기도 했다.

세속주의 군부가 정권을 잡고 있던 알제리리비아에서 세속주의 정부 전복을 시도했고, 무아마르 카다피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1995년에는 또다시 리비아에서 반군 공격을 시작했다. 팔레스타인의 극단주의 단체인 하마스를 지원하며 그에게 훈련을 받은 하마드 조직원들이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자살 폭탄 테러를 저지르기도 했다.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는데, 이 사건 직후 수단 공화국이 미국에 의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었다.

1995년 6월에는 아예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었던 호스니 무바라크 암살 시도를 저지르기도 했다. 무바라크는 아프리카통일기구 정상회담 참여를 위해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던 중 테러를 당했는데, 용의자들은 수단에서 암살 작전을 준비해 에티오피아 국경으로 넘어온 이들이었다.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정부의 조사 결과 실제로 수단 정보 기관이 이 테러에 개입된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그러다 9.11 테러 직후 전세계가 테러리즘에 예민해지자 이런 테러리즘의 주요 후원자로 알려졌던 그는 전세계적으로 경제적인 압박을 받기 시작하고, 수단 경제는 제대로 휘청거리게 된다. 그런데 이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지원을 이어나가자 미국이 아예 공습을 해 위협을 주고 나서야 테러 지원을 포기하게 된다. 이 결과 수단 내에서 테러리즘을 지원하던 정부 기구가 사라지고 빈 라덴도 이때 추방되었다고 한다.

물론 축출 전까지도 비밀리에 지원을 이어나갔으며, 우간다조지프 코니가 이끄는 신의 저항군을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독실한 이슬람교도인 그가 기독교도인 조지프 코니를 지원하는 이유는 우간다 대통령인 요웨리 무세베니가 바시르를 경계해 남수단 반군들을 지원하자 바시르도 똑같이 우간다의 반군을 지원하는 것. 이에 미국은 정반대로 요웨리 무세베니 정부를 지원하고 있다.

다만 수단의 이슬람 극단주의 관련 문제는 바시르보다도 하산 알-투라비 국회의장이 진짜 최종보스긴 하다. 이쪽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힌 바시르보다도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이 강해서 바시르와 갈등을 빚을 정도였다고.

4.3. 외교적 노선 [편집]

좌파친북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된 이후로는 체포될까봐 쫄아서 해외 방문을 대놓고 피했다. 해외 순방을 하더라도 반서방 국가나 제3지대 국가들을 중심으로 방문하는 정도에 그쳤다. 뭐 어차피 기소 전에도 이미 진작에 외교 관계 다 씹창나서 별 의미는 없었지만.

4.4. 영향 [편집]

5. 몰락 [편집]

[ 펼치기 · 접기 ]
전개 및 현황








2011 지부티 시위


2011–2012 팔레스타인 시위 | 파타 | 하마스


2011 바레인 시위


2011–2012 쿠웨이트 시위

2011–2012 모로코 시위

2011–2013 모리타니 시위


여파

문화적 영향


구속된 바시르 前 수단 대통령.
끝내 2019년 4월 11일 압델 파타 알-부르한 장군이 이끄는 수단 군부에 의해 축출당했다. 그러나 부르한도 쿠데타를 통해 똑같이 독재자가 되자 수단 국민들은 독재 체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하는 중. 다만 이쪽은 바시르에 비해 세속주의 성향이고 서방과 그리 척을 지지도 않는 편. 오히려 서방과의 협력 폭을 넓혀가고 있다.

축출 이후 수단 공화국의 테러 지원국 지정이 해제되었다.

이후 수단 군부가 바시르의 집에서 거액의 현금이 든 가방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검찰은 바시르 前 대통령을 시위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했다.

2019년 6월 16일에 바시르 前 대통령은 돈세탁과 거액의 외화소지혐의 등으로 검찰에 출두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수단 측에 바시르의 신병을 인계하라고 촉구했다. 8월 19일에 바시르는 법정에 출두했고 경찰조사관은 심문에서 바시르가 사우디로부터 9천만 달러를 받은 점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비밀금고에서 거액을 돈다발을 쌓아놓고 뇌물 등으로 활용했다는 증언도 등장했다.

