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압델 파타 알-부르한

최근 수정 시각:

 해당 인물이 개입하고 있는 수단의 내전에 대한 내용은 수단 전쟁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편집]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편집]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편집]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편집]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편집]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편집]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편집]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편집]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편집]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해라 이기.
[ 펼치기 · 접기 ]
제1차 주권위원회
군사정권
제2차 주권위원회
제3차 주권위원회
군사정권
과도군사위원회
86년 총선
군사정권
과도군사위원회
과도군사위원회
과도주권위원회

압델 파타 알-부르한
عبد الفتاح البرهان
프로필

1. 개요2. 상세3. 일생
3.1. 젊은 시절
4. 수단의 민주주의 전환 2019-20245. 외교적 노선6. 평가
6.1. 긍정적인 평가6.2. 부정적인 평가6.3. 총평
7. 여담8. 관련 문서9. 둘러보기

1. 개요 [편집]

압델 파타 알-부르한
Abdel Fattah al-Burhan
“혁명의 길을 바로잡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의했습니다.
첫째,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합니다. (중략)”

ㅡ 압델 파타 알-부르한 장군

عبد الفتاح البرهان
압델 파타흐 압델라흐만 알-부르한 (Abdel Fattah Abdelrahman al-Burhan, 1960년 7월 11일 ~ )이란, 수단의 육군 장군으로, 30여년간 수단을 철권통치 해온 오마르 알-바시르를 끌어내린 인물 중 한 명이자 수단 국군 총사령관으로써 2021 수단 쿠데타를 주도한 인물이다. 소속 정당은 무소속.

본래 수단 내에서 가장 정치와 거리가 먼 군인으로 꼽히며 바시르의 신임을 받았으나, 아랍의 봄 이후 바시르에 대한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는 걸 보며 끝내는 수단군을 이끌어 바시르를 축출했다.

수단 군부의 실질적인 실세로, 오마르 알-바시르 축출 이후 설립된 수단 과도 주권 위원회의 의장직을 역임했고, 이후 헤메티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수단의 실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민병대 신속지원군의 수단군 통합 문제를 두고 헤메티와 갈등을 빚었고, 외교 등 국가의 중대사들도 양측이 입장을 달리 하며 사실상 2개의 정부가 운영이 되다 싶이 하다 끝내 헤메티가 쿠데타를 일으키며 수단 전쟁이 발발하고 말았다.

수단 쿠데타 2021: 압델 파타 알-부르한은 누구인가?

2. 상세 [편집]


압델 파타 알-부르한 / Abdel Fattah al-Burhan
수단 공화국의 군인으로, 수단 국군 총사령관을 맡으며 다르푸르 분쟁제2차 수단 내전에 참전했다. 이후 2010년 후반 들어 수단 육군 참모총장에 임명됐고, 바시르의 신임을 받아 수단 국군의 실권을 장악했다.

그러다 바시르 정권이 반정부 시위를 맞아 수세에 몰리며 부르한과 바사르 정권 제1부통령이었던 아흐메드 아와드 이븐 아우프는 함께 바시르를 축출하게 된다. 이후 군부를 중심으로 과도주권위원회를 창설하고 아흐메드 아와드 이븐 아우프가 의원회 의장직을 맡았지만 바시르 정권에서 국방부 장관과 제1부통령직을 역임하며 바시르 정권에 부역했단 의혹이 커지며 끝내 하루만에 직을 사임하게 되며 부르한이 군사위원회 의장직을 이어받게 되었다.

그는 바시르 정권과 어느 정도 거리 두기를 했던 터라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등장했으나, 자유와 변화의 동맹 (FFC)과 대립하며 논란을 빚었고, 이후 신속지원군이 하르툼 대학살을 벌이고 인터넷을 차단하며 이 사태에 대한 배후로 욕을 먹게 된다.

이후 FFC과의 협상이 어찌어찌 잘 진행되어 과도군사위원회가 해산되고 과도주권위원회가 설립되는 동시에 부르한은 새로 신설된 과도주권위원회의 의장 자리를 맡게 된다.