과도정부가 바시르의 소속 정당을 전면 해산시킨다고 밝혔다. 수단 법원은 12월 14일에 바시르에게 2년형을 선고했다. 단, 12월 14일의 선고는 위의 혐의들 중 가장 가벼운 혐의에 대한 결정으로 수단 공화국 현지에서는 바시르에 대한 재판이 모두 끝나려면 2020년 연말까지는 기다려야 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2020년 7월 21일, 그를 집권하게 만든 쿠데타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약 20명의 군인이 쿠데타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8월 22일 함독 총리가 22일 전쟁범죄와 관련해 국제형사재판소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바시르가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중형을 받을 경우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이후 최대 규모의 전범 재판이다.

10월 20일에 수단을 방문한 파투 벤수다 국제형사재판소 검사장은 바시르 전 대통령을 비롯한 다르푸르 대학살 용의자들을 더 이상 지체 없이 재판장에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결국 2021년에 수단 공화국 정부가 바시르의 신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넘기겠다고 발표했다.

현재는 수단의 한 교도소에 수감되어 전쟁 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된 건 물론, 수단 내에서도 뇌물 수수 및 시위대 살인 혐의 등을 받고 있어, 최대 사형까지 선고 가능할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 구속 이후에도 아프단 핑계로 병원에 입원해 병동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이 공개되며 수단 국민들이 또다시 격분하게 만들었다.

5.1. 2021 수단 쿠데타 시도 [편집]

2021년 9월 일부 충성파들과 군부대를 이용해 재집권을 시도했다. 이들은 옴두르만 주에서 수단 주권위원회를 상대로 교전을 치뤘고, 이후 국영 언론사를 장악하고자 했으나 끝내 저지하며 실패했다. 이 때문에 최소 40여명의 경찰관이 체포되었고, 쿠데타 시도에 가담한 다수의 군부대가 조사를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2021 수단 쿠데타 시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2. 수단 전쟁 [편집]

2023년 수단 내전에서는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현재까지 행방불명 상태인데, 수단 정부군 측은 신속지원군이 알-바시르를 풀어줄 것을 우려해 알-바시르를 쿠데타 직전 확보해서 군 병원에 구금하고 있다고 밝혔고, 신속지원군 측은 수단 정부의 배후가 알-바시르인 탓에 내전을 이용해 알-바시르를 풀어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째 정부군 반군 양측 모두 알-바시르와 상대편이 내통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모양새다.
  자세한 내용은 수단 전쟁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6. 평가 [편집]

6.1. 긍정적인 평가 [편집]



일부 경제 성장을 시도한 흔적이 있긴 하지만, 인플레이션과 경제 제재에 가로막혀 큰 성과를 보진 못했다. 그마저도 모두가 그 경제 성장의 혜택을 누린 게 아니라 지들끼리 노나먹은 게 다라 큰 의미는 없다.

그으나마 아프리카 우주국 설립을 제안하고 우주 진출에 관심을 가진 게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듯. 물론 바시르 축출 이후 완전히 무산되긴 했지만.

6.2. 부정적인 평가 [편집]

  • 30여년간의 철권 통치, 샤리아 폭정
  • 경제적 고립 및 몰락
  • 남수단 분리 독립 문제 및 할라이브 지역 철군
  • 다르푸르에서의 전쟁 범죄 혐의, 국제형사재판소 기소
  • 대규모 학살 및 내전 유발, 반정부 시위대 탄압
  • 돈세탁 및 부정부패
  • 반서방 성향, 대외적 고립

6.3. 총평 [편집]

<<독수리와 소녀>>

1993년 3월 26일 남수단 아요드 지방에서 사진 기자 케빈 카터가 찍은 사진으로 1994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는 바시르 시절 수단의 모습을 가장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모습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슬람 근본주의와 군부의 끔찍한 혼종으로, 30여년간 수단을 통치하며 수단이란 나라를 완전히 나락으로 보내버린 장본인이다.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부분은 약간의 경제 성장을 제외하면 과장 거르고 봐도 없고, 파도 파도 괴담만 나오는 수준.

경제적으로는 초반기에는 석유를 통해 약간의 경제 성장을 이뤄내긴 했지만, 이후로는 사실상 의도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작살을 내놨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당시 수단은 서부가 동부에 비해 훨씬 잘 사는 상황이었다. 이런 지역 간의 경제 불균형을 해결하려면 낙후 지역을 개발하는 게 맞는데 오히려 바시르는 잘 사는 서부를 경제적으로 약탈하고 학살을 저지르며 하향 평준화를 이뤄냈다.

그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호감작을 하고 주변 아랍 국가들마저 적으로 돌렸으며, 심지어 무아마르 카다피호스니 무바라크에 대한 테러를 시도하기도 했다. 국가 곳간 다 털리고 없는데 없는 살림에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까지 지원했으며, 알-카에다를 지원하고 빈 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기도 했다. 지원도 참 일관성 없게 지원했는데, 이집트리비아 등지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지원하더니 우간다에서는 기독교 신자[3]조지프 코니를 지원하는 등 지원마저도 일관성은 개나 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4]

이런 막장 행보를 보여주니 전세계에 경제 제재를 받고, 안 그래도 이미 작살난 경제가 다시 한번 작살나는 악순환을 만들어버렸다.

이런 인간이 단순히 경제만 조져 놓은 건 당연히 아니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통치를 하며 수많은 지식인들을 잡아서 고문하고 죽였다. 또한 아랍어 사용을 강제하고, 행정기관, 군대, 사법부, 대학, 노동조합, 전문직협회, 준국영기관 등 모든 기관을 상대로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당연히 여성 인권은 물론 걍 전 수단 국민들의 인권 자체가 없다 싶이 했고 말이다. 언론은 전부 국유화되어 언론의 자유 따위는 존재할 수조차 없게 되어 버렸다.

법 적용도 지 좆대로 하고 있는데, 술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태형을 가하기도 하고 무장 강도의 손발을 자르는 건 기본인데다가, 기독교를 비롯한 타 종교에 대한 탄압도 심각해 기독교로 개종한 임산부에게 태형을 가하고 교수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거기다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여러 차례 서부 지역을 약탈하고 학살했으며, 특히 남수단 지역에 학살과 내전을 일으켰으며, 364만 명 가까이 되는 이들이 이 한 사람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그러면 국가 안보적으로는 유능했느냐 하면 이것도 아니다.

오히려 수단이 실효지배하던 할라이브 지역에서 수단군을 철수시키면서 할라이브 지역을 통으로 이집트에게 넘겨줬으며, 남수단에 대한 차별도 오져서 끝내는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를 중심으로 하는 남수단 분리주의 세력이 독립을 주장할 명분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거기다가 부정부패까지 저질렀으니 말 다했다.

그런데 이런 막장 지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남부 반군의 약화 및 반정부 세력의 분열 등으로 초반 29년간은 안정적으로 정국을 운영하고 있었으나, 결국 상단의 문제가 하나하나 터지며 끝내 부르한 군부 세력에 의해 쫓겨나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다.

2022년 기준 현재는 재판으로 넘겨진 상황으로, 최대 사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는 상황인데다가 국제형사재판소에도 전쟁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다.

심지어 2021년에는 일부 바시르 지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실패했다는 보고가 등장했다. 군부 측에서는 주모자들이 체포되어 심판을 받고 있다고.

7. 비판 [편집]

7.1. 수단-남수단 전쟁 [편집]

7.2. 1993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 [편집]

7.3. 다르푸르 학살 [편집]

8. 여담 [편집]

1989년부터 세계 최악의 10대 독재자 순위에 포함되었고, 2007년에는 김정일로버트 무가베 등의 쟁쟁한 후보들을 누르고 전세계 최악의 독재자 1위에 당당히 등재되기도 했다.

슨상님처럼 지팡이가 주무기다.