그러나 바시르의 똥 덕에 경제 상황이 악화되며 부르한 주권위원회 의장과 압달라 함독 총리가 쌍으로 엮여 욕을 먹기 시작하자, 부르한은 국가를 구하려면 강력한 통치자가 필요하다며 점차 독재를 암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1년 10월 쿠데타를 일으키고 민간 내각을 해산하며 완전히 독재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시민들이 반정부 시위를 터트리고 독재 타도를 외치자, 이를 진압하며 상당한 수의 사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다만 샤리아를 명목으로 완전히 시민들을 탄압했던 '그 새끼'와는 달리 야권 세력과의 협상에 나서고 있고, 2023년 내로 정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하고 있다.

3. 일생 [편집]

3.1. 젊은 시절 [편집]

1960년 나일강 근처의 수단 수도 하르툼 북쪽 간다투 마을에서 수피파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난 부르한은 수단 육군사관학교을 졸업했고 이후 이집트요르단에서 유학을 했다. 또한 중국 베이징 주재 수단 대사관에서 국방무관으로 복무한 전력이 있다.

이후 수단 국군으로 복무하며 다르푸르 분쟁과 제2차 수단 내전 등에 참전했다. 2018년 2월 수단 육군 참모총장이 되었고, 2019년 2월 26일에는 중장으로 승진했다.

이 시기 당시 대통령이었던 바시르에게 크게 신뢰받았으나, 바시르 정권의 퇴색이 짙어지자 바시르에게 사퇴를 요구하게 된다. 바시르는 이 사퇴 요구를 듣자 'OK'라며 시민이 보호되길 바란다고 밝혔다고.

4. 수단의 민주주의 전환 2019-2024 [편집]

[ 펼치기 · 접기 ]
전개 및 현황








2011 지부티 시위


2011–2012 팔레스타인 시위 | 파타 | 하마스


2011 바레인 시위


2011–2012 쿠웨이트 시위

2011–2012 모로코 시위

2011–2013 모리타니 시위


여파

문화적 영향

4.1. 수단 혁명 [편집]

수단 주권위원회 의장 재임 시기.
수단 혁명의 주역인 압달라 함독 총리와 부르한.
알-부르한이 수단 정국의 전면에 등장한 건 빵값 인상 반대 끝에 벌어진 반정부 시위와 쿠데타로 바시르 정권이 무너지고, 쿠데타를 이끌었던 군부 수장 아와드 아우프가 군사위원회 위원장에서 낙마한 2019년 4월이다.

군사위원회 위원장직에 내정된 아와드 아우프는 과거 알-바시르 정권에 협력했단 의혹을 받았는데, 이 때문에 즉각적인 민간 정부 구성을 요구하는 수단 국민의 압박을 받고 물러나게 된다. 이후 군사위원회 위원장 자리는 알-부르한이 꿰찬다.

그는 당시 시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위원장 자리에 올랐는데, 바시르 정권과는 어느 정도 거리 두기를 한데다가 전쟁 범죄 같은 문제에서도 나름대로 깨끗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바시르 정권 시기 투옥된 모든 정치범을 석방함과 동시에 야당, 시위대를 불러 회담에 나섰고, 과도정부 총리 지명 권한도 야권에게 넘겨줬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신속지원군을 위시하는 하르툼 학살이 발발하고, 이 상황에서 군사위원회 측이 인터넷까지 끊어버리며 신속지원군을 이용해 독재를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게 된다.

그 결과 2019년 8월 과도통치기구인 과도주권위원회가 출범했고, 경제학자 출신인 압달라 함독 총리가 이끄는 과도정부도 꾸려졌다.

부르한은 선거를 통해 민정 이양이 될 때까지 운영될 과도주권위원회의 의장을 먼저 군부가 맡은 뒤, 이후에 민간에 넘기기로 합의하고 위원장 자리에 앉게 된다.

2020년 12월 1일, 미국 폼페이오 장관과 회담을 갖고 앞으로 몇 주일 내에 수단을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는 문제를 논의했고 #, 최종적으로 12월 14일, 이스라엘을 공식적으로 국가로 인정하고 테러 피해에 대해 보상하며 바시르 정부 이후 수단을 테러지원국 목록에서 삭제시키는데 성공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가졌다. 이는 UAE, 바레인에 이어 세 번째이다. 다만 이 때의 정상화는 그닥 지켜지진 않았고, 몇년 뒤 다시 관계 정상화 합의를 가졌다.

4.2. 2021 수단 쿠데타 [편집]

2년 만에 또 쿠데타... 혼돈의 수단
쿠데타 직후 인터뷰에서
나라 전체가 정쟁 때문에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지난 2년간 정권이양 과정에서 정치세력의 참여는 결함이 있었고 갈등을 조장해왔다.

압델 파타 알-부르한, 쿠데타 직후 연설에서


그러던 2021년 10월 25일, 알-부르한 장군은 이집트, 사우디, UAE 등의 지원을 받아 압달라 함독 총리의 민간 정부를 전복시키며 시민들과의 합의를 깨고 쿠데타를 강행하게 된다.

그는 26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내전을 피하고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고 주장하며 과도주권위원회를 해산하고, 주권위원회를 성립해 스스로 의장 자리에 올랐다. 또한 압달라 함독 등을 비롯한 민간 정부 인사들을 구금하고 다시 군사 정부를 꾸려가기 시작하지만, 시민들의 반발에 눌려 결국 11월 21일 다시 한번 모든 정치범을 석방했고 과거 야권의 지명을 받고 과도 정부를 이끌던 함독 전 총리도 귀국해 다시 총리로 복귀했다.

2021년 12월, 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2021년 12월 31일 연설에서 알-부르한은 2023년 7월에 과도 정부의 모든 기관을 구축하고 예정된 시간에 자유롭고 공정하며 투명한 선거를 개최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저렇게 말하다가 독재자로 간 인물들이 수도 없이 많다 보니 저 말이 지켜질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이후 민주화 시위가 발발하고 117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지자 2022년 7월 4일, 알-부르한은 군대가 정치에서 손을 떼고 민간 정부를 구성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해 11월 23일, "비당파적 정부 수용하겠다"라며 정부가 제대로 구성되면 군대는 정치에서 손을 떼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

그러나 11월 13일, 무슬림 형제단을 필두로 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야권 세력에게 "군대를 방해하지 말라", "군대에 대해 말하는 사람의 혀를 잘라버릴 것"이라며 경고를 하기도 했다. #

2022년 5월 29일, 2021년 10월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 7개월 만에 국가 비상사태를 해제하는 법령을 발표했다. #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별세하자 장례식에 참석했다. # 이는 1987년 이후로는 처음으로 영국을 방문한 수단 지도자가 된 셈이다. 일각에서는 알-부르한이 국제적으로 수단의 지도자임을 인정받았다는 해석도 있는 모양. 다만 엘리자베스 2세 장례식 방문으로 시작된 해외 순방에서 서방 국가 정상들과의 회담을 하나도 가지진 못하면서 사실상 빈 손으로 귀국하게 됐다.

2022년 9월, 26년 만에 수단 주재 미국 대사가 임명됐다. # 2021년 쿠데타 이후 미국은 7억 달러의 원조를 중단했지만 존 고드프리는 계속해서 "인도주의적" 및 "일부 개발 지원"을 제공했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달 22일, 이슬람주의 세력을 멈추겠다고 하며 무슬림 형제단 산하의 노조를 동결시켜버렸다. # 바시르 정권 시절 올드보이들의 복귀로 인해 친이슬람주의 아니냐 하는 의혹을 종식시키기 위함인 듯. 구 바시르 세력이 다시 힘을 얻는 걸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말이다.

2023년 1월, 또다시 권력을 민간에게 돌려주겠다고 밝혔다. 대체적으로 지금까지의 민주화 메시지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메시지라고 평가받는 듯. #

2월 4일,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무장관을 만나 공식적으로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 이로써 수단은 UAE, 바레인, 모로코에 이어 아브라함 협약을 통해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한 아랍 국가가 되었다. 이후 이스라엘 외무장관 측은 워싱턴에서 수단과의 평화 협정을 맺을 것이라 밝혔다. #

그러나 연합 군부 사이에서도 점차 마찰음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부르한과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장군의 갈등이 점차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 부르한은 이집트와 친밀한 것과 달리 다갈로는 UAE와 가깝고, 부르한은 친서방에 가까운데 반해 다갈로는 친러 성향이다.