9. 관련 문서 [편집]

10. 둘러보기 [편집]

[ 펼치기 · 접기 ]
주요 진영
 [ 범 사우디 진영 ] 
범 사우디아라비아 진영
주요 국가
맹주
중동
남아시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지원 국가
기타 세력
주요 인물
예멘
(하디 정부)
[1] 1990년대까지, 2010년대 이후 재합류
[2] 2017년까지
[3] 2016년부터
[4] 2021년까지
 [ 범 이란 진영 ] 
범 이란 진영
주요 국가
맹주
중동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지원 국가
기타 세력
주요 인물
[1] 2006년부터
[2] 2017년부터, 2021년까지
[3] 2011년까지
[4] 2016년까지
[5]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주요 사건
타임라인
이란 혁명 (1978 - 1979)
레바논 내전 (1975 - 1990)
이란-이라크 전쟁 (1980 - 1988)
걸프 전쟁 (1990 - 1991)
2006 이라크 내전 (2006 - 2008)
아랍의 봄 (2010 - 현재)
튀니지 혁명 (2010 - 2011)
이집트 혁명 (2011)
예멘 민주화 운동 (2011)
예멘 내전 (2011)
바레인 민주화 운동 (2011 - 현재)
리비아 민주화 운동 (2011)
2011 리비아 내전 (2011)
시리아 내전 (2011 - 현재)
2011 이라크 내전 (2011 - 2013)
2013 이집트 쿠데타 (2013)
2013 이라크 내전 (2013 - 2017)
2014 리비아 내전 (2014 - 2020)
예멘 내전 (2014 - 현재)
카타르 외교 위기 (2017 - 2021)
2017 이라크 내전 (2017 - 현재)
2019 수단 쿠데타 (2019)
바그다드 국제공항 공습 (2020)
2021 수단 쿠데타 (2021 - 현재)
마흐사 아미니 시위 (2022 - 현재)
윤석열 UAE의 적은 이란 발언 논란 (2023)
• 사우디-이란 관계 회복 선언 (2023)
관련 문서
[ 펼치기 · 접기 ]
주요 진영
 [ 수니파 계열 ] 
주요 국가 및 단체
집권 국가
과거의 국가
주요 단체
관련 인물
주요 인물
전세계
알-카에다
전세계
ISIL
기타 인물
지지 세력
 [ 시아파 계열 ] 
주요 사건
타임라인
이란 혁명 (1978)
9.11 테러 (2001)
테러와의 전쟁 (2001 - 2022)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 - 2022)
이라크 전쟁 (2003 - 2011)
베슬란 학교 인질 사건 (2004)
김선일 이라크 피랍 사건 (2004)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 (2007)
아랍의 봄 (2010 - 현재)
이집트 혁명 (2011)
사헬 내전 (2011 - 현재)
시리아 내전 (2011 - 현재)
2011 이라크 내전 (2011 - 2013)
2013 이집트 쿠데타 (2013)
2013 이라크 내전 (2013 - 2017)
2014 예멘 내전 (2014 - 현재)
한국 청소년 ISIL 가담 사건 (2015)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2015)
2015 파리 테러 (2015)
2015 앙카라 폭탄 테러 (2015)
코갈림아비아 항공 9268편 테러 (2015)
샌버너디노 총기난사 사건 (2015)
2016 이스탄불 테러 (2016)
2016 자카르타 테러 (2016)
2016 브뤼셀 테러 사건 (2016)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난사 사건 (2016)
방글라데시 다카 베이커리 테러 (2016)
2016 니스 테러 (2016)
2016 독일 열차 테러 (2016)
2016 프랑스 성당 테러 (2016)
2016 베를린 트럭 테러 (2016)
이스탄불 클럽 총격 테러 (2017)
2017 맨체스터 경기장 테러 (2017)
2017 스페인 연쇄 테러 (2017)
2017 이라크 내전 (2017 - 현재)
2020 니스 테러 (2020)
2021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세 (2021)
2021 아프가니스탄 내전 (2021 - 현재)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폭탄 테러 (2021)
관련 문서
[1] 보통 중동 정치판의 구도는 군부 계열 좌파 세속주의 독재자 vs 이슬람 원리주의 우파 민주주의자인데, 두 세력의 단점만 쏙쏙 고르면 딱 바시르가 나온다. 거기에 무능한 건 덤.[2] RCCNS 구성원 14명은 모두 이 쿠데타에 참여한 군인이었으며, 이들은 행정 권한은 물론 입법 권한도 행사했다.[3] 사실 기독교 신자라기보다는 사이비 교주에 더 가깝긴 할 거다. 일단 본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주장하는 중.[4] 다만 리비아는 서방이 바시르에 대해 기소를 하려 하자 반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