4.3. 수단 전쟁 [편집]

수단 군부 무력 충돌, 사상자 4천 명 육박
2021 수단 쿠데타의 주역인 부르한과 헤메티
그리고 기여코 신속지원군 (RSF)의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헤메티)가 쿠데타를 일으키며 2년 만에 다시 하르툼이 혼란스러워졌다.

신속지원군 측은 부르한이 오마르 알-바시르를 비롯한 이슬람주의자들을 다시 데려오려 했다, 수단의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란 명분을 들어 쿠데타를 일으켰고, 몇몇 이집트군을 붙잡고 이집트군의 전투기를 농획해 공항 등 주요 시설들을 장악했다.

이에 부르한은 놀랐다고 평하며, 평화적 해결만이 수단 위기를 해결할 유일한 해법이라 강조했고, 휴전 없이는 대화도 없다고 밝혔다. 또 RSF가 정신 차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수단 전쟁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3.1. 해외 순방 [편집]

해외 순방에 나선 알-부르한 의장
타밈 카타르 아미르와 정상 회담을 진행한 알-부르한 의장
현지 시각 8-9월, 압델 파타 알-부르한 과도주권위원회 의장은 내전 이후 처음으로 포트수단을 통해서 출국해 이집트남수단, 카타르 등을 방문했다.

처음에는 부르한의 강력한 지지자들 중 하나인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만나 회담을 진행했고, 이후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 남수단 대통령을 만나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아미르와 만나 정상회담을 가졌다.

정상회담에서 압델 파타 알-부르한은 내전의 '외교적 해결'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무력 사용을 이용해 정권을 잡고자 하는 헤메티의 반군과는 달리 수단 정부는 외교적으로 평화롭게 해결할 의사가 있음을 국제적으로 보여주는 조치로 해석되고 있기에, 부르한의 해외 순방은 충분히 의의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제78차 유엔 총회에 참석한 알-부르한 의장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진행한 알-부르한 의장
알-부르한 의장은 2023년 유엔 총회에도 수단의 공식적인 국가원수로써 참석해 '바그너 그룹 책임론'을 분명히 했고, 참석 이후 아일랜드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와 "우연한" 회동을 진행했다.

두 사람은 회담 후 러시아가 자금을 지원하는 '불법 무장 단체'의 활동에 대해 논의했고, 우크라이나와 아프리카 국가 간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플랫폼을 논의했다. 젤렌스키는 X(트위터)에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에 대한 수단의 일관된 지원에 감사드립니다”라고 전했다. 이는 얼마 전 우크라이나의 수단 내전 참여 의혹이 등장한 이후 벌어진 만남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평가 받고 있다.

5. 외교적 노선 [편집]

알-부르한과 이스라엘 엘리 코헨 정보부 장관
알-부르한과 미국 폼페이오 국무장관
외교적으로 친서방적인 성향을 띄고 있으며, 특히 이집트와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1]

워싱턴-텔아비브-카이로-하르툼 외교 노선의 주된 축을 맡고 있으며, 서방권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모양새이다.

여기서 제일 주목할 만한 건 아랍권에서 욕을 드럽게 많이 먹고 있는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하기로 선언한 것인데, 바레인이나 UAE 등이 이스라엘을 인정한 것과 더불어 범서방과 발을 맞춰가는 모양새이다. 이러한 행보 덕에 수단이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되기도 했고 말이다. 2월에는 베냐민 네타냐후우간다를 방문하자 부르한이 찾아가 비밀 회담을 하기도 했다. #1 또한 쿠데타 이후에도 일부 언론에서 등장한 이스라엘과의 단교설에 대해 부르한 본인이 강력 부인하기도 했다. #2

이러한 행보에 바시르 시절 긴밀히 협력하던 이슬람 국가들은 배신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모양새인데, 이란이나 팔레스타인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란은 수단 측을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라고 비판했다.

한 분석에 따르면 알-부르한 장군의 목표는 미국의 대테러 정책에 협력함과 동시에 홍해의 안보를 위해 노력하며, 국제 사회에 알-부르한 정부가 수단과 인근 국가들의 안정을 위한 유일한 정부임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라고 한다. #

사우디아라비아-이란 분쟁에서는 사우디와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이란을 견제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예멘 내전 시기 때 후티 반군을 공격하고 사우디와 하디 내각을 지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은 바시르 축출 이후 수단 정부에게 상당한 금액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으나, 부르한이 쿠데타로 제대로 통수를 치면서 미국 측은 뒤통수가 얼얼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부르한 집권 이후 20여년만에 미국 대사가 임명되었고 #, 미국 측에서 주도하는 수단 민주화 관련 협정에서 미국이 수단 군부를 지원하며, 협정에서 부르한 등의 수단 군부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시도하는 등 은근히 서로 챙겨주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특히나 수단 전쟁 이후로는 미국이 엘시시를 통해 부르한을 지원하고 있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또한 이집트와 매우 협력적인 스탠스이다. 부르한은 이집트 군부 압델 파타 엘-시시와 오랜 동맹 관계에 있고, 수단 전쟁 이후로는 압델 파타 엘-시시가 수단군의 후원자로 나서며 유착 관계가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쿠데타 이후로도 러시아와는 가까운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부르한보다도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모양새이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력과 이집트 등은 바그너 문제 등을 제기하며 수단 군부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 #

쿠데타 이후 러시아는 다갈로를 중심으로 수단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다갈로의 군대를 통해 중아공까지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상황인데, 이에 미국은 상대적으로 친러색이 약하다고 판단된 부르한과 협력해 다갈로를 견제하고, 더 나아가서는 러시아의 대아프리카 영향력을 축소하려 하고 있다. #

특히 홍해 러시아 항구 설치 문제에 대해 부르한은 서방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반대한 반면 다갈로는 이에 찬성했다. 그 결과 끝내 러시아의 항구는 UAE에 지어지게 됐는데, UAE는 다갈로의 주요 후원 국가이다.

수단 전쟁 발발 직후로는 아예 러시아와 대리전을 치루고 있다. 러시아가 다갈로가 이끄는 반군을 지원하면서 제대로 관계가 틀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내전 이후로는 우크라이나와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젤렌스키와 부르한 두 사람은 모두 러시아에 의해 정권이 전복될 위기에 놓여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에, 양측 모두 서로를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러시아바그너 그룹에 대한 공동 대응을 약속하기도 했다.

압델 파타 알-부르한: 수단의 이스라엘 남자

6. 평가 [편집]

6.1. 긍정적인 평가 [편집]

  • 이스라엘과의 외교 재개를 통한 평화 분위기 조성 및 분명한 친서방 노선
  • 테러 지원 금지 선언 및 수단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 오마르 알-바시르 정권 축출 및 적폐 청산
  • 학살 및 전쟁 범죄 문제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깨끗[3]

6.2. 부정적인 평가 [편집]

  • 반정부 시위대 탄압 및 사실상의 철권 통치
  • 인터넷 차단 등 독재 정책 및 하르툼 학살 방관 논란

6.3. 총평 [편집]

전반적으로 과거 이슬람 근본주의와 반서방 성향을 보이던 오마르 알-바시르 정권 때와 달리 친서방적 외교 방침을 지향하는 세속주의 정권이다.

그러나 반정부 시위대에서 군이 강경 진압을 한 모습이 여럿 포착되었고, 겉으로는 민주주의 체제 복귀를 외치면서도 여전히 수단 국가원수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걸 보았을 때 독재자로 비판받을 여지도 큰 편.

다만 반서방 노선을 버리고 범서방 진영과의 외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실제로 그 덕에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되고 20여 년만에 수단 주재 미국 공사가 임명되기도 했다.

7. 여담 [편집]

기혼자이고 3명의 자녀가 있다고 한다.

이름은 al-Burhan으로 표기하는 일이 많지만, el-Burhan으로도 표기하는 모양이다. 일단 공식적인 표기는 al-Burhan인 상황.

때때로 위키백과 등에서 수단 대통령으로 오인되기도 하나, 수단 대통령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실권자이긴 했어도.

본래는 바시르의 주요 측근 중 하나였으나, 쿠데타 이후에는 바시르와 거리가 멀어진 상황이다. 그런데 내전 직후 신속지원군 측은 부르한이 바시르 독재에 부역한 인사들을 기용했다는 주장을 펼쳤으며, 내전 발발 이후에는 아예 바시르를 다시 대통령으로 세운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우선 부르한이 이슬람주의 세력과 가까운 건 사실이나, 부르한 본인부터가 이슬람주의 의혹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고 오히려 독재의 명분들 중 하나가 이슬람주의 성향 반군들과의 내전이다. 더군다나 주요 후원자가 다름 아닌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이다. 이쪽은 세속주의인 거로 모자라 현대의 이집트 지도자들 중 가장 강경하게 이슬람주의를 탄압한 인물.

종교적으로는 이슬람 수피즘이다.[4]

8. 관련 문서 [편집]

9. 둘러보기 [편집]

[ 아시아 ]
[ 유럽 ]
[ 아메리카 ]
[ 아프리카 ]
압델 파타 알-부르한 (주권위원회 의장)
마마디 둠부야 (권한대행)
[1] 의원내각제 하의 대통령
[ 펼치기 · 접기 ]
주요 진영
 [ 범 사우디 진영 ] 
범 사우디아라비아 진영
주요 국가
맹주
중동
남아시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지원 국가
기타 세력
주요 인물
예멘
(하디 정부)
[1] 1990년대까지, 2010년대 이후 재합류
[2] 2017년까지
[3] 2016년부터
[4] 2021년까지
 [ 범 이란 진영 ] 
범 이란 진영
주요 국가
맹주
중동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지원 국가
기타 세력
주요 인물
[1] 2006년부터
[2] 2017년부터, 2021년까지
[3] 2011년까지
[4] 2016년까지
[5]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주요 사건
타임라인
이란 혁명 (1978 - 1979)
레바논 내전 (1975 - 1990)
이란-이라크 전쟁 (1980 - 1988)
걸프 전쟁 (1990 - 1991)
2006 이라크 내전 (2006 - 2008)
아랍의 봄 (2010 - 현재)
튀니지 혁명 (2010 - 2011)
이집트 혁명 (2011)
예멘 민주화 운동 (2011)
예멘 내전 (2011)
바레인 민주화 운동 (2011 - 현재)
리비아 민주화 운동 (2011)
2011 리비아 내전 (2011)
시리아 내전 (2011 - 현재)
2011 이라크 내전 (2011 - 2013)
2013 이집트 쿠데타 (2013)
2013 이라크 내전 (2013 - 2017)
2014 리비아 내전 (2014 - 2020)
예멘 내전 (2014 - 현재)
카타르 외교 위기 (2017 - 2021)
2017 이라크 내전 (2017 - 현재)
2019 수단 쿠데타 (2019)
바그다드 국제공항 공습 (2020)
2021 수단 쿠데타 (2021 - 현재)
마흐사 아미니 시위 (2022 - 현재)
윤석열 UAE의 적은 이란 발언 논란 (2023)
• 사우디-이란 관계 회복 선언 (2023)
관련 문서
[1] 이집트는 압델 파타 엘-시시 주도의 독재 체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범 아랍권에서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2] 다만 부르한 본인은 이슬람주의와 교류한 정황이 있으며 이슬람주의 지도자들에게 유화책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 그래도 최소한 전 정부만큼 이슬람주의를 요구하고 있진 않은 상황이며, 오히려 이슬람주의 노조를 탄압하기도 했다. 또한 수단의 국교를 폐지했다.[3] 공식적으로 부르한은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된 다르푸르 전쟁 범죄 관련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당시 학살에 있어서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4] 수피파는 이슬람의 신비주의 계열 사상인데, 전근대 시절 이슬람권 전반에서 유행했으나 현재는 소수로 몰락한지 오래인 세력. 사챈위키에 등재된 또다른 수피파로는 이자트 이브라힘 알-두리 이라크 혁명사령부 위원회 부의장이 있다